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37> 냉정과 열정 사이 -1/2-

ddolappa 2008. 11. 4. 18:23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37> 냉정과 열정 사이 -1/2-

 

 


무한도전 123회 080927 : PD 특공대 1

 


농담 속에 뼈가 있다


'아이템 기획 회의'를 위해 휴일날 방송국 대기실에 모인 무한도전 출연자들 사이에선 누구나 할 것 없이 앓는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상황극 연출만 20년째'인 '박부장' 박명수는 얼마전 태어난 딸아이를 돌볼 시간도 없다며 갓난아기 옹알이같은 말투로 불평을 늘어놓다가 도리어 다른 멤버들로부터 타박만 들었다. 정형돈이 '지금 이럴 시간이 없다'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화제를 돌리자, 자막은 '형돈아, 진지할 시간이 없다!'며 예능 프로그램과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진지한 그의 태도를 지적했다.


화제는 어느새 '거침없이 하이킥' 종영 이후 6개월째 '무한도전'과 '식신원정대'에만 출연하고 있는 정준하에게로 넘어갔다. 박명수가 프로그램 시작 구호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표절의혹을 제기하자 정준하는 이내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박명수의 맹공에 정준하는 억울한 표정을 지어가며 부정했지만 논란은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박명수가 취재 아이템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자, 이번에는 정준하가 기다렸다는 듯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박명수 존재감'을 언급하며 그를 공격했다.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하게 의자에 기대어 있던 박명수는 눈을 번쩍 뜨며 인터넷으로 '박명수 존재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서로의 약점을 꼬투리 삼아 비난을 일삼는 이 풍경은 무한도전에서 늘상 보아오던 것들이지만 그냥 웃자고 하는 농담으로 받아들이기엔 그 안에 옹골차게 박혀 있는 뼈가 유난히 단단하게 느껴진다. '식신원정대'에 빗대어 지적되고 있는 모 프로그램의 베끼기 논란부터 시청자 게시판과 인터넷에 떠도는 출연자들 각자에 대한 지적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웃어 넘길 수만은 없는 사안들이다.


특히 출연자들이 구축한 캐릭터 문제는 엔터테이너로서 그들이 지닌 역량과 직결된 문제이며, 동시에 앞으로 무한도전의 행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출연자들이 서로의 단점을 지적하고 있는 이 장면은 여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퀴즈의 달인' 시절부터 다듬어 온 그들의 캐릭터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의 작품인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이후 기존의 캐릭터로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여지는 더욱 좁아졌기 때문이다.


김태호 PD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는 "캐릭터를 어떻게 바꾸느냐가 걱정이다. 캐릭터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감이 없어진다거나 하는 때도 있는데, 어떻게 그걸 보여주느냐가 걱정이다. 이 사람들의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니다. 이제는 그런 내부적인 것들을 끄집어내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가 '아하 게임'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캐릭터를 바꾼다는 것은 결코 녹록치만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대표적인 예로 '식신'과 '동네 바보형' 캐릭터로 굳어진 정준하의 이미지는 그가 '지못미 특집'에서처럼 아무리 변장을 하고 애를 쓰더라도 쉽게 지워지지 않을 만큼 그에게 체화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무한도전이 2008년도 하반기에 캐릭터들 간의 경쟁에 초점을 맞춘 아이템을 내세운 전략은 그들의 캐릭터를 재조정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출연자들의 삶 깊숙히 파고 들어 잘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면모를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이미지의 폭은 더욱 넓어지고, 이를 통해 자연스러운 캐릭터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태호 PD의 대담한 한 수


대기실에서 나눈 대화에서 그리고 'on Air 매니저 특집'에서 정준하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는 분명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바로 "그 사건" 이후 그의 캐릭터는 성장을 멈추고 '동네 바보형'으로 거의 고정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담당 연출자인 김태호 PD도 "그 사건" 이후 그의 캐릭터에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할 정도였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무한도전의 다른 캐릭터들은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온 반면, 정준하는 그의 캐릭터처럼 과거 속에 박제된 채로 지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를 진짜 바보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하소연은 바보 캐릭터가 얼마나 고착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나 역시 정준하가 연예인으로서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은 "무한도전의 명예를 더럽힌 피의 대가로 얻은 제 2의 삶"1)으로 규정한 바 있듯이, 오늘날 그가 당면한 위기의 대부분은 스스로가 자초한 바가 크다는 사실을 본인조차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을 근거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손쉬운 비판을 하는 대신, 나는 성장을 멈춘 정준하의 캐릭터에 대한 조금은 다른 접근을 해보고자 한다.


