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38> 냉정과 열정 사이 -2/2-

ddolappa 2008. 11. 7. 10:31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38> 냉정과 열정 사이 -2/2-

 

 


무한도전 124회 081004 : PD 특공대 2

 


관계는 시너지 효과의 기반이다


하하의 입대로 인해 무한도전이 입은 가장 큰 손실은 다양한 관계 형성에서 발생하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하는 '무한재석교'의 혈열 신도이자 노홍철의 '죽마고우'였고, '사생활 폭로'로 박명수와 정준하를 주눅들게 할 수 있었고, 정형돈과는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어색한 사이'였다. 하하는 풍부한 리액션과 동물적인 예능감각을 바탕으로 멤버들 사이를 오고가며 이합집산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가 무한도전을 떠난 뒤 그의 빈자리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고, 다른 출연자들마저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며 그 뜨겁던 열정과 패기마저 사그러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 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캐릭터'와 '관계'를 통한 오락적 가치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무한도전'의 유재석이 겸직을 맡고 있는 S본부의 '패미리가 떴다'가 대표적이다. 그 곳에서 유재석은 윤종신, 김수로 등과는 '장년층'으로, 이효리와는 '국민남매'로, 거의 스무살 가량의 차이가 나는 대성과는 '덤 앤 더머'로 묶여 맹활약하고 있다. '엉성천희', '김계모', '예진아씨' 등과 같은 대부분의 캐릭터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는 점에서 예능의 복음을 전파하는 '무한재석교'의 교주로서 손색없는 변모를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무한도전이 아니었다. 그들 내부에서도 하하의 자리를 대신해서 서서히 새로운 관계망이 형성되고 있었다. 정준하로 인해 '뚱뚱보' 캐릭터를 빼앗기고, 하하로 인해 '어색한 뚱보'로 머물러 있던 정형돈이 차츰 자신감을 회복하며, '웃기는 것 빼놓고 모든 것을 잘 하는' '예능계 기능인'으로 성장했다. 하하의 개그 스타일과는 상성관계에 있던 정형돈으로선 하하의 부재가 오히려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그의 애드리브에 재미없다며 딴지를 걸었던 하하가 사라지자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고, '무한재석교'의 열혈 광신도가 막고 있던 유재석과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될 수 있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관계가 '햇님-달님'이다.

 

 

 


하하가 맡고 있던 역할의 대부분은 그와 '죽마고우'였던 노홍철이 떠맡게 된다. '비난계의 꿈나무'에서 '젊은 악마'로 성장한 노홍철은 유재석에게는 변함없는 존경심을 보내는 '무한재석교의 살찐 어린양'이지만, 무한도전 내에서 '늙은 악마' 박명수를 거의 유일하게 꺾어누를 수 있는 존재로 부각되면서 그와 '데블매치'를 벌이게 된다.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에 대한 인터뷰에서 "돈가방을 가장 열심히 찾을 건 분명히 박명수일 거고, 그런 박명수를 등칠 수 있는 건 노홍철 밖에 없다."는 김태호 PD의 증언은 그들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하가 '사생활 폭로'를 무기 삼아 정준하를 압박했다면, 노홍철은 적절한 비난과 놀림으로 속된 말로 그를 가지고 논다. 정준하가 '식신원정대'에서는 중심이라고 하자 노홍철은 "아, 나 봐야되는데 한번을 못 봤네."라고 무심한 척 말해 그의 기를 빼놓는다. 박명수가 표절문제로 정준하를 닦달하거나, 취재 아이템으로 '가을철 먹거리'를 추천할 때도, 노홍철은 정말 베낀 거냐고 묻거나 정준하의 말투를 흉내내 "전어랑 얘기도 하고 막! 전어야! 전어야!"라고 말해서 말리는 시누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노홍철이 하는 비난의 특징은 워낙 발상이 독특하고 능청스러워 비난 당하는 사람조차 웃게 만든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새로 영입된 전진과 기존의 출연자들이 맺고 있는 관계이다. '돈가방 특집'에서 유재석은 전진에게 '잔진'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선물했고, 주차장에서 자신의 몸개그를 따라하는 전진에게 "너 참 나랑 잘 맞는다!"며 호감을 표시했다. 물론 이 표현은 무한도전이 아닌 '패미리가 떴다'의 대성에게 주로 사용되면서 '덤 앤 더머' 형제가 탄생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자신을 '아이돌'이라 우기는 '돌+아이' 노홍철은 진짜 '아이돌' 전진에게 호감을 표시한다. '지못미 특집' 2탄에서 루머에 대응하는 전진의 모습을 보며 연신 감탄하는 노홍철의 모습은 '매니저 특집'에서 그들이 맺게 될 닭살 커플을 예감하게 한다. 반면 전진은 정형돈과 친분을 바탕으로 윽박지르는 개그를 했던 초기의 모습에서 데뷔 10년 차 연예인이지만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신인' 이미지를 획득하게 된다.


