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8> 아이돌과 아이돌이 만났을 때

ddolappa 2009. 3. 11. 16:15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8> 아이돌과 아이돌이 만났을 때

 

 


무한도전  144회 090307 : 여성의 날 특집 -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

 


'거성쇼'는 무한도전의 '패착'이었나?


후렴구가 강한 후크송 'Gee Gee'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여성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가 출연한 무한도전의 '여성의 날 특집' 편은 '소시'팬들이나 '무도'팬들 양측으로부터 원성을 듣기에 충분했다. 박명수의 '거성쇼'는 중구난방한 진행에 무례하기까지 해 '핫'한 아이돌 그룹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그로 인해 무한도전 자체도 재미가 없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게다가 '소녀시대'를 초대해 '여성의 날 특집'을 꾸민 무한도전의 의도가 대체 무엇이었는지 가늠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이러한 원성은 나름 정당해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는 조금은 성급감이 없지 않다. 결과적으로 재미없는 방송이었다고 해서 부정적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기획의에 대한 몰이해를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무한도전 제작진이나 출연했던 소녀시대나 시청자 모두에게 아무런 득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방송이 재미없었던 원인을 시청자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구성과 연출에서 찾아보는 편이 훨씬 유익해 보인다.

 

 

 


우선 복수 진행자 체제의 토크쇼가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는 현행 공중파에서 1인 MC 중심의 토크쇼는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와 박중훈의 '박중훈쇼'가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이 두 쇼의 성격과 평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스포츠 스타 출신의 강호동은 게스트와 마치 대결을 펼치듯 집요하게 토크 대결을 펼쳐 시청자들이 궁금했지만 듣기 어려웠던 답변을 당사자로부터 자백을 받아낼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평소 알려지지 않았던 의외의 모습마저 이끌어내 토크쇼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반면 배우로서 화려한 경력을 소유하고 있고 오락 프로그램에도 간간히 출연해 재치있는 말솜씨를 선보였던 적이 있는 박중훈이 진행하고 있는 쇼는 미흡한 진행능력과 모호한 포맷 구성으로 인해 시대착오적인 쇼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장동건, 김태희, 정우성 등 방송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신비주의 배우들을 출연시키고도 시청률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를 '무례한 트렌드' 탓으로 돌린 변명으로 인해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박명수의 '거성쇼'는 바로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박중훈쇼'를 겨냥하고 있다. '거성쇼'의 2가지 중요한 특징은 게스트 중심의 쇼가 아니라 철저하게 진행자 위주의 쇼라는 점과 1인자 유재석에 의존하지 않고는 도저히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을 만큼 형편없는 진행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특징으로 인해 '거성쇼'는 자신의 토크쇼가 인기를 얻지 못하는 원인을 '무례한 트렌드'에 쾌감을 느끼는 시대 탓으로 돌리고, 자신의 진행 방식이 구시대적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손님이 더 빛나는 토크쇼'를 만들고 싶다는 '박중훈쇼'를 패러디하는데 가장 적합한 무한도전의 아이템이 될 수 있었다.


거성쇼의 타이틀에 등장하는 실크햇이나 노타이 차림의 무대의상은 '박중훈쇼'의 스타일을 거의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뉴욕에서 영어에 익숙치 못해 개사료를 사먹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오프닝을 여는 진행방식도 90년대 '쟈니윤 쇼' 같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박중훈의 진행방식을 패러디한 것이고, 소녀시대가 등장한 후에도 뒤늦게 대본을 외우느라 게스트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 역시 초대손님을 무시하는 무례한 토크쇼가 최근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며 비난했던 박중훈의 발언을 암시한다.