정준하는 올해 방영된 S본부의 드라마 '우리집에 왜 왔니'에서는 어리숙한 바보가 아닌 지적장애아 역을 제대로 소화해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 때 당시에 했던 인터뷰에서 정준하는 바보 캐릭터에 고정된 자신의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바 있다. "바보 이미지를 실제 내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비판하는 이들을 볼 때는 너무 안타깝다. 단박에 바보 캐릭터에서 빠져 나올 수는 없다. 서서히 변화할 때가 됐다."2)


그러나 그의 이러한 바람이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데에는, 앞에서 언급한 "그 사건"의 여파, 정준하 개인의 능력 부족 등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지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또 한 가지 요소는 편견과 선입견처럼 작용하는 이미지의 힘이다.


정준하가 개그맨 생활을 시작했던 초기에 그는 '개그계의 개업떡', '독한 맛에 6주'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개그계의 개업떡'은 새로운 코미디 프로그램이 생길 때마다 얼굴을 비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고, '독한 맛에 6주'는 독한 맛에 써보지만 6주 후면 프로그램이 없어지거나 본인이 퇴출당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그가 이런 별명들을 떼어버릴 수 있었던 계기는 2003년 표영호, 문천식 등과 함께 출연한 '노브레인 서바이버'를 통해 마련된다. 그는 70년대 비실이 배삼룡, 80년대 이주일, 90년대 영구 심형래와 맹구 이창훈 등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인기 캐릭터인 바보 캐릭터의 계보를 이어나가며, 그해 '방송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 및 인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노브레인 서바이버' 시절의 정준하



문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악당이나 건달 역할도 했지만, 대중들이나 방송계에선 여전히 그를 바보 캐릭터 전문 연기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를 진짜 바보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 정준하의 표정에서는 한 번 정해진 이미지를 운명처럼 안고 살아가야 하는 희극 배우의 고뇌까지 읽힌다. 이러한 표현이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어쩌면 더 큰 비극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맹구'로 큰 인기를 누렸던 배우 이창훈은 5년 넘게 연예계를 떠났다가 몇 해 전 다시 연극무대로 복귀했는데, 그의 인터뷰 내용은 현재 정준하가 처한 상황의 핵심을 정확히 지적해주고 있다. “방송 코미디요? 다시는 안 합니다. 맹구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이미지가 너무 강했어요. 아직도 따라다니니 배우한텐 치명적인 배역이었습니다.”


원래 연극배우였던 이창훈은 우연히 잠깐 출연한 방송이 계기가 되어 순식간에 코미디 스타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음날이면 모든 어린이들이 따라했을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당연히 방송과 언론은 그를 붙잡기 위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하지만 꿈같은 시절도 잠시. 다시 본업인 배우로 돌아가려 했지만 바보 캐릭터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배우 이창훈의 활동무대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고기집을 운영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맹구' 이창훈


현재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심형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영구'라는 캐릭터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코미디언인 심형래 감독은 한국의 영화계에서 '영화감독'이 아닌 '연예인'으로 취급받는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어느 정도는 그가 상업적 목적을 위해 이러한 대립구도로 나아간 측면이 없진 않아 보이지만, 한 영화제에서 사회자가 다른 영화감독들에게는 꼬박꼬박 '감독님'이란 호칭을 붙이면서 그에게는 '씨'라는 호칭으로 불러 구설수를 낳기도 했던 일화에서 알 수 있듯, '한 번 바보는 영원한 바보'라는 선입견이 철옹성만큼이나 견고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영구' 심형래


그렇다면 정준하 역시 선배 코미디언들이 겪었던 운명을 감내하며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김태호 PD는 정말 대담하기 짝이 없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매니저 특집' 편에서 그는 바보 캐릭터에 고정된 정준하에 대한 동료 PD들의 비판적 인터뷰를 삽입해서 그의 캐릭터 변화를 촉구하는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바보 캐릭터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겠지만 다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지노 노선이 확보된 셈이다.