전진과 가장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박명수와 엮일 때 그는 큰형님을 놀리는 막내의 관계를 보여주고, 몸매와 성실성 면에서 정반대에 서 있는 정준하와 함께 할 때는 캐릭터 간의 선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캐릭터 간의 가장 뚜렷한 대비를 보여준 '매니저 특집' 편에서 전진은 마음 씀씀이가 깊고 성실한 동생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고, 그와 대조를 이룬 정준하는 캐릭터를 변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매치는 결과적으로 '윈-윈'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무한도전이 공식으로 정리해낸 새로운 오락적 재미는 이처럼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개개인의 능력을 넘어선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의 성장과정은 소위 A급 연예인들만 모아놓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오락적 가치가 산출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그리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서 수준 이하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또 하나 주목할 사실은 현재 무한도전이 만들어낸 이상한 풍경에 있다. 한 출연자가 예전만 못한 예능감을 보여줄 때, 시청자들은 출연자를 바꾸라는 요청을 했고, 시청률에 민감한 제작진은 그러한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곤 했다. 그러나 정준하의 캐릭터 논란에서 특이한 점은 상당수의 시청자들이 무한도전을 향해 그의 하차를 요구하는 대신 캐릭터 변화를 요청하며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연예계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이러한 낯선 풍경 역시 무한도전의 뛰어난 인적 매니지먼트가 일구어낸 값진 성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두 뚱보들이 무한도전의 미래다?!