 

 

 


무한도전이 방영된 다음 날 '박중훈 쇼'에도 모습을 드러낼 만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소녀시대에게 박명수가 "여러분들 버라이어티에 안 나오시는데"라며 다소 뜬금없는 멘트를 던졌던 것도 오락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지 않는 게스트들을 출연시켜 화제를 모았던 '박중훈쇼'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소녀시대에게 무한도전 멤버 중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싶은 사람은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대해 "참 병맛 질문"이란 자막으로 비판한 것 역시 상투적인 질문을 던져 늘 식상한 대답만 이끌어내고 있는 '박중훈쇼'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문제는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제작진의 이러한 의도를 충분히 알아채고 웃을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소녀시대라는 아이돌 그룹에 관심이 집중된 상태에서 패러디의 의도를 간파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하필 소녀시대를 게스트로 모셔다 놓고 '박중훈쇼'를 패러디한 '거성쇼'를 굳이 부활시킬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도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의 날 특집'이 원성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시청자들이 예상했던 기대를 저버리고 '박중훈쇼' 패러디물을 제작했다는 데 근본적 원인이 있다. 시청자들은 풋풋한 꽃미녀들에 대한 환상이 충족되길 원했지만 무한도전은 그것을 거부하고 조금 더 까다로운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물론 자막은 비난의 화살이 박명수를 향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머 코드로 사용된 것이고, '거성쇼'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하필 소녀시대를 초대해서 '거성쇼'를 부활시키기로 한 제작진의 의도가 대체 무엇이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런데 '거성쇼'를 단순히 '박중훈쇼'를 비판하기 위한 패러디로만 파악할 경우 후반부의 길거리 설문조사와 내용상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여성의 날 특집'은 전체적으로 혼란스러운 인상만 남기게 된다. 하지만 '거성쇼'에는 소녀시대와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가'란 테마를 연결시키려는 또 다른 의도가 담겨 있으며, 이는 무한도전이 소녀시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통해 해명된다.

 


아이돌의 법칙에 무너지지 않은 무한도전


무한도전 제작진은 기존 오락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었던 게스트 활용 방식을 벗어나기 위해 이미 여러 차례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다찌지리와 리남매' 편에서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을 초대해 영화 패러디물을 제작함으로써 올림픽 마케팅을 벗어나고자 했다. 'You & Me 콘서트'에서 엄정화, 손담비, 신봉선 등을 필요한 부분에만 등장시켰던 것 역시 새로운 게스트 활용의 한 방식이었다.


그와 달리 소녀시대에 대한 무한도전의 태도는 아이돌 스타를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중훈쇼'에 출연해서 그랬던 것처럼 소녀시대는 자신들의 노래를 메들리로 부르고,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은 어린 소녀들에 매혹당한 채 환호성을 지르는 30, 40대 '삼촌팬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런데 무한도전에 마련된 소녀시대의 무대는 여성 아이돌 그룹에 대한 판타지를 부각시키는 척하면서 그것을 파괴하고 있다. '박중훈쇼'에서 소녀시대는 배꼽을 드러낸 화려한 무대의상을 입고 환상을 자극하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면, 무한도전의 무대는 지나치게 밝고 평범하다 못해 초라해 환상이 개입할 여지가 축소된다. 또한 평상복에 가까운 가벼운 옷차림이나 소녀시대의 퍼포먼스를 수시로 방해하는 박명수를 비롯한 다른 출연자들의 개입은 노골적으로 판타지를 부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이 무한도전의 카메라는 관음증적 시선으로 소녀 그룹의 몸동작을 훑는 대신 공연을 훼방놓는 남성 출연자들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주된 관심 대상이 소녀시대의 퍼포먼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중단될 때 발생하는 웃음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또한 박명수가 소녀시대에게 '예쁜 척과 착한 척'을 금지시키고 자신의 진행에 언제든 이의를 제기하라고 요구했던 것은 자신을 웃음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권유에 다름 아니다. 소녀시대와 거의 20년이 넘는 나이 차이가 나는 그가 천진난만한 소녀들을 상대로 평소처럼 독설을 퍼붓고 윽박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러한 전략은 이미 '왕비호'나 '황금어장'의 '라디오스타' 팀이 써먹었던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


 

 


