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45> 무한도전의 경쟁상대는 무한도전이다

ddolappa 2008. 11. 30. 13:55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45> 무한도전의 경쟁상대는 무한도전이다

 

 


무한도전 131회 081122 : 에어로빅 특집 3

 


'리얼리티'의 축소와 오락적 재미의 극대화


'모델 특집'이나 '댄스스포츠 특집'과 같은 이전의 대형 프로젝트와는 달리 '에어로빅 특집'에서는 흔하게 사용되었던 인터뷰 형식이 등장하지 않는다. 전문가와 출연자들의 인터뷰는 사실성을 제고하기 위한 극적 장치라는 점에서 인터뷰 형식의 부재는 곧 일정 부분 '리얼리티'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그 대신 '에어로빅 특집'은 극적 내러티브를 적극 차용해 오락적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1편에서는 에어로빅 체조에 입문해서 도전 과제를 알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고, 2편에서는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됨과 동시에 음악 선곡과 경기복 선정 작업을 통해 대회 출전에 본격적인 박차를 가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3편에서는 대회를 불과 열흘 앞두고도 동작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출연자들이 지옥훈련을 통해 거듭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에어로빅계의 강마에'라 불리는 종암동 에어로빅 강사의 출연, 1군과 2군의 구분을 통한 경쟁, 바다가에서의 지옥훈련 등과 같은 극적 설정을 통해 차별화된 내러티브를 전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의 전국체전 출전기를 다룬 '에어로빅 특집'은 이전의 대형 특집들과 달리 리얼 다큐멘터리적 기법으로 촬영된 오락물이 아니다. 연출의도나 기법적 측면에서 볼 때 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를 초청해 영화 '다찌마와리'를 패러디했던 '다찌지리와 리남매'나 세계 디자인 올림픽에 참가한 과정을 '토끼와 거북이' 우화로 풀어냈던 '디자인 특집'이 오히려 '에어로빅 특집'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일한 소재를 3주 넘게 방송한다고 해서 '우려먹기'라고 비난하는 일부 언론의 처사는 새로운 형식 실험에 주목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이고, 3개월이 넘게 계속되어온 그들의 노력을 몇 마디 말로 평가하려는 주제 넘은 짓이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반 시청자들보다 못한 심미안을 지닌 주제에 시청률이란 만능잣대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드는 얼치기 비판론자들부터 추방해야 한다.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베토벤 바이러스'까지


1등급 몸치들이 고된 훈련을 통해 훌륭한 체육인으로 거듭나는 기본 서사 구조는 다양한 문화적 텍스트들이 인용되며 변주되고 있다. 역대 최강의 독특한 포스를 자랑하던 종암동 강사는 단원들에게 "너희들은 내 개야!"라며 독설을 내뱉던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의 이미지와 오버랩된다. 낙오자는 즉각 포기하던 그의 모습은 영화 '실미도'의 독종 교관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모래사장에서 타이어를 끌고 지옥 훈련을 하는 모습은 이현세의 출세작 '공포의 외인구단'을 떠올리게 한다. 모래 주머니를 매달고 특훈을 하는 장면은 손오공과 크리닝이 무술을 연마하던 만화 '드래곤볼'의 한 장면을 차용하고 있다.

 

 

 

 


일종의 '가족 유사성'을 지닌 관계로 묶일 수 있는 이러한 문화적 텍스트들 속에 '무한도전' 역시 포함될 수 있다. "일류 연예인이 되기 위한 초특급 프로젝트"란 기치를 내걸었던 '무모한 도전' 시기부터 지금의 '무한도전'에 이르기까지 무한도전은 불가능한 과제에 도전해 훈련과 노력으로 이겨내는 과정을 오락적 재미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회 때 미셸 위를 만나러 가기 전 SS501과 예비 훈련을 했던 바다를 찾아간 것이나 '무모한 도전' 5회 때 수영장에서 개와 대결을 펼쳤던 소재를 다시 끌어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웃사이더들이 고된 훈련과 역경을 헤치고 존재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는 서사 구조를 무한도전 만큼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오락 프로그램도 드물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원년 멤버인 정형돈이 개가 먹다 남긴 물병 하나를 놓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광경을 목격하며 "이 그림 오랜 만에 본다"고 말했던 것 역시 무한도전의 근간이 되는 '헝그리 정신'에 대한 증언이라 할 수 있다.