PD가 되어 자신과 동료들의 촬영본을 보며 편집하는 일은 자신과 동료들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PD 특집'에서 출연자들에 대한 코멘트 담당은 유재석이 맡고 있는데, 이는 그가 우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모든 관계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바보형' 정준하와 티격태격 다투는 사이인 유재석은 정준하의 답답한 인터뷰 내용을 보며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무한재석교의 살찐 어린양' 노홍철의 조작편집을 꿰뚫어보고 어이없어 하기도 한다. 야외촬영으로 지쳐서 편집은 나 몰라라 하고 쓰러져 있는 '2인자' 박명수를 찾아가 웃음을 주는 것도 그의 몫이고, 차세대 MC를 꿈꾸는 정형돈의 촬영본을 보며 '국민MC 진행 클리닉'을 하는 것도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과거 하하가 했던 역할을 이제는 유재석이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유재석이 정신 사나운 출연자 전체를 아우르는 진행을 하면서 동시에 각자와 상황극을 펼치기란 너무나 벅찬 일이다. 당장 '패미리가 떴다'에서의 모습과 비교를 해봐도 '무한도전'의 유재석은 과도한 진행부담의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 눈에 띄인다. '패떴'에서 유재석은 이효리와 공동 진행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다, 윤종신과 김수로가 큰형님 역할을 하며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보다 자유롭게 개그를 펼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MC'란 칭호 뒤에 가려진 그의 개그본능이 분출될 수 있는 충분한 발판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김태호 PD가 유재석의 진행부담을 덜어줄 보조 진행자 역할을 찾고 있는 까닭도 바로 이 점에 있다. 또한 유재석은 '최고령 아이돌 그룹' 무한도전의 '리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진행자로서 그의 역할만 부각시키다 보면 '유재석의 무한도전'으로 비춰질 위험이 있다. 무한도전은 이 두 가지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유재석-정준하' 조합과 '유재석-정형돈' 조합을 시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 최근 유재석은 캐릭터의 매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정준하와 조합을 이루어 초등학생들처럼 유치하게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재석과 박명수 커플이 여전히 안정적인 웃음을 주고 있긴 하지만 다소 식상해진 상황이라면, '이산 특집'에서 선보인 유재석과 정준하 조합은 아직 그 가능성이 충분히 탐구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에 이제 막 들어선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정준하에게는 의외로 골목대장 기질이 있는데, 실제 생활에서 연예인 야구단 주장을 맡기도 했고, 수많은 후배 연예인들이 그를 따르고 있는데서도 이는 확인된다. 무한도전 내에서 그가 지닌 리더쉽이 유재석의 리더쉽과 정면 충돌한 대표적인 일화는 '슈퍼 모델 특집' 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록 시범무대이긴 하나 런웨이에 서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주눅이 든 멤버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자 정준하가 나서지만, "형, 이런 건 내가 해야지!" 하는 유재석의 한 마디에 정준하는 순순히 물러나고 말았다. 이는 무한도전의 주도권이 유재석에게 있음을 인정한 사건이지만, 정준하에게 리더 기질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사건이기도 하다. '무인도 특집' 편에서 코코넛 열매를 힘들게 열어 동료들에게 선뜻 건내준 것이나, '형돈아 놀자!' 편에서 자취를 하는 정형돈에게 음식을 가져다 준 것도 리더다운 아량을 베푼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정준하의 이러한 성격은 박명수에 의해 '있는 척'으로 정리되면서 그 이후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유재석이 박명수를 대하는 태도와 정준하를 대하는 태도는 미묘하게 다를 뿐 아니라, 이 둘이 유재석에게 하는 리액션 역시 차이점을 지닌다. '1인자' 유재석의 자리를 시샘하고 질투하는 박명수가 '하찮은' 권위를 내세워 그를 윽박지르면, 유재석은 박명수의 말실수나 헛점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웃음이 만들어진다. 반면 정준하에게는 그런 질투가 없는 대신 강한 승부근성이 있기 때문에 유재석과 함께 있을 때 서로 지지 않으려는 다툼을 벌이게 된다. '이산 특집' 편에서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나 '디자인 특집'에서 전진이 초등학생들처럼 다툰다고 증언하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이다.


'1인자'에 대한 질투심이 없는 정준하를 도발하기 위해 유재석은 계속 깐족거리며 그의 승부근성을 자극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이 과정에서 유재석은 '동네 바보형'을 놀리는 개구장이 동생의 모습을 보이며 '진행자'로서의 면모를 상쇄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정준하 역시 그 과정에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여지가 충분하고, 상대방의 캐릭터를 포착하는데 능한 유재석이 그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새로운 캐릭터가 탄생할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유재석과 정준하 조합은 앞으로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치켜봐야 할 개그 듀오라 할 수 있다.


