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한국판 '쿨러닝'이 탄생하기까지

ddolappa 2009. 1. 30. 17:20

한국판 '쿨러닝'이 탄생하기까지

 

 


오락적 목적 외에 스포츠 관련 프로젝트들을 관통하고 있는 무한도전의 주된 관심은 비인기종목에 대한 지원이다. 그간 다루어왔던 종목들이 레슬링, 기계체조, 핸드볼, 육상, 배드민턴, 에어로빅, 봅슬레이 등이었던 것도 엘리트 위주의 체육정책에서 탈피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무관심 속에 방치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잃지 않았던 무한도전의 마이너적 정서와도 부합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년 9월에 기획이 세워지고 올해 초 촬영에 들어간 '봅슬레이 특집'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시작해 전국체전 출전으로 이어진 거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성사되기까지의 과정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드라마틱하다 못해 거의 기적에 가까웠던 일처럼 보인다.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수들은 다리가 부러지면서도 '한국판 쿨러닝'의 기적을 일구어냈다.

 


2008년 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08 아메리칸 컵' 대회에서 한국팀이 기적적으로 동메달을 획득하게 되면서 '한국판 쿨러닝'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한국 봅슬레이팀은 경기장이 없어 영화에서처럼 아스팔트 위에서 연습을 했고, 대회 주최 측에 500달러(한화 약 47만원)의 대여비를 내고 'KOREA'가 아닌 'USA' 마크가 찍힌 골동품 썰매를 타고도 입상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현역 선수가 10여명에 불과하고 실업팀이라고는 강원도청이 유일한 국내 현실에서 나온 기적 같은 선전이었다.


이후 대표팀이 참석한 국제 봅슬레이·스켈레턴 연맹(FIBT) 세계선수권대회에는 문화방송의 '네버엔딩스토리' 팀이 함께 해 응원을 했지만 입상은 하지 못했고 상황 역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대한민국 봅슬레이 대표팀은 독일팀이 연습용으로 제작한 봅슬레이를 2,600달러(약 240만원)에 빌려 출전했다. 벌써 10년 넘게 동계 올림픽 유치에 집착하는 강원도와 동계 올림픽 유치단이 그 동안 대체 무엇을 했는지 심히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그 대회에서 조인호 선수가 스켈레톤 종목에 도전했을 때 장내 아나운서는 "코치도 없는 아주 조그만 나라에서 출전한 선수다"라고 소개했다. 이 때 촬영에 동참했던 나경은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뺏고 싶었다. 한국 와봤느냐고 가서 물어보고 싶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나경은 아나운서는 대한민국 여성 최초의 봅슬레이 탑승자로 기록되었다.

  

무한도전에 출연한 조인호 코치 겸 선수는 아메리칸 컵 동메달을 일군 주역들 중 한 명이다.

참고로 그는 원래 보디빌더 출신 선수이다.

 


10명 남짓한 선수단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외인구단을 방불케 한다. 김정수 선수는 역도를 하다 부상을 입고 감독의 권유로 스켈레톤과 봅슬레이 선수로 전환한 경우다. 김세인 선수는 장대높이뛰기 선수 출신이고, 조인호 선수는 보디빌더, 이진희 선수는 창던지기 선수 출신이다. 김동 선수는 원반 던지기 선수로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강광배 선수 겸 감독은 알파인 스키 선수로 활동하다 무릎 십자 인대가 끊어져 봅슬레이 종목으로 전향했다. 실제로 그는 현재 장애인등급을 갖고 있다.


봅슬레이는 올림픽 전략종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메리카컵에 출전한 4명의 선수 가운데 2명만이 정부로부터 대표팀지원금을 받고 있고, 아시안게임과 전국체전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경기력 향상 지원금도 고작 1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게다가 국내에는 스타트 등 기본적인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연습장조차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형편이기 때문에 선수들은 국내에서는 체력훈련 위주로 하고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실전감각을 익혀왔다고 한다. 


그나마 동메달 획득을 계기로 작년 9월 강원도가 1억 8,000여 만원을 투자해 스위스에서 제작, 구입한 봅슬레이 4인용 1대, 2인용 1대, 스켈레톤 1대가 현재 대표팀이 가진 전부다. 건설비용이 1000억원에 이르는 봅슬레이 경기장은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일본 나가노에 건설되어 있다. 국내에는 경기장을 건설해봐야 수익성이 없기 때문에 선수들조차 회의적이다. 다만 체계적인 훈련을 쌓는데 기반이 될 수 있는 스타트 경기장은 현재 시공일정이 잡혀 있다.

 

 

 



[잠깐 상식] 동계올림픽 '썰매' 종목은 3종류다. 앉아서 타는 봅슬레이, 누워서 타는 루지, 엎드려서 타는 스켈레톤이다. 달리는 코스는 똑같다. 출발 지점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이중 가장 빠른 썰매는 '얼음 자동차' 봅슬레이다. 봅슬레이는 1,300m의 얼음도로를 시속 135㎞가량의 속도로 질주한다. 1988년 캘거리 올림픽에서는 시속 143㎞의 최고속력을 기록됐다. 1인승 루지도 만만치 않다. 수준급 선수의 루지 속도는 시속 120~130㎞. 비공식 시속 148㎞까지 나온 적이 있어 봅슬레이를 능가한다. 스켈레톤 역시 시속 120㎞ 정도는 우습게 돌파한다.