 


무한도전의 경쟁상대는 무한도전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종암동 에어로빅 강사, 국가대표 에어로빅 코치 등이 맡고 있었던 훈련 교관의 역할을 '에어로빅 특집' 3탄에서는 연출자 김태호 PD가 직접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모래 위에서 지쳐 쓰러진 출연자들에게 땀을 닦을 수 있는 손수건 대신 무거운 납주머니를 발목에 차게 하거나, 단백질 보충을 한다는 명목으로 돈가스를 내놓고 아령 겸용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게 해 출연자들로부터 '악마'라는 원성을 듣게 된다. 또 갈증을 호소하는 출연자들에게 물을 주는 대신 개가 먹다 남긴 물을 놓고 스피드 경쟁을 하도록 하거나, 정준하가 1등으로 도착하자 "3판 2승으로 갈까요?"라며 다른 출연자들에게 물어 그를 허탈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독종 교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그의 능청스러운 연기력이 돋보였던 장면은 출연자들 몰래 가수 비의 컴백무대를 무대 적응 훈련장소로 선택했던 장면이다. 그는 공연장에 운집한 천 여명의 관객을 보며 '굿 찬스! 천 명 모으려면 돈이 얼만데....'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전국 체전에 몇 명이나 되는 관객이 오느냐는 출연자의 질문에 거의 5천 명 가까이 온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응? .... 속네.... ?'라고 능청을 떨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악질 교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김태호 PD는 '에어로빅 특집' 3탄의 내러티브를 전개하고 완급을 조절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한도전 이후 연출자의 TV 출연을 오락적 재미의 한 요소로 유행처럼 등장시키고 있지만, 그 방식은 이처럼 극을 진행시키기 위한 내적 필연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제한적으로 사용될 때에만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김태호 PD가 화면 정면에 나서서 출연자들을 속이기 위한 연기를 했던 최초의 에피소드인 '김수로 특집'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연출자의 등장은 쇼가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한 수단이었다. 완성된 형태의 쇼가 허구의 세계라면, 그것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폭로는 쇼가 제작되고 있는 리얼한 세계의 얼굴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출된 리얼한 현실의 모습을 다시 오락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면서 무한도전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했다. 이후 등장한 '리얼'을 표방한 쇼들은 무한도전이 정립한 '리얼 버라이어티쇼' 개념을 재해석하며 각자의 길을 걷고 있을 뿐 아직까지 무한도전이 구축한 쇼의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쇼는 등장하지 않은 게 현재의 상황이다.


따라서 자신이 정착시킨 쇼의 문법을 파괴하는 듯한 몸짓을 보여주고 있는 무한도전의 최근 행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무한도전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패러다임에 안주하는 대신 끊임없는 자기 부정을 통해 새로운 오락적 즐거움을 찾는 모험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한도전의 경쟁상대는 무한도전 뿐이라는 말은 오만함의 표현이 아니라 투철한 탐구정신의 표현으로 읽어야 한다.

 


내러티브의 엮임과 짜임


그 동안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오프닝 다음에 전진이 링거를 맞고 있는 장면과 그 뒤에 이어지는 훈련 장면은 사족처럼 첨가된 장면처럼 보일 수 있다. '좀처럼 발전없는 협회 공인 몸치들 / 지옥훈련 통해 거듭나라!'라는 자막이 나온 장면에 이어서 바다가에서 훈련을 하기 위해 모이는 장면이 등장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장면이 첫머리에 배치된 이유는 내러티브 차원에서 해명될 수 있다. 전진이 쓰러져 누워 있는 모습과 그가 빠진 채 다른 동료들만 모여 훈련을 하고 있는 장면은 '우리 중 하나가 쓰러지더라도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달한다. 그런 점에서 후반부에 아픈 딸아이 걱정에 박명수가 훈련에 참가할 수 없다고 선언하자 나머지 출연자들만 모여 옥상에서 훈련을 계속하는 장면은 첫 시퀀스를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박명수가 슬그머니 대열에 합류하게 되면서 첫 장면에 대한 서사적 보완이 이루어지게 된다. '우리 중 하나가 쓰러지더라도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전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다'라는 의미와 맞물리면서 완결된 서사 구조를 형성하게 된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박명수의 합류는 방송에 더 나오고 싶은 이기심에 의해 동기화된 것이지만 개인을 넘어선 동료애가 발휘된 장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엔딩 훈련과 입장 연습 후 마침내 안무 전체가 완성되는 장면이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도 박명수가 동료들과 사적인 일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합류하는 장면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갈등 시퀀스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이어주는 이음새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아픈 딸아이 걱정에 집으로 가겠다는 박명수와 보충훈련을 통해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유재석 간의 갈등이 치밀하게 그려지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비의 컴백무대에서 실전 적응 훈련을 마친 후 부족한 점이 더욱 여실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유재석의 주장에 무게가 더 실리게 된다. 그래서 귀가를 서두르는 박명수의 모습이나 그것이 아픈 딸아이 때문이라는 그의 주장은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물론 그 전에 박명수가 자신의 딸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삽입해 그의 강한 부성애를 표현하긴 했지만 중요한 대회 출전을 앞두고 방송과 가정사 사이를 저울질하는 모습은 자칫 방송에 대한 열의가 부족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대기실에서 박명수가 플라스틱 뚜껑으로 유재석을 구타하는 오버액션을 해서 팽팽한 긴장감을 반감시킨 것 역시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그런 과격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이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심으로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은 웃음을 유발하기는 커녕 불쾌감마저 들 수 있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나 강한 부정적 인상을 심어주는 이 장면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 아기 아프다는데 뭐랄 순 없는 노릇'과 같은 자막은 사후 약방문 수준의 요구에 그치고 만다.