2) 무한도전 내에서 유재석의 진행부담을 덜어줄 사람을 선택하라면, 단연 정형돈이 돋보인다. 아직 부정확한 발음과 웅얼거리는 말투,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부족 등으로 인해 단독 진행자가 되기까지는 시일이 걸리겠지만, 그는 개그의 포인트를 파악하고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선구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퀴즈의 달인' 시절에도 그러한 가능성이 엿보였지만,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진행자로서 정형돈은 모니터를 보며 적절한 멘트를 구사하는데 있어 뛰어난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핵심을 재빨리 파악해서 상황에 적합한 멘트를 구사하는 훈련장으로 그에게 그보다 더 좋은 무대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무한도전은 최근 들어 '달님' 정형돈의 진행자로서의 면모를 자주 부각시키고 있다. '지못미 특집' 2탄 '잔혹한 출근길'을 기획하고 연출한 정형돈이 오랜만의 단독샷에 흥분했는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자, 화제가 되었던 블로거의 글을 인용하며 '대체 누가 유재석, 강호동을 잇는다는 건지'라는 자막이 등장했다. 비록 조롱조로 사용되었긴 하나 진행자로서 정형돈의 면모를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라 할 수 있다.

 

 



'PD 특공대' 편에서 유재석은 정형돈의 촬영본을 검토하며 몸소 '국민MC의 진행 클리닉'을 시연해보였다. 개그맨으로서 어울리지 않게 나른하고 침울한 분위기를 연출해 반어적으로 웃음을 주었던 장면이지만, 정형돈이 제대로 된 진행자가 되기 위하여 극복해야 할 단점이 지적된 장면이기도 하다. '매니저 특집' 편에서 '우리 결혼했어요' 녹화장에서 모두가 밝게 웃고 있는 가운데 혼자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형돈을 포착한 화면 역시 스튜디오의 분위기를 주도해야 할 진행자로서 적절치 못한 행동을 지적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한도전에서 정형돈이 진행자로서 아직은 부족한 면모를 반복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그가 한 블로거의 예언처럼 차세대 국민MC의 칭호를 듣게 될 지는 미지수이나 진행자로서 그의 가능성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공교롭게도 그 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두 뚱보들에게 무한도전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다소 해괴한(!)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들이 현재의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무한도전의 구세주로 우뚝 서게 될 지 아니면 지금보다 더한 나락으로 추락하게 될 지는 현재로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전적으로 그들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팬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란 관심을 갖고 그들을 지켜보며, 때로는 다정한 말로 용기를 북돋아주고, 때로는 매섭게 비판의 채찍을 드는 일이 전부가 아닐까. 충고가 필요할 때 채찍을 들고, 채찍이 필요할 때 애정으로 감싸는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도전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건 분명하다. 두 뚱보 형제의 건투를 빈다.

 


'돌+아이'는 '돌+아이'다


'PD 특공대' 편에서 가장 돋보인 사람은 단연 노홍철이다. '위인 노홍철'이라는 다소 황당한 아이템을 선정하기는 했지만, 그만의 개성과 매력이 물씬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기 탐구라 할 수 있는 노홍철의 아이템은 '돌+아이'라는 그의 이미지가 실제인가 아니면 만들어진 이미지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선 취재물이라 할 수 있다. 대학동창과의 전화 통화, 그를 연예계에 데뷔시킨 연출자와의 인터뷰, 초등학교 동창과의 만남, 고교시절 은사로부터 듣는 그의 학창시절 모습에 대한 증언 등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노홍철은 실제로도 '돌+아이'가 확실하다는 인상을 각인시키고 있다. 그가 결과물로 제출한 방송물 역시 '위인 노홍철'이 되고자 했던 바람과 달리 그의 '돌+아이'스러움을 재차 확인시켜줄 뿐이다.

 

 



그렇다면 자기 캐릭터를 강화하는 아이템 선정을 통해 노홍철이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그의 '돌+아이' 캐릭터가 가식이 아니라 그의 실제 성격이 반영된 캐릭터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연예계에 범람하는 무수한 캐릭터들이 그 사람의 실제 모습과 무관하게 만들어진 것이거나, 특정한 부분이 과장되고 왜곡되면서 만들어진 것들이라면, 노홍철은 가상의 캐릭터와 실제 성격이 일치하는 전무후무한 인물이 된다. 그 결과 노홍철의 캐릭터는 실제와 허구의 혼동을 유발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지향하는 무한도전에서 꼭 필요한 인물임이 분명해진다.