 

 

봅슬레이 국가 대표팀의 열악한 훈련 소식을 접한 무한도전 제작진은 지난해 9월 봅슬레이 특집을 계획하고 약 100여개의 국내기업을 돌아다니며 후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선뜻 나서는 기업체가 없어 어려움을 겪어오다 결국 제작진은 제작비를 아껴 대표팀의 일본행 비행기표 값과 현지 체류비, 진행비 일체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국내에 봅슬레이 시설이 전무하기 때문에 국가대표 선발전을 이번에 일본에서 하지 못하게 될 경우 2010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출전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무한도전' 제작비야 아끼면 되지만 태극마크를 단 봅슬레이 국가대표 팀은 꼭 보고싶다"는 제작진과 출연자들의 열망이 이끌어낸 소중한 결정이었다.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수 겸 감독 강광배 선수. 그는 현재 장애인등급을 갖고 있다.

 


그러나 2008년도 연말 전국언론노조 총파업에 언론노조 MBC본부가 동참을 선언하며 무한도전의 촬영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파업 전 약속대로 봅슬레이 예비 국가대표 선수들과 관계자들로 구성된 선발대는 이미 출발한 상태였고, 출연자들 역시 사전에 약속된 스케줄에 따라 출국을 강행했다. 하지만 노조 내부의 반대의견과 이번 MBC 파업을 지지하는 시청자들의 의견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 무한도전 제작진은 촬영에 참여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에 놓이고 말았다.


다행히 2009년 8일 밤 12시를 기점으로 언론노조가 잠시 파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김태호 PD는 산재해 있는 편집과 봅슬레이 선발전을 놓고 고심하던 끝에 현장 지휘를 위해 나가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와 평소 친분이 있던 시사주간지 시사인의 고재열 기자에 의해 무한도전의 봅슬레이 지원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 대표팀 지원을 위한 모금운동도 일어났다.

 

 

제작진과 동행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먼저 출발하고 있는 무한도전 출연자들의 모습

 


그 후 얼마 안 있어 전진과 정형돈이 촬영 도중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전진은 어깨 골절을 당했고 정형돈은 허리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한 한 블로거는 "자기 멤버들은 사지로 밀어넣고 비인기종목 후원자 역할을 하며 가학적 상황으로 시청률이라는 동앗줄을 쥐려는 태도"라며 김태호 PD를 맹비난했다.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태호PD는 "4박 5일간 훈련 기간 동안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전진 등 여섯 멤버들이 예비 대표팀 선수들과 똑같이 훈련하고 합숙하며 지내 체력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전진의 어깨뼈 골절이나 정형돈의 허리 부상 등의 이야기는 다소 과장된 것"이라고 밝혔다. 한 마디로 앞서 언급한 블로거의 비난은 잘못된 언론 보도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 지어낸 근거없는 망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무한도전 '봅슬레이 특집'이다.

 

 

 

[강광배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수 겸 감독 인터뷰 중에서]

 

 

- 다음 올림픽에도 참가하면 4번째다. '참가'에 의의를 둘 수도 있지만 메달에 욕심은 없는지….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왜 그런 마음이 없겠나. 그러나 그건 욕심이다. 현실적으로 내가 메달을 딸 상황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내 몫은 뒤에 오는 후배들이 조금 더 좋은 여건을 갖출 수 있도록 길을 다져놓는 것이다. 그것이 내 도전의 궁극적 이유다."

 


- 주위에서 비인기 종목을 택한 것에 대해 우려는 없었는가. 혹 다른 운동을 하는 선수를 보며 후회를 한 일은 없는지….
"많이 들었던 이야기고 지금도 듣는다(웃음).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까. 어떤 선수건 자신이 하고 있는 운동이 가장 매력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코, 후회한 일은 없다."


 

 


by ddolappa

 


[참고자료]

 

한국판 쿨러링 신화 계속' 봅슬레이 스타트 훈련장 건설
봅슬레이·스켈레톤·루지 대표팀의 숙원 사업인 스타트 훈련장 건설이 추진된다.
http://sports.media.daum.net/nms/general/news/common/view.do?cate=23793&newsid=324640


'한국판 쿨러링', 다리 부러지며 일군 기적
http://sports.media.daum.net/nms/general/news/common/view.do?cate=23793&newsid=268630


그만의 <쿨러닝>은 쉼없이 계속된다
[인터뷰] 동계올림픽 27명중 23위...또 다른 도전을 준비중인 강광배 선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14760


나경은 아나 남극 이어 봅슬레이 도전! 눈물 펑펑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80327072306759&p=newsen


나경은 봅슬레이 후 눈물 펑펑 “블랙홀 빨려들듯 심장 짓눌러”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80324165905274&p=newsen


'무한도전',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발전 경비 지원
http://media.daum.net/entertain/all/view.html?cateid=1005&newsid=20090106095711873&p=starnews


'무한도전' 김태호PD, 봅슬레이편 전격합류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90107112613210&p=mydaily


‘무한도전’ 봅슬레이 지원 네티즌 모금운동
http://photo.media.daum.net/photogallery/entertain/enter_1/view.html?photoid=2789&newsid=20090108145208631&cp=newsen


‘무한도전’ 봅슬레이 특집, 일본에서는 무슨 일이?
http://media.daum.net/entertain/all/view.html?cateid=1005&newsid=20090112174906582&p=new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