대신 박명수와 소녀시대는 마치 삼촌과 조카들이 서로 장난을 치는 관계를 맺게 된다. 소녀시대는 커튼을 손으로 붙잡아 박명수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든가 다소 민망한 바지를 방석으로 가려 그에게 굴욕을 안겨주는 식으로 장난을 친다. 박명수 역시 공연 중인 소녀시대의 틈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훼방을 놓거나 느끼한 윙크를 날려 소녀들을 경악시키는 방식으로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그 결과 소녀시대는 다가갈 수 없는 아이돌 스타가 아닌 장난끼 가득한 이웃집 말괄량이 소녀들과 같은 친숙한 이미지를 얻게 된다. 실제로 말괄량이 이미지는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소녀시대가 취하고 있는 핵심 이미지이기도 하고, '다시 만난 세계'나 'Kissing you'를 부를 당시 갖고 있던 코어 팬들(소위 '소시덕후')의 범위를 넘어 'Gee Gee'를 내놓으며 30,40대 '삼촌팬들'까지 유인할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하다.


무한도전은 소녀시대의 이러한 이미지를 보다 확장시켜 그들에게서 자신의 일에 열정적인 20대 초반의 여성상을 발견하도록 하고 있다. 소녀시대는 촬영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침체된다 싶으면 노래를 불러 활력을 불어넣으려 했고, 안쓰러울 정도로 딱한 진행솜씨를 선보인 박명수를 처음에는 짓궂게 놀리다가 점차 동정어린 눈빛을 보내며 응원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소녀시대가 능동적인 여성상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박명수를 대신해서 유재석이 진행하지 않고 수영에게 그 기회를 주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만일 유재석이 나서서 진행을 했더라면 훨씬 매끄러운 쇼를 감상할 수 있었겠지만, 1년 반 전에 시작한 '거성쇼' 1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영이 대담하게도 박명수를 대신해 진행해보겠다고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설픈 진행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패기와 열정으로 가득한 신인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자신만만해 보이던 수영도 막상 진행자의 자리에 안고 보니 여거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지만 그러한 경험을 통해 연예계가 결코 녹록치만은 않은 곳이라는 사실을, 몇 년째 1인자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유재석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 하는 사실을 피부로 절감했을 것이다.


무한도전이 소녀시대에게 제공한 이러한 깨달음의 자리가 얼마나 사려 깊은 것인가 하는 점은 '박중훈쇼'와 비교해보면 보다 쉽게 알 수 있다. 박중훈은 이제 갓 데뷔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아이돌 그룹에게 '인기가 사라진 후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집요할 정도로 물고 늘어졌다. 인생 선배이자 연예계 선배로서 어떤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그의 목소리는 점잖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례할 정도로 느껴지는 잔인함을 숨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그 대답을 알고 있었던 질문에 그토록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지극히 비경제적이라고밖에 평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신인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인기의 덧없음을 위압적으로 가르치려 드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소녀시대에게 유익했던 것일까?

 


2% 부족한 쇼


다만 여기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소녀시대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박명수가 굳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로 형편없는 진행을 할 필요는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로 인해 '박중훈쇼'를 더욱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역으로 '박중훈쇼'가 갖고 있는 단점들을 그대로 지적받아야 하는 역설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성쇼'에 대한 시청자들의 성토는 바로 이 후자의 경우가 극단적으로 부각되었기 때문에 발생했던 일이다.


이미 '거성쇼' 1탄에서 지적되었던 것처럼 박명수가 진행자로서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만 무한도전에서 펼치는 그의 미숙한 진행솜씨는 보다 큰 웃음을 줄 수 있다. 그에게 안타까운 점은 지난 1년 반 동안 대중들에게 진행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전혀 붙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경제난으로 인해 검증받은 진행자에게만 프로그램을 맡기는 분위기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일은 극히 드물 것이라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거성쇼'를 통해 '박중훈쇼'를 비판하고, 소녀시대에게 에너지 넘치는 20대 초반 여성의 이미지를 부여하려 했던 제작진의 시도는 결과적으로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놓쳤다고 할 수 있다.