'길바닥 출신'답게 노홍철이 보여주는 놀라운 대중 친화력은 유재석의 그것과 달리 사람들을 불러 세우고 흥분시키는 기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처음 만나는 거리의 밴드에게 연주를 부탁해서 즉흥적으로 '노홍철 찬가'를 만들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합창을 부탁해서 마치 광신도 집회같은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노홍철의 능력은 가히 천재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노홍철은 '지못미 특집'에서 자신을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대중을 보고도 쑥스러워 하며 그냥 지나쳐버린 정형돈과 정반대라 할 수 있다.

 

 



사기꾼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이 유쾌한 사내가 만든 방송물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독창적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멤버들이 다소 평범한 아이템을 선택해 익숙한 표현기법으로 제작했다면, 극심한 과장법이 동원되고 조작이 되지 않은 장면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심하게 왜곡된 '위인 노홍철'은 그만의 개성과 독특한 정신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박명수가 그의 면전에서 "저거 완전 돌+아이 아니야!"라고 비난을 했지만, '디자인 특집'에서 누구보다 그를 먼저 부원으로 선택하고, 정형돈보다 노홍철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노홍철의 독창성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노홍철 자신에 의한 자기 탐구는 이처럼 '돌+아이'라는 그의 캐릭터가 풍부한 뉘앙스를 풍기도록 하고 있다. '노홍철은 돌+아이다'라는 명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의 다양한 모습들이 속속들이 발견되면서 '돌+아이'라는 캐릭터가 선택할 수 있는 이미지의 가지수가 더 늘어난 것이다. '김수로 특집'에서 몰래 카메라에 속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맥이 풀려 우는 모습은 '순수함'으로 표현되었고, 올해 초 피습사건에서 자신을 구타한 사람을 오히려 다독이며 진정시키는 노홍철의 모습에서 대범하고 침착한 면모가 부각되었고, '매니저 특집'에서는 실제 그의 매니저의 증언에 의해 예의 바르고 약속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돌+아이'란 베이스 위해 덧칠해진 이러한 이미지들은 캐릭터를 보다 입체적이고 구체적으로 만들고 있다.

 

 



최근의 무한도전은 이처럼 출연자들 각자의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PD 특집'에서는 노홍철이 집중적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다른 출연자들도 현재의 캐릭터를 변화시킬 만한 다양한 면모들이 카메라에 포착되고 있다. 가령 박명수는 '다찌지리와 리남매' 이후 (출연료 외엔) '나 몰라라'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종종 잡히고 있다. 그외에도 초반에는 열정적으로 촬영에 임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을 잃어가는 모습이나, '예쁜 아기만 보면 슬픈 민서 아빠'라는 자막처럼 딸아이를 지닌 가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고, 폭우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우산도 쓰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촬영하는 모습을 보여줘 '나 몰라라'하는 태만한 이미지를 반감시키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출연자들 각자가 어떤 이미지를 축적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떠한 변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가를 염두에 두고 그들의 모습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도 시청의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조작와 미학 사이


'PD 특공대' 편이 전달하는 또 다른 중요한 메세지는 동일한 소재라 하더라도 편집에 따라 방송의 내용 자체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출연자들이 각자의 아이템을 실제로 취재하는 과정에서 보았던 장면들은 편집을 통해 시사 고발 프로그램처럼 만들어지기도 했고, 황당무계한 개인 찬양물로 제작되기도 했다. 편집은 기획 목적과 의도에 따라 그리고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수많은 영상들에서 필요한 부분을 취사선택해 압축하는 과정이고, 따라서 영상 선택의 기준이 달라질 경우 결과물 역시 상이한 성격을 지니게 된다. 노홍철이 촬영한 영상은 '위대하고 웅장하게' 보이려는 목적으로 편집되었기 때문에 '위인 노홍철'이라는 허풍스러운 작품이 나왔지만, '진지하게' 접근했을 경우 한 인물을 탐구하는 개인 다큐멘터리가 될 수도 있었다.

