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35> 마봉춘 가(家)의 여섯 며느리들
무한도전 121회 080913 : 며느리가 뿔났다
왜 며느리들은 뿔이 났는가?
온가족이 함께 모이는 즐거운 추석 명절에 왜 유독 며느리들은 뿔이 났을까? 무한도전의 '며느리가 뿔났다' 편은 흔히 '명절 증후군'이라 불리는 며느리들의 명절 노동 문제를 유쾌한 콩트로 풀어내며 추석의 의미를 되짚고 있다. 그에 따르면 며느리들이 뿔난 까닭은 제사에 필요한 모든 노동이 그들에게 집중된 반면, 며느리들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노동에서 면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 따로 먹고 노는 사람 따로인 상태에서 며느리들은 가족으로부터 그리고 명절로부터 소외된 채 혹사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족'이 며느리들 입장에서 '친정 식구들'이 아닌 '시댁 식구들'이라는 사실도 며느리들이 명절 때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며느리는 결혼을 통해 남편의 가족에 합류하긴 했지만 '시댁 식구들'과 혈연 관계로 묶여 있는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남편과의 이혼이나 사별을 통해 언제든 남이 될 수 있는 관계이고, 따라서 얼굴도 모르고 피도 섞이지 않은 남편의 선조들을 모시는 제사를 자신이 힘들여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녀들로부터 노동의 목적과 가치를 박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은 '엄격한 시어머니'(전원주 분)와 '철없는 시누이'(김가연 분)을 등장시켜 '남성' 출연자들이 제기 씻기부터 제사 음식 마련에 이르기까지 제사의 준비과정을 직접 체험하게 함으로써 '명절 증후군'의 실체에 접근하고 있다. 고부간의 갈등이나 시누이와 올케 간의 신경전이라는 다소 전형화된 가부장제의 드라마투르기를 차용하고 있는 까닭도 역할 바꾸기를 통해 며느리들이 명절 때마다 겪고 있는 고충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한 방편이라 할 수 있다. 유재석이 불과 반나절만에 "명절 너무 괴롭다. 명절 이렇게 괴로운 건가?"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그래서 연기라기보다 체험에서 나온 본심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다른 멤버들이 제사를 준비하며 절감하게 되는 고충 역시 유재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보기만으로 이미 지쳐있던 정형돈은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전진과 설거지를 떠맡게 되자 안 피곤한 사람이 어딨냐며 따져 묻는다. 며느리들 사이의 서로 다른 가치관과 요리 스타일은 사사건건 충돌하며 짜증 게이지만 높아가고, 좋은 날 한번 웃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 다다르게 된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즐거워야 할 민족의 명절에 왜 가족 중 일부는 노동력 착취를 당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일까? 무한도전은 이러한 질문만 제기하고 있을 뿐 어떠한 해답도 내놓고 있지 않다. 해결책은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며 풀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왜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울까?
해마다 반복되는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민족 고유의 명절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정체성 형성과 사회적 통합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같은 날 같은 핏줄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조상들을 추모하고 음식을 나눠먹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가정이나 사회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게 된다. 결혼을 통한 생물학적 연속성을 확보하는 일 못지 않게 제사가 신성하고 중요한 행사로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여성은 출산을 통해 한 사회가 생물학적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노동을 통해 제사에 필요한 제반 요소들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사회 통합의 물질적 토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흔히 '남성은 하늘, 여성은 땅'이란 말을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월성의 표현으로 잘못 해석해왔지만, '하늘'과 '땅'은 상호 대립 관계나 우열 관계를 나타내는 은유가 아니라 '음'과 '양'처럼 상호 보충 관계에 있는 은유일 뿐이다. 따라서 명절로 인해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불만이 가중되는 현상은 한 사회의 '지반'(물질적 토대)이 흔들리는 위기의 징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땅'의 불만의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며느리가 뿔났다' 편에서 며느리들에게 노동이 집중되는 현상의 원인은 명시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시어머니와 시누이 그리고 며느리들 간의 관계에서 그 원인을 유추해볼 수는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들 간의 관계는 전형화된 가부장제의 드라마투르기를 따르고 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며느리들과 마찬가지로 여성이지만 노동에서 배제되어 명령을 내리는 자로 등장하는데, 이는 그들이 부계 혈통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극중에서 부재하고 있는 '(시)아버지'의 법칙과 질서를 대리하고 있는 감독관들이다.
