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46> '에어로빅 특집'을 통해 잃은 것과 얻은 것
무한도전 132회 081129 : 에어로빅 특집 4부
이럴 순 없다! 아니, 이래서는 안된다!
전국체전 에어로빅 경기에 출전한 무한도전 팀은 비록 동호회 부문이긴 하나 2위에 입상하는 값진 쾌거를 거두었다. 지난 3개월 가량 밤잠을 설쳐가며 묵묵히 지옥훈련을 견뎌낸 성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승리감에 도취되어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까닭은 뜻밖의 성공 뒤로 연출 기법상의 퇴보가 가려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남의 잔치에 와서 무슨 행패냐고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심하게 말해 '에어로빅 특집'의 연출 방식과 표현 기법은 '슈퍼모델 특집'이나 '댄스스포츠 특집'처럼 성공적인 에피소드를 조잡하게 모방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더욱 큰 문제는 기획의도 자체가 모호할 뿐더러 연출철학 자체가 부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뚱뚱하고, 못생기고, 머리숱이 부족하고, 키가 작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 여섯 사내들이 런웨이에 서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슈퍼모델 특집'은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로 변신하는 마법같은 세계로 시청자들을 초대했다. 8등신의 늘씬한 모델들과 화려한 패션의 세계를 시청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주었지만, 제법 묵직한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담긴 연출철학 때문이었다.
"옷이 날개이기를 바라는 마음,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찾아서"와 같은 자막은 패션이 몸을 장식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한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연출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슈퍼모델 특집'은 시청자들이 무한도전 출연자들을 재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는 연출철학에 따라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평범한 쇼가 될 수도 있고, 자아탐구라는 철학적 주제를 함축한 품격있는 쇼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몸치들의 대반란"이란 표어를 내건 '에어로빅 특집' 안에는 과연 어떤 연출철학이 담겨 있는가? 지옥훈련을 통해 노홍철 같은 1등급 몸치도 전국체전에 나와 입상할 수 있으니 도전과 노력을 포기하지 말라는 교훈은 너무나 상투적이지 않은가? 어떤 일에 도전하는 과정 자체를 오락적 재미로 삼고 있는 무한도전이 그런 진부한 가르침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면 지금껏 시청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제발 평범한 교훈에 '감동' 받지 말고, '감동'에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도록 하자. 만일 '에어로빅 특집'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목숨 걸고 해라!"는 구호가 실은 전근대적인 군사문화의 잔재에 불과한 것이고, 개발독재시대의 망령이 깃든 것이어도 도전에 성공했으니 어쨌든 괜찮다고 용납할 것인가?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한 두 가지 독법
무한도전이 이번 에피소드를 준비하며 모티브를 취하고 있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우선 "니들은 그냥 개고 난 주인이니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나 짖어!"라고 소리치는, 능력은 있지만 독단적인 강마에를 카리스마 있는 리더의 표상으로 볼 경우다. 이러한 인물 유형은 절대적 빈곤에 허덕이거나 불평등이 심화된 시기에 대중들에게 특히 매력을 발산하게 된다. 궁핍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그의 속삭임은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에, 그의 독단과 독선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혹독한 지옥훈련쯤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절대자에게 의탁했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반면에 '강마에'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들에 주목할 경우 처음과 정반대의 독해가 가능하다. 드라마에서 강마에는 귀가 멀어가는 바이올린리스트, 야간업소에 출연하는 트럼펫 연주자, 치매에 걸린 오보에 연주자, 남편의 강압에 제대로 기를 펴고 살아가지 못하는 첼로리스트 등에게 그들의 꿈을 지켜주기 위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그들이 독선적인 강마에를 스승으로 따르고 존경하는 것은 그의 지휘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독설 속에 감추어진 그의 진심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마에는 수재를 당해 고생하는 서민들에게 클래식이 고상한 취미가 아니라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도구라는 사실을 역설하기도 하고, 취임식 때 새로운 시장의 애창곡인 '마이 웨이'를 연주하라는 강권에 맞서 존 케이지의 전위음악 '4분33초'를 연주해 문화가 정치적 저항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강마에가 수호하고자 하는 것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꿈들이다. 일상 생활에서도 예술가처럼 살아가길 바라는 그가 견딜 수 없는 것은 꿈을 포기하고 인생을 함부로 살아가는 태도이다. 그가 제자인 강건우에게 삶에 있어 '이기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충고하는 것도 그가 삶을 예술작품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지휘자 강마에는 삶이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미학적 아방가르드의 요청을 실천하고 있는 인물로 이해할 수 있고, 그가 수호하는 가치는 정치적 독재와는 거리가 먼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강마에란 인물의 '미학적 독재'를 정치적으로 독해해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로 해석할 때 발생하게 된다. 이 경우 강마에는 개인의 자유를 파괴하는 절대권력을 지닌 '타자'로 오인되거나 미화될 위험이 있다. 현재 이 드라마에 대한 대부분의 해석이 이러한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성숙성을 반영하는 위기의 징후일 따름이다.