 

 

 


방송이 편집을 통해 현실을 단순히 '재현'하지 않고 새롭게 '구성'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방송을 보며 '리얼'하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편집의 효과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촬영과정에서 큐도 없고 컷도 없다고 해서 '진짜 리얼'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시청자들에게 '리얼'하게 다가오는 것은 '와, 진짜 리얼하다!'고 외치는 출연자의 부르짖음도 아니고, 큐도 없고 컷도 없는 촬영 스타일도 아니고, 편집을 통해 재구성되어 안방에 전달되는 영상일 뿐이다.


편집에 대한 이러한 이해 방식은 미디어 일반에 대한 이해로 확대될 수 있다. 즉 우리가 '현실' 혹은 '실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미디어가 관찰한 것을 다시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우리는 정보를 얻게 되는데, 그 정보라고 부르는 것조차 미디어의 입장에서 '뉴스로서 가치를 지닌 것',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센세이셔널한 사건', 한 사회 전체의 이해와 관련된 것 등의 기준에 따라 '편집'(선택)된 것이다. 개인들은 미디어가 제공하는 수많은 정보들 중에서 관심을 끄는 정보를 선택해서 '현실'의 이미지를 구축하게 된다.


물론 미디어가 현실을 구성한다고 해서 '실제' 자체가 아예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 출퇴근을 하며 이용하는 다양한 교통수단들, 애인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 들른 영화관, 수업 시간에 졸고 있는 친구의 얼굴 등 개인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현실이 분명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구체적 현실에 대한 개인의 직접적 경험 내용은 언어, 그림, 수자 등 상징적인 표현 매체를 거치지 않고서는 타인에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라고 부르는 것을 구성하는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다. 개인의 생각이나 느낌을 상징적 표현 수단을 통해 전달하려 할 경우, 편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생각이나 느낌들 중에서 상황과 표현 매체에 적합한 것을 '선택'하게 되고, 이를 통해 '의견'이 전달 가능하게 된다. 인터넷 댓글이나 독자 투고 등을 통해 표현된 개인의 '의견'은 다시 매스미디어에 의해 관찰되어 한 사회의 '여론'을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 현실'이라 부르는 것은 미디어에 의해 구성된 상징적 현실이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처럼 매스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피부로 경험하는 실제 현실와 매스미디어에서 말하는 현실 간의 간극이 너무나 크다고 느껴질 때, 사회 구성원들은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현실의 이미지를 갖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사회 전체가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쉬운 예로, 조중동에서 말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한겨례 신문이나 경향 신문에서 말하는 '현실'은 서로 상이하다. 서로 다른 관찰 시각을 갖고 현실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 경제, 정치, 문화 등 모든 면에서 30년을 퇴보한 정책만 남발하는 정부의 무능력 역시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주된 원인이다. 매스미디어와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가 신뢰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개인들만의 은밀한 정보를 소유하려는 욕구가 증가하게 되고, 그 결과 루머와 소문과 같은 공신력이 없는 정보로 한 사회의 전체적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보상 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에 '괴담 공포'가 만연하게 된 원인이다.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자영업자로 소개된 사람은 SH공사 직원으로 밝혀졌다.)

 

('어청수 경찰청장 퇴진하라'는 팻말에서 '퇴진하라'는 글씨가 지워졌다.)

 

(미국산 쇠고기를 보도하는 신문에 실린 사진 속 주인공은

일반인이 아닌 중앙일보 소속 수습기자로 밝혀졌다.)