그래서 시누이와 올케 간의 갈등은 여성 대 여성의 갈등이 아니라 부계 질서 대 모계 질서 간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라는 통속적 관념은 갈등의 본질적 원인인 가부장제의 억압적 질서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지닌다. 시누이가 성격적으로 더 못됐다거나 여성이 남성보다 더 질투심이 많기 때문에 시누이와 올케가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에서 시누이가 더 밉게 느껴지는 건 올케 입장에서 볼 때 출가를 하게 되면 자신과 다르지 않은 처지에 놓이게 될 시누이가 오히려 가부장제의 기득권을 자신에게 행사하려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누이의 입장에서 볼 때 올케에게 협조를 한다고 해서 자신의 결혼 생활에서 동일한 협조를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친정에서 누리고 있는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시누이와 올케 간의 갈등은 '죄수의 딜레마'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시어머니의 권력 역시 그녀가 최고 연장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가부장제 질서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한 가문의 '곳간 열쇠'를 틀어쥔 권력자로서 시어머니는 미래의 열쇠 주인인 며느리와 권력 투쟁 관계에 놓여 있다. 자신의 아들이자 며느리의 남편인 한 명의 '남성'을 둘러싼 그녀들의 시기와 질투는 '팔루스'(Phallus)로 상징되는 권력을 놓고 벌이는 힘겨루기인 셈이다.
시어머니와 시누이 그리고 며느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은 지금보다 가부장제의 힘이 더 막강하게 작용했을 때는 보다 평화롭게 봉합될 수 있었다. 그러나 가부장적 질서의 힘이 많이 약화된 현대에 와서 실효성을 상실하고 껍질만 남은 가부장적 권위는 공동체를 통합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게 오늘날 '명절 증후군'으로 표현되는 위기의 원인이다.
고부간의 갈등의 기원
가족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갈등은 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역사학자 김윤정은 고부갈등이 조선 전기 제사 승계권을 둘러싼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권력다툼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1) 그에 따르면 조선 전기까지 맏며느리는 남편 집안에서 딸로 간주되어 남편의 사후에도 제사를 주재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종법(宗法) 질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적장자가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을 경우 제사 주재권을 놓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대립을 벌이면서 갈등관계가 생겨났다고 한다.
여기에서 제사 주재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 까닭은 재산 상속권한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엄격한 가부장제 질서가 점차 공고해지며 며느리는 제사 주재권을 통해 상속받았던 남편의 권한을 차츰 상실하게 되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 시어머니의 일방적 지시와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사 문제로 시선을 옮겨보면, 조선 시대 여성들이 느꼈던 제사에 대한 부담감은 지금과 달리 그리 크지 않았다고 한다. 역사학자 이순구에 따르면 17세기 이전까지 아들과 딸의 구분 없이 제사를 돌아가며 지내는 윤회봉사(輪廻奉祀)나 형제자매들이 제사를 분담하는 분할봉사(分割奉祀)가 제사의 보편적 형식이었고, 혼인해서 남자가 여자 집에 오래 거주하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의 영향 속에 살았기 때문에 딸과 사위가 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2) 제사에서 여자가 배제되는 지금과는 판이한 양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7세기에 접어들며 조선은 부계 중심의 가족제도로 변화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제사 역시 장남이 전담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맏며느리는 가문의 제사를 전담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대신 실로 막강한 권력이 동시에 주어졌다. 종부(맏며느리)는 시어머니 다음의 서열에 위치하며, 손아래 동서들이 맏며느리와 나란히 걷거나 앉는 일조차 금지되었다.