 

 



사실 박명수가 동료들에게 합류하는 장면은 놀라움과 감동을 주는 '반전'의 계기를 충분히 함축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동료들과 티격태격하지만 늘 결정적 순간에는 동료애를 발휘해 감동을 유발하는 이러한 서사 구조는 헐리우드의 오락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 시퀀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효과를 충분히 거두지 못한 것은 박명수의 행동을 뒷받침할 사전 복선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유재석의 주장과 팽팽하게 맞설 만큼 정당성을 지닐 수 없었고, 결정적으로 그의 오버연기가 사건의 초점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으로 정리될 수 있다.


만일 박명수가 자신의 딸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을 산만하게 반복하기보다는 아픈 아기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장면을 편집을 통해 먼저 보여주었더라면, 만일 박명수가 대기실에서 조금 더 주의깊게 행동했더라면, 또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않았을까.

 


무한도전과 언론의 진실게임


10월 3일 영종도 왕산 해수욕장에 촬영하기 위해 도착한 출연자들이 차에서 내리자마 중심 화제가 되었던 것은 무한도전의 전국체전 출전에 관한 언론 보도였다. 담당 연출자와 출연자들 모두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겠'다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데, 시청자 입장에서 충분히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장 2달이 넘게 준비해온 프로젝트를 경우에 따라서는 포기할 수도 있었다는 말인가? 준비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에 의해 공식화되면서 더욱 부담감이 가중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하더라도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는다.

 

 



또한 언론에 발설한 유력 용의자로 박명수를 지목한 자막 역시 혼란을 일으키는 건 마찬가지다. 무한도전의 전국체전 출전이 기사화된 것은 10월 1일 경인데, 김태호 PD는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올초 베이징 올림픽 특집과 비인기 종목 활성화라는 연간기획을 마련하며 포스트 올림픽을 대비해 준비해 왔던 도전이다"고 기획의도를 밝힌 바 있다.1) 그렇다면 박명수를 발설 용의자로 지목한 자막은 단순히 웃음을 주기 위한 장치인가, 아니면 그가 먼저 언론에 흘려 어쩔 수 없이 김태호 PD가 출전 사실을 언론에 밝힐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인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무한도전의 전국체전 출전 소식이 언론에 보도된 같은 날 무한도전이 전국체전 절차를 무시한 채 대회참가를 단행했다는 비판기사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 그에 따르면 에어로빅 동호회 참가신청이 마감된 상황에서 무한도전이 갑작스럽게 출전을 요청해와 대한체육회가 전국체전을 주관하는 전남체육회에 공문을 발송했지만 경기일정과 장소, 스케줄 등에 무리가 따른다며 무한도전의 참가를 거부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논란이 커지자 급기야 10월 7일 김태호 PD가 나서 "도시락을 싸서 전국체전에 출전하겠다"며 논란을 일축하는 인터뷰 기사가 보도되었다. 그는 무한도전이 전국체전에 뒤늦게 참여해 형평성을 잃었다는 일부 매체의 보도에 대해서 "무한도전이 출전하게 되는 전국체전 에어로빅 동호회 종목은 8일까지가 접수 마감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 문제 제기가 됐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에서도 무한도전의 전국체전 출전이 아무 문제없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대한체육회 전국체전 관계자는 MBC '무한도전' 팀의 에어로빅 단체전 참가가 어렵다는 공문을 제 89회 전국체전 개최지인 전라남도 체육회로부터 받았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그런 적이 없다"고 밝혔기도 했다.