 



편집을 통해 현실을 은폐 및 왜곡시킨 대표적 사례로 '사직구장 사건'을 다룬 '1박2일'의 방송분을 예로 들 수 있다. 그 프로그램은 자막과 편집을 통해 논란이 되었던 부분들을 적극 해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50석을 예매했다고 하면서 100석이 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경기 시작 1시간 전이었기 때문이고, 롯데의 홈인 사직구장에서 한화의 응원가 '무조건'을 부렀던 건 관중들의 적극적인 요청에 의한 것이었고, 평균시간을 넘긴 클리닝 타임 동안 공연을 한 것은 이미 사전 협의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일 그 사건이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면, 그러한 화면 구성과 자막이 사용되었을까? 아마도 논란이 되리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논란을 해명하기 위해 그러한 장면들이 의도적으로 삽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프로그램은 애초의 기획의도에서 벗어난 방송을 제작했을 뿐 아니라, 오락적 목적이 아닌 자신들의 입장을 해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방송을 이용한 셈이 된다.


더군다나 프로그램을 연호하며 열기에 휩싸인 관중들의 모습을 스펙타클의 미학으로 승화시켜, 자신들은 사전 약속대로 움직였으며, 관중들이 이렇게 흥겹게 자신을 보아주고 있으니 모든 것이 괜찮은 것 아니냐는 식의 화면 편집은 지나치게 뻔뻔스럽다. 대체 '위인 노홍철'의 화면 편집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가?


결정적으로 이러한 과시적 화면 연출 뒤에 은폐되고 있는 사실은 MBC-ESPN이 KBO로부터 중계권료를 주고 사드린 중계권이 롯데 구단측과 그 프로그램의 음흉한 뒷거래에 의해 침해되었다는 사실이다.  MBC-ESPN의 스테디카메라는 롯데 프런트에 의해 운동장 출입이 제지된 반면, 중계권을 따로 구입하지 않은 '1박2일'의 카메라는 출입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가 되고 싶다면, 구단측과 사전 계약을 맺는 현장도 카메라 영상에 함께 담았어야 마땅한 것은 아닐까? MBC-ESPN의 해설진이 제대로 중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분통을 터뜨리며 내보낸 영상을 거짓이고 날조라고 반박하기 이전에, 자신들로 인해 중계권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MBC-ESPN 측에 공식적인 사과를 먼저 했어야 하는게 도리가 아닐까?


그런데 조작의 기술이기도 한 편집 테크닉은 동시에 모든 영상물의 미학적 핵심기술이기도 하다. 영화, 드라마, 오락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시사 교양 프로그램 등 모든 영상은 편집 과정을 거쳐 생산되며, 장르마다 상이한 편집 방식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편집 기술은 영상물의 내적 논리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로 볼 수 있다. 동일한 소재라도 편집 방식에 따라 차이를 지니게 된다는 말은 편집의 논리와 의도를 제대로 이해할 때만 영상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올바르게 수신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 점에서 편집 방법에 대한 논의가 없이 행해지는 텔레비전 비평이나 영화 비평은 모래 위에 쌓은 성과 다를 바 없다.


오락 프로그램의 팬들 사이에서는 재미는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방송들 간의 비교를 꺼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발휘하는 비교에의 유혹에 빠질 경우 어김없이 거센 논란이 일어난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편집 테크닉이나 화면 영상 구성에 대한 비교를 해본다면 어떨까? 이 경우는 논리적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모적 분란을 최소화할 수 있고, 상호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편집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나은 재미를 산출해낸다고 볼 수는 없지만, 오락적 재미를 생산하는 최소한의 논리적 조건이 편집에 의해 마련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범람으로 인해 예전보다 더 길어진 촬영시간은 고도의 편집기술을 필요로 하고, 그로 인해 편집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등장은 오락 프로그램이 다룰 수 있는 소재의 폭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편집 기법의 변화도 함께 가져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한도전의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편이 독특한 화면 편집을 통해 영화적 쾌감을 주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돈가방'편은 기본적인 시놉시스만 가지고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에 편집을 통한 논리를 부여하면서 서사적 구조를 만들어 냈다. 그렇다면 시놉시스조차 없이 편집만으로 리얼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일까? 무한도전이 '디자인 특집'에서 하고자 하는 실험이 바로 이것이다!

 

 


by ddola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