 

 

 


정준하 자신도 바보 캐릭터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고, 무한도전 제작진에서도 캐릭터 변화를 모색해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과연 그들이 '정준하, 바보 식신 이미지의 한계'와 같은 제목의 기사를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틈만 나면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무한도전' 디자인 편, '우결' 개별 인터뷰 차용 '눈살'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기사를 써왔던 기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을 김태호 PD와 제작진이 단순히 출연자의 분발을 촉구하기 위해 그 엄청난 떡밥을 투입했던 것일까? '매니저 특집'에서 정형돈이 정준하에게 '노브레인 서바이버' 시절에 했던 구구단을 시키는 장면이나, 매니저의 본분을 망각한 채 식당에 들러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식신'다운 모습을 보여준 장면이 과연 우연히 삽입된 장면들일까? 그런 장면들 때문에 예능국 연출자들의 인터뷰가 더욱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장을 멈춘 정준하의 캐릭터를 공론화함으로써 캐릭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명분과 필연성이 확보된 셈이다. 무한도전에서 그의 캐릭터가 달라진다고 해서 이상한 일이긴 커녕 오히려 팬들조차 환영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태호 PD가 정공법을 선택해 노린 효과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그의 대담함에 간담이 서늘해질 뿐이다.

 


형식과 스타일 읽기의 즐거움


'PD 특공대'는 부제가 '네 멋대로 해라 2'라는 점에서 '네 멋대로 해라 특집'의 반복이라 할 수 있다. '네 멋대로 해라 특집' 1탄은 열심히 일한 제작진에게 휴가를 주겠다는 명목으로 출연자들이 연출과 편집을 맡게 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 그 2탄에 해당하는 'PD 특공대'는 아이템 기획, 게스트 섭회, 자료 수집, 녹화, 편집, 자막 등 프로그램 제작 과정 전반을 출연자들이 직접 체험하며, 방송에 대한 평가가 쉽게 내려질 수 없다는 메세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웃음을 유발하는 스타일과 방식도 반복되고 있다. 시사교양국에서나 다룰 법한 아이템을 이야기해놓고 "우리가 예능국이냐?"고 능청을 떠는 정형돈을 정준하가 "그럼 재첩국인 줄 알았냐?"고 썰렁한 유머로 타박하자 '지못미 특집' 2탄에서 등장했던 '전국 규모의 탄식'이란 자막이 또 사용되었다. 그런데 '잔혹한 출근' 편의 그 자막 스타일은 '좀비 특집'의 자막을 거의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유재석이 백신이 든 병을 허무하게 깨뜨리고 난 후 계단에 주저앉자 '하찮은이 꼬아놓은 촬영의 최후 / 다시는 이들에게 지구를 맡기지 않겠습니다'라는 과장된 자막이 등장해 웃음을 주었는데, 정준하로 인해 박명수를 속이는 몰래 카메라가 실패했을 때도 동일한 스타일의 '전국에서 들끊는 탄식소리 / 다시는 바보형에게 몰카를 맡기지 않겠습니다'라는 자막이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유머 포인트는 사소한 실수를 과장하고 있는 그 어법에 있다.