 

 



무한도전이 전국체전 출전을 목표로 에어로빅 훈련을 시작한 것은 7월 경인데 10월이 되도록 관련 기관과 아무런 상의가 없이 갑작스럽게 출전의사를 밝혀서 문제가 된다는 기사는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무한도전 측의 준비 소홀로 비난받아 마땅하겠지만 대형 프로젝트를 이미 여러 차례 진행한 바 있는 무한도전 제작진이 그런 실수를 저질렀을까 의심되기 때문이다. 또 무한도전 팀의 훈련을 도와준 에어로빅 국가대표 박복희 코치와 송종근 선수가 2달 넘게 참가를 위한 절차상의 조언 없이 그대로 있었을 리도 만무하다.


그렇다면 무한도전의 출전에 난색을 표명한 전남체육회 관계자가 누구인지 마땅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출전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한 책임이 대한체육회 측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전국체전을 주관한 전남체육회 측에 있는 것인 지도 해명해야 한다. 그리고 일부 인사의 말만 듣고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보도를 내보낸 언론 역시 정정보도를 내보내야 마땅하다.


물론 식어버린 커피처럼 대중들의 관심을 끌 만한 아이템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들이 수용될 리 만무하겠지만, 무한도전의 전국체전 출전을 놓고 일어난 일련의 논란은 되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안되는 일도 없는 대한민국의 일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입맛만 다시게 할 뿐이다.

 


은지원, 개, 무니의 '아름다운 나라' 그리고 감동 자막


모래사장 위에서 혹독한 훈련이 계속되던 중 갑자기 화면 위로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낯선 자막들이 스쳐 지나갔다. 평소 무한도전의 자막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또 무엇인가 패러디되고 있다는 사실을 예감할 수 있었지만, 패러디의 대상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던 시청자도 있었을 것 같다.

 

 



우선 '다 같이 최선을 다해 돈가스를 먹는 이 순간'에서 방점은 '다 함께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해서 하는 일이 하필 '돈가스를 먹는 일'이라니! 따라서 자신의 노고를 인정해 달라는 요구는 그것이 돈가스를 먹는 하찮은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로 인해 상대화되며 희화화되고 있다. '에어로빅으로 지친 무한도전은 잠시나마 웃을 수 있었습니다'라며 이어지는 자막은 최선을 다한 뒤에 찾아온 잠시 동안의 여유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며 꿀맛같은 휴식의 순간을 감동스럽게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무한도전 출연자들이 돈가스를 먹는 순간은 휴식의 순간이 아니라 아령 겸용 포크와 나이프로 음식을 먹어야 하는 고통의 순간이기 때문에 자막과 화면은 불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무한도전이 돈가스를 힘겹게 먹는 모습을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자막과 배경음악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표현상의 어긋남과 화면과 자막의 불일치는 그 광경을 오히려 더욱 희극적으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근력강화를 위해 통나무 체조를 하는 장면 다음에도 이와 유사한 스타일의 자막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틈만 나면 말썽 부리는 골칫덩이 여섯 남자 무한도전'이란 표현은 무한도전 스타일의 자막과 가장 동떨어진, 소위 '손발이 오그라드는' 자막이다. '말썽'이나 '골칫덩이'와 같은 단어들은 출연자들을 굉장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대상으로 미화하고 있는데, 과로로 쓰러진 정형돈에게 '아프다고 웃어줄 것 같냐'고 말하고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에서처럼 무인도에 표류된 것 같은 모습을 한 정준하게 '구출 안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무한도전의 세계관 내에서 도저히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되는 자막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죽을 힘을 다해 지옥훈련을 견뎌냅니다'와 같은 자막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억지로 감동을 유발하려는 유형의 자막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무니의 '아름다운 나라'를 모르고 있었다 하더라도 어느 프로그램의 자막 스타일이 패러디 되고 있는 지 슬슬 감이 오기 시작한다. 자신들을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세우려 하고, 감동을 주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출연자들을 귀엽다는 듯이 표현하고 있는 자막이 그 첫 번째 단서라면, 두 번째 단서는 '무모한 도전' 시절 수영장에서 '개'와 대결을 펼쳤던 '은지원'이 참고 화면을 통해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감동 자막', '개', '은지원'. 그리고 여기에 무니의 음악이 모 프로그램의 '백두산을 가다' 편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추가하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제자리를 찾게 된다. 즉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단서들을 모아 추론하면, 낯선 스타일의 자막은 '1박2일'을 패러디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로써 무한도전은 방송 3사의 자막을 모두 패러디하게 되는데, '우리 미팅했어요'에서는 S본부 'X-맨'의 자막을, '매니저 특집'에서는 M본부 '우리 결혼했어요'의 자막을, 그리고 '에어로빅 특집'에서는 K본부 '1박2일'의 자막을 패러디하고 있다.