그런데 불행한 일은 무한도전 역시 '강마에'란 인물을 전자의 입장에서 해석해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에어로빅 단체전이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경기이다 보니 개인보다는 전체가 강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는 연출방식에 따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였다. '에어로빅 특집' 1탄 마지막 장면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허름한 테이블에 모여 박명수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은 분명 소소한 삶을 담아낼 수 있는 효과적 장면이었다.
실제로 무한도전은 '댄스스포츠 특집'에서 강사도 포기할 만큼 몸치에 박치였던 노홍철이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을 기울여 '룸바 노'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줘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이 때 그 바탕에 깔린 기본가치는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존중이었지, 독단적 지도자가 이끄는 수련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지옥훈련' 만능주의가 아니었다. 무한도전이 자랑하던 '무한이기주의'도 따지고 보면 극단적인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개성의 표현을 중요시한다는 것 아니었던가?
퇴보한 표현 방식
연출철학의 부재는 곧 빈곤한 연출방식으로 이어졌다. '슈퍼모델 특집', '댄스스포츠 특집' 그리고 '에어로빅 특집'은 거대한 무대장 규모와 전문 선수들의 기량에 압도되어 출연자들이 주눅이 드는 장면을 공통으로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장면이 단지 '크다' 혹은 '뛰어나다'와 같은 일차원적인 수준으로 표현되지 않고 시청자들이 출연자들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그들에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슈퍼모델 특집'에서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은 무대길이가 '요정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지만, 다음 장면에 등장한 실제 런웨이는 '끝이 안 보이는 요정도 길이'나 '운동용으로 손색없는 40m'로 재치있게 표현되어 시청자들은 규모의 거대함을 쉽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출연자들이 호소하는 부담감이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유재석이 연습 워킹을 하기 위해 런웨이를 걷는 장면에서 다시 한 번 무대의 거대한 규모가 강조되었다. 이번에는 '무대가.... 정말.... 길긴.... 길다'라는 문장을 단계적으로 화면에 내보내서 런웨이의 길이를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그 위를 걷고 있는 유재석의 심리적 부담감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했다.
패션쇼가 열리는 행사장의 규모가 강조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무대에 서게 될 출연자들이 느끼고 있는 위축되고 긴장된 심리상태는 안방까지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이를 통해 그들이 실제 무대 위에 서게 되었을 때 시청자들은 작은 실수에도 함께 조마조마한 마음을 갖게 되고, 무사히 행사가 마무리되었을 때 안도감과 함께 자신이 직접 무대에 선 것 같은 뿌듯함마저 느끼게 된다.
반면에 '에어로빅 특집'에서 출연자들이 서게 될 전국체전 무대는 '처음 서 본 정식 경기장은 생각보다 훨씬 넓은!' 정도로 평범하게 설명되고 있다. 학교 체육관을 빌어 대회가 개최된 것이니 그 규모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출연자들이 공연을 앞두고 표현하는 긴장감을 통해 그 떨림과 흥분이 전달될 수도 있으니 이는 그리 커다란 문제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출연자들의 감정상태마저도 지극히 '평범하게'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한도전 팀은 식전행사를 마치고 빠져나와 대회장 옆에 섭외된 연습장소로 이동하게 된다. 이 때 출연자들의 심리상태는 '누구 하나 말이 없는 차 안, 진작 연습 더 할 것 하는 후회'라는 자막을 통해 서술되고 있다. 출전을 앞두고 출연자들은 동작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거나 입에 침이 마른다며 긴장감을 호소한다. 하지만 출연자들의 말을 통한 흥분상태에 대한 설명보다는 그들이 불안을 떨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동작이나 제스처를 통해 보여주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슈퍼모델 특집'에서 출연자들이 느끼는 극도의 긴장상태는 그들의 언어적 표현 이외에 후들거리는 다리, 파트너의 손을 꼭 붙잡는 행동, 울기 직전의 표정, 다리힘이 풀려 주저앉는 행동 등의 다양한 육체적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동작이 기억나지 않는 상태도 말이 아니라 기억상실에 걸린 듯한 시각적 연출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그러나 '에어로빅 특집'에서 이러한 장치들은 전혀 활용되고 있지 않다. 그들은 무언가에 쫓기듯 '이제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 지금 못하면 대회서도 못한다!'는 유의 구호만 반복해서 외치고 있다. 그리고 대회 직전까지 일반 선수들과 철저하게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회장의 생생한 모습은 전달되지 못하고 현장 모습은 파노라마처럼 스케치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현실 속에 파고들어 일반 시민들과 함께 숨쉬던 현장성을 상실하고 있다.