또한 장남과 맏며느리에게 다른 자식들보다 많은 상속과 사회적 명예도 보장해주었기 때문에 의무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맏며느리 자리는 힘든 만큼 도전할 가치가 있는 매력적인 자리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의 여성들이 더 이해타산적이 되었기 때문에 맏아들에 대한 결혼 기피풍조가 생겨난 것은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사가 여러 집으로 옮겨다니지 않고 한곳에 고정되면 그것을 전담하는 사람에게 힘이 생긴다. 조선은 점차 힘이 한곳에 집중되기를 원했다. 이른바 중국과 같은 부계 중심의 가족제도로 옮겨가려고 한 것이다. 부계적인 가족제도는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제도였다. 실제 빨리 부계적으로 변화해간 집안이 더 잘살고 더 번성했다."3)
부계 중심의 가족제도로의 변화는 부의 효율적 축적을 위한 경제적 질서로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라 할 수 있다. 엥겔스는 "가족의 기원"에서 인류 발전 단계에 상응하는 결혼의 형식을 설명하며 "일부일처제는 많은 재화가 한 사람의 수중에, 그것도 남자의 수중에 집중된 결과 발생하였으며, 그 재화를 다른 남자가 아니라 바로 그 남자의 자식에게 상속시키려는 욕망에서 발생하였다."고 말한 바 있다. 자본주의적 질서가 관철되는 역사적 과정과 가부장제 간의 긴밀한 연관성에 대한 엥겔스의 통찰이 조선 시대의 가족 제도의 변화에도 적용될 수 있는 지점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문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질서가 바뀐 지금에도 초기 자본주의 단계에 형성된 가족제도를 '아름다운 전통'이란 이름으로 맹목적으로 지키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과거와 달리 여권이 눈부시게 성장한 21세기에 며느리들을 과거의 가부장적 질서에 옭아매려는 시도는 제사의 형식 자체가 개혁되지 않은 한 여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미봉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새로운 사회 통합 모델을 발견해낼 수 있을까?
삶의 축제를 위하여
'며느리가 뿔났다' 편은 '명절 증후군'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제사를 드리기 직전까지의 준비 과정을 다루고 있다. 가부장제의 클리세를 콩트의 극적 구조로 차용하고 있지만, 시누이와 올케 간의 갈등이 전면에 부각되어 있을 뿐 갈등의 주된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가부장제도가 명시적으로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이야기는 철없는 마봉춘 가의 여섯 며느리들이 제사를 준비하며 갈등을 겪게 되지만 유여곡절 끝에 제사상을 완성하고, 그들의 인간적 마찰 또한 흥겨운 노래 잔치를 통해 해소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화해의 서사구조는 며느리가 뿔난 원인에 대한 보다 근원적 문제를 파고들 경우 여지없이 해체된다.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해마다 몇 차례씩 맞이하는 명절 때마다 마봉춘 가의 며느리들은 또 다시 고통을 받게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며느리가 뿔났다' 편이 지닌 의미는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해왔던 우리 사회의 문제를 공론화했다는 점에 있다.
며느리로 분장한 남성 출연자들은 '실제로' 제사를 준비하는 체험을 통해 여성들이 명절에 받게 되는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된 출연자들과 그 광경을 시청한 시청자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닫게 되었을 테고, 그로 인해 공론화된 문제의식은 함께 해답을 모색하기 위한 첫 출발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언론과 방송 비평가들의 몫은 방송이 제기하고 있는 정당한 문제의식이 성장할 수 있도록 성기게 제시된 텍스트의 빈 틈을 채우고 담론화하는 것일 것이다. 나의 이번 리뷰에서 텍스트 본래의 모습이 알 수 없을 정도로 해체되고, 대신 수많은 곁가지 담론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인용되고 있는 이질적 담론들은 역으로 텍스트를 더욱 다양한 관점에서 수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앞에서 제시한 문제로 되돌아가면, 나는 새로운 사회 통합의 모델 역시 무한도전 내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며느리가 뿔났다' 편에서 여섯 며느리들은 노래 자랑 순서가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간에 여전히 갈등과 견제가 있기도 했지만, 'SG 허저비' 공연에 이르러서 그들은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면서도 기묘하게 조화를 이루게 된다.