 

 

 


그런데 '1박2일'의 자막을 패러디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까닭은 타방송사들에 비해 그 특징을 잡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상당히 밋밋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감동 코드야 어느 방송사마다 필요한 장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그러한 코드를 조금 과하게 사용한다고 해서 그 프로그램만의 특징이라 하기 힘들다. 이에 반해 인터넷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었던 S본부의 자막은 부정적 의미에서든 혹은 긍정적 의미에서든 너무나 고집스럽게 확고한 자기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방송 3사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 스타일을 이용해 네티즌들이 만든 패러디물들을 비교해 보면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1박2일'의 자막에 대한 무한도전의 패러디가 타방송사들에 비해 화제성이 떨어졌던 사실은 대중들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대상이나 스타일이 분명한 작품을 패러디할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말한다. 유명하지 않은 원작을 패러디한 작품이 유명해져서 묻혀 있던 원작이 재조명되는 경우도 있고, 패러디된 대상을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만드는 '혼성모방' 기법도 존재하지만, 적어도 대중문화에 있어 성공적인 패러디의 조건은 대중들이 쉽게 식별이 가능할 만큼 분명한 개성을 지니고 있거나 인지도가 높아야 한다는 사실임에는 변함이 없다.

 

장근석이 홈피에 남긴 글이 무한도전에 의해 패러디되며 일반 대중들에게도 화제가 되었던 반면,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던 모 오락 프로그램의 패러디가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생각해봐야 할 흥미로운 사례라 하겠다.

 


무한도전 역시 품질 관리가 필요하다


한 때 '제7의 멤버'로 거론될 만큼 개성 강한 자막을 자랑하는 무한도전이지만 자막을 쓰는 인력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에피소드마다 고른 자막 수준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은 앞으로 무한도전이 개선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 특히 '에어로빅 특집' 3부에 사용된 형형색색의 자막 폰트들은 현기증마저 불러 일으킬 정도였고, 몇몇 자막들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스피드 경기를 하기 위해 섭외된 개에게 '그 쪽도 마찬가지구먼요'라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자막을 입힐 생각은 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란 말인가!

 

 



무한도전의 '에어로빅 특집'은 '모델 특집'이나 '댄스스포츠 특집'과 달리 극적 내러티브를 도입하려 했다는 점에서 실험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자막의 질 저하, 다양한 폰트 사용을 통한 스타일의 통일성 붕괴, 이야기 전개의 난맥 등 여러가지 면에서 그 이전의 대형 프로젝트에 비해 질적으로 퇴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하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지만 그로 인해 기존의 장점들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에어로빅 특집'은 장점만큼이나 많은 문제점을 노출한 대형 프로젝트로 기억될 듯싶다.

 

 


by ddolappa

 

 


1. 무한도전의 전국체전 출전 소식에 관한 관련 기사들


김태호PD “‘무한도전’ 전국체전 출전, 포스트 올림픽 기획”(2008.10.01)
http://media.daum.net/entertain/all/view.html?cateid=1005&newsid=20081001140319773&p=newsen


〈스포츠칸〉‘무한도전’, 전국체전 절차 무시한 ’무리한 도전’(2008.10.01)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81001231311087&p=khan&RIGHT_ENTER=R2


‘무한도전’ 전국체전 출전에 대해 개최지 난색 표명(2008.10.07)(데일리서프)
http://media.daum.net/entertain/all/view.html?cateid=1005&newsid=20081007102307778&p=dailyseop


김태호PD “무한도전 도시락 싸서 전국체전 출전” 논란일축(2008.10.07)
http://media.daum.net/entertain/all/view.html?cateid=1005&newsid=20081007161119145&p=newsen


대한체육회 "'무도' 전국체전 출전, 아무 문제없다"(2008.10.07)
http://media.daum.net/entertain/all/view.html?cateid=1005&newsid=20081007095728393&p=starnews


<스포츠칸〉‘무한도전’ 전국체전 나간다(2008.10.07)
http://media.daum.net/entertain/all/view.html?cateid=1005&newsid=20081007214016827&p=k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