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세계/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시 모음)

[스크랩] 2.문태준의 가재미

ddolappa 2008. 12. 24. 07:13

 

 

가재미 

                                                      문태준

 

김천 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 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내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 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몸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출처 : 이혜령 시인
글쓴이 : 푸른 사막의 흰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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