노래 자랑은 외적으로 고된 명절을 보낸 전국의 며느리들을 위로하고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마련된 코너이지만, 내적으로는 종가집 며느리로 분해 힘든 촬영을 한 자신들이 웃고 떠들며 즐기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식한' 맏며느리 박명자, '재개발 때문에 졸부된' 둘째 정준연, '잘난척쟁이' 셋째 유재순, '다산과 빈곤의 상징' 네째 정형순, '마씨 종친 최초의 국제 결혼' 다섯째 나타샤 노, '바람 잘 날 없는 신혼생활' 막내 박충자 등은 신분의 차이와 제사 준비를 하며 맺혔던 감정의 앙금을 잊고 화합하게 된다. 그렇다면 명절을 온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운 축제의 장으로 만들 때, 가정과 공동체의 통합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현재를 축제가 열리고 있는 무대로 인식한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긍정을 의미한다. 기독교의 예배, 천주교의 미사, 조상에 대한 제사는 현실 너머에 있는 세상에 우리의 소망을 두고, 현실에서는 그러한 소망이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는 참고 견디어야 하는 고통의 장소로 표상되며, 이는 곧 현재에 대한 부정을 함의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를 축제의 장소로 긍정한다는 것은 제사의 방향을 벽 너머에 있는 조상들의 공간이자 초월적 세계로부터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지금 여기'로 전환하는 것이다. 시인 김지하는 이러한 가능성을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의 '향아설위'(向我設位) 설에서 찾고 있다.
"오늘 내가 노동해서 얻은 밥, 즉 모든 생산물을 벽 쪽에다 갖다 바치고 그것이 다시 다 주체에게로 돌아오는 자연스런 영적 희망이나 물질의 회귀를 막고 상제인 주체가 엎드려 절하는 동안 사제나 자본가나 정치국원들이 모조리 착취하는 사이에 지금 여기 서 있는 상제(喪制)인 나, 즉 인간의 현실적 가치는 아예 무시하고 망각하는 환상의 문화였고 환상적 시간, 공간이었습니다.
해월 최시형 선생은 아시다시피 갑오동학이 실패한 직후 피신해 있던 경기도 이천 앵산동에서 수운 선생 득도일인 4월 5일 대낮, 1895년 4월 5일 모든 생명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대낮 정오에 바로 이 향벽설위를 나를 향한 제사 즉 향아설위(向我設位)로 바꾸어 놓고, 이 법은 앞으로 오만 년 동안 폐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멧밥은 신위(지방)를 저 벽 쪽에서부터 번쩍 들어 제사지내는 주체, 밥을 생산하는 주체 쪽으로 조상을 영과 하느님과 낙원과 미래의 행복의 가능성과 옛 성인들의 기억, 인류와 우주진화사의 기억 전체, 그리고 삼라만상과 모든 신령들이 다 모여 있고 깃들어 있고 서려 있는 지금 여기 생생히 살아서 이 자리에 우뚝 서 있는 그 제사 우주체요 상제인 나 앞에 똑바로 가져다 놓고 내가 나에게 빌고 내가 나에게 절을 함으로써 비록 제한된 범위, 낮은 차원에서나마 지금 여기에서 끊임없이 제 희망을 실현시키려는 바로 그 개벽의 문화를 참답게 모신 것입니다."4)
신비주의적 언어의 압박을 견뎌 낼 수 있다면, 벽을 향한 제사에서 나를 향한 제사로의 방향 전환이 지닌 정치적이고 문명사적 전환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먼 미래의 행복과 현실 너머에 있는 구원에의 약속을 위해 현재을 망각하고 부정함으로써 부당한 현실에 굴복하며 살아가는 순응적 태도를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그 대신 현재를 구원의 약속이 이행된 순간으로, 즉 축제의 무대로 인식한다는 것은 현재를 긍정하는 것을 말한다. 숨쉬며 살아가는 현재에 대한 긍정은 축제를 가로막는 모든 불의에 대한 완강한 저항을 내포하고 있다. 즉 이 땅 위에서 인간답게 살며 다 함께 축제를 향유하기 위해 저항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2002 한일 월드컵 축제의 기억은 2008년의 촛불 문화제로 이어지지 않았나.
(위 사진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장면이고, 아래 사진은 2008년 촛불집회를 위해 시청 앞에 모인 군중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응원과 집회를 사진을 통해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축제 가장 행렬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독일에서 있었던 Anti-G8 세계정상회담에 대한 시위장면 모습이다. 이처럼 축제와 정치는 하나일 수 있다.)
그렇다면 명절을 축제의 장으로 만드는 일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닐 지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벌써 우리 곁에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록 그것이 느리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by ddolappa
참고자료
1. "고부갈등의 역사적 뿌리는 제사 승계권"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70723182106408&p=hankooki
2. 조선의 며느리들도 제사가 싫었을까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388
3. 앞의 글
4. '생명정치'를 지향하며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view.html?cateid=1026&newsid=20080829084708884&p=press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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