 

 

'PD 특공대'의 한 장면

 

'좀비 특집'의 한 장면

 

'지못미 특집 - 잔혹한 출근'의 한 장면


정준하가 '1인자' 유재석을 고발하는 단독 프로그램을 찍기 위해 수시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은 '서부 특집' 이후로 수시로  무한도전에서 언급되었던 그만의 아이템이었다. '서부 특집'에서 유재석, 하하, 노홍철은 '무한도전의 고질병 지각'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정준하의 집에 잠입해 현장르포 '무한수첩'을 촬영해서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화가 난 정준하는 그 이후 6mm 카메라를 직접 들고 다니며 다른 멤버들의 비리를 밝히는 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하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PD 특집'에서 정준하가 보여준 행동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발대상이 뻔히 보고 있는데도 몰래 카메라를 들이대는 정준하의 행동은 무한도전의 세계관 내에서는 최소한 납득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부 특집'의 한 장면

 

'PD 특공대'의 한 장면

 


유재석과 함께 정준하가 연대 축제 때 박명수의 노래를 따라부른 여학생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어이없는 촬영방식은 이미 수많은 코미디 소재로 활용된 것이고, '네 멋대로 해라' 특집 1탄에서 정형돈이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카메라 감독을 대신해 촬영에 도전한 정형돈은 이리저리 어지럽게 카메라를 움직이며 음악방송처럼 찍고 있는 것이라 변명을 늘어놓게 되는데, 그 당시에는 CG까지 사용해 음악방송과 같은 효과까지 연출해주기도 했다. 따라서 정준하가 아닌 다른 멤버가 유재석을 동행했어도 카메라를 소품으로 활용한 개그를 펼쳤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쇼 오락프로그램 촬영 방식과 어긋난 카메라 워크로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은 너무나 익숙한 공식이기 때문이다.

 

 

'네 멋대로 해라'의 한 장면 

 

'PD 특집'의 한 장면



'PD 특공대' 편에서 가장 형편없는 2편의 프로그램을 선정해 '경위서'를 쓰게 하겠다는 설정은 '좀비 특집'에 등장했던 '경위서'에 대한 언급을 다시 비틀어 마련된 설정이다. 당시에는 방송 사고에 가까운 새로운 스타일의 개그를 이해하지 못했던 일부 시청자들과 일부 기자들이 '경위서'라는 관료주의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태호 PD가 써야만 했던 경위서란 징계 차원의 것이 아니라 제작비 초과에 대한 해명의 성격을 띤 것이었고, 그것의 패러디로 노홍철이 쓰게 될 경위서는 일종의 반성문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무한도전이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아니라 오락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경위서'에 내포된 과장, 굴욕, 실망, 허탈 등의 의미를 읽어내고 기발한 착상에 감탄하게 되지 않았을까.


무한도전의 유머는 이처럼 그 형식과 스타일에 주목할 때 그 재미를 제대로 만끽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무한도전이 기존 예능의 법칙을 전복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코미디의 가능성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은 코미디의 법칙을 탐사하는 코미디, 즉 코미디의 메타 담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연애 버라이어티를 총망라해 재구성한 'MT 가다'편이 대표적인 예이다. '무한걸스' 팀과 무한도전이 만나 벌이는 게임을 익숙한 짝짓기 버라이어티를 시청하듯 소비할 수 있지만, 무한도전이 주고 있는 새로운 재미는 기존의 형식이 뒤틀리는 지점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렇다면 무한도전에 관련된 기사를 쓰거나 비평을 할 때, 그리고 시청을 할 때, 무한도전이 어떤 소재를 다루고 있는가 하는 문제 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반드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경위서'란 단어를 단어 그대로 받아들여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분노를 터트려 웃음을 망치는 실수는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소재주의와 주관주의에 사로잡힌 저급한 방송 비평의 수준을 넘어 최소한의 이성적 논의가 가능한 틀거리가 마련되지는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눈에 너무나 뻔히 보이는 떡밥을 물고 좋아라 하며 한 개인에게 비이성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작태는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유머를 유머로 즐길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보다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열정과 냉정 사이의 균형 감각이다.

 

 


by ddolappa

 

 

 

1. 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15회(2006.3.25.)
http://tvzonebbs.media.daum.net/griffin/do/talk/program/challenge/read?bbsId=178_a&articleId=5269&pageIndex=1&searchKey=daumname&searchValue=


2. 정준하 "바보·식신 이미지, 버릴 순 없지만.."(인터뷰)
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08051508032293213&outlink=2&EV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