'에어로빅 특집'에서는 이상하리만큼 다른 선수들과 무한도전 출연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드물게 나온다. 입상한 다른 선수들에게 박수 갈채를 보내기도 했고, 무한도전 팀이 일반부 2위를 수상했을 때 다른 수상팀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지만, 현장 스태프나 모델들과 뒤섞여 있던 '슈퍼모델 특집'이나 다른 댄스스포츠 선수들을 응원하기도 하고 그들로부터 격려를 받기도 했던 '댄스스포츠 특집'에 비해 '에어로빅 특집'이 현장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무한도전은 쇼 오락 프로그램이지 스포츠 중계방송이 아니다
'에어로빅 특집'에서 전국체전에 참가한 무한도전 팀이 다른 선수들 사이에 있더라도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입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모델 특집'이나 '댄스스포츠 특집'의 경우 월등한 기량 차이 때문에 잔뜩 주눅이 든 출연자들의 모습이 부각되었다면, '에어로빅 특집'에서 그들의 경쟁 상대는 비슷한 수준의 일반 동호인들이었기 때문에 해볼 만한 상대로 그려지고 있다.
실제로 무한도전이 출전한 분야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된 팀에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그들의 공연이 아니라 그들이 획득한 점수였다. 그리고 그 이후 공연을 펼친 다른 팀들에서도 무한도전의 카메라가 포착하고 있는 장면은 그들이 얻은 점수였다. 심지어 '엘리트 선수들이 아닌 동호회들의 경합이기에 무한도전의 점수가 낮은 편이 아'니라는 친절한 자막까지 덧붙여 수상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무한도전이 전국체전에 참가한 목적은 '베이징 올림픽'의 스포츠 열기를 전국체전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에어로빅 같은 비인기 스포츠를 알리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무려 석 달이 넘게 출연자들이 생고생을 해가며 에어로빅 동작을 익히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 사실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또 그만한 노력의 대가로 정당하게 입상한 것 역시 축하를 받을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애초의 기획의도에서 어긋난 연출에 대해서는 도저히 그대로 묵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또한 안내방송 멘트를 일일히 자막화하고 개회식 장면을 무슨 스포츠 중계방송처럼 연출한 것은 대체 어떤 의도에서 그런 것인지 묻고 싶다. '댄스스포츠 특집' 때에서 개회식 장면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대회에 임하는 출연자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무한도전의 '에어로빅 특집'은 거대한 무대가 주는 압박감이나 출연자들의 불안한 심리상태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애초부터 포기한 상태에서 마치 기록경기처럼 장면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대형 프로젝트에서 느낄 수 있었던 자연스러운 감동을 주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 가슴 뭉클한 '진짜' 감동의 자리를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는 식의 '가짜' 감동이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억지로 전달하고자 했던 감동마저도 '이게 웬 떡이냐!', '꿈이냐 생시냐?' 따위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자막들로 인해 반감되고 있다. 시청자들이 수상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극적인 순간을 함께 동참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연출방식이나 자막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만 했다. 이미 '댄스스포츠 특집'이 주었던 가슴 먹먹한 감동을 기억하고 있는 시청자들이 그런 억지 연출에 싸구려 감상에 젖을 거라 생각했다면 완전한 오판이다. 시청자들은 무한도전이 했기 때문에 무조건 '감동'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무한도전만이 제대로 된 진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무한도전을 시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어로빅 특집'을 통해 무한도전이 얻은 건 전국체전 2위 입상 상패이겠지만, 그로 인해 그보다 더 중요한 '무한도전다움'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by ddol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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