그 원인은 우선 대중들에게 낯선 패러디의 대상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쪽대본 특집'이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데는 소위 '막장 드라마'라 불리는 '꽃보다 남자'나 '아내의 유혹'이 대중들에게 친숙했기 때문에 그것을 패러디하더라도 쉽게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박중훈쇼'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긴 하지만 저조한 시청률이 말해주듯 대중들의 관심 밖에 놓여 있다.

 

 



따라서 '거성쇼' 중간에 삽입된 광고 패러디들처럼 성공적인 패러디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대중적인 대상을 선택하던지, 아니면 그것이 패러디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챌 수 있는 단서들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나중에 그것이 패러디였다는 사실을 발견해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거성쇼'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까닭은 너무 많은 의미를 그 안에 담으려 했기 때문이다. 만일 '거성쇼'를 '박중훈쇼'의 패러디로만 이해할 경우 방송 후반부와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구성상의 문제를 지적당할 수밖에 없고, 소녀시대를 불러서 그에 적합하지 않은 포맷을 선택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거성쇼'를 여러 가지 의도가 포함된 것으로 해석하더라도 지나치게 복잡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 거론된 문제점들은 모두 모호한 연출의도에 기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한도전이 극소수의 매니아들을 위한 컬트 오락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일반 대중들이 갖고 있는 상식과 이해의 폭을 넘어서서는 곤란하다. 논란이 있다 하더라도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만큼은 이해될 수 있는 수준에서 방송이 제작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세심하면서도 명쾌하게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는 연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방송 후반부에 노홍철이 티파니에게 펼친 사기극외에 기억에 남는 유머 포인트가 부족했던 것도 연출의 문제로밖에 볼 수 없다. 가령, 강마에 선생의 구령에 맞춰 소녀시대가 자신들의 노래 'Gee Gee'에 맞춰 저질댄스를 추는 광경이나, 태연이 너무나 열심히 에어로빅을 따라한 나머지 반쯤 맥이 풀린 채 흐뜨러진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은 연출 정도에 따라 보다 큰 웃음을 줄 수도 있었던 장면들이다.

 


두 세계를 잇는 가교(브릿지)로서 정형돈


소녀시대와 무한도전의 만남은 젊은 여성 아이돌 그룹과 '최고령 남성 아이돌 그룹'의 만남이자 '우리 결혼했어요'와 '무한도전'의 만남이기도 하다. 소녀시대의 출연이 예고되었을 때 대중들이 갖고 있던 기대감은 이러한 이중의 만남에서 발생하게 될 지 모를 시너지 효과에 기반한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 만남은 '거성쇼'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고, 두 번째 만남은 정형돈이 가상의 아내와 처제들로부터 버림을 받으며 무한도전에서 '우결'을 생각하는 인물로 조롱당하면서 환멸로 끝이 났다.


대중들은 '우결'에서 달콤한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는 '푸딩' 정형돈과 '젤리' 태연의 판타지가 무한도전에서 연장되길 희망했지만 그것이 헛된 바람이 될 거라는 사실은 이미 '거성쇼'에서 암시되고 있다. 유재석은 태연에게 정형돈과의 결혼생활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태연이 그에 대해 대답하는 장면이 있었지만, 그 순간 카메라가 포착한 것은 박명수가 소녀들에게 느끼한 윙크를 던지고 소녀들이 기겁하는 장면이었다. 벌써 이 장면에서부터 무한도전이 '우결'의 세계로부터 거리를 둘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한 짐작은 소녀시대 모두 정형돈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고정불변한 사실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표면상의 이유는 '우결'에서 함께 촬영하는 정형돈이 싫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차량 탈주 소동을 위한 설정이었고 보다 중요한 까닭은 그와 함께 촬영을 할 경우 방송분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리고 정형돈이 희생양으로 선택된 것은 그가 '무한도전'과 '우결'을 잇는 교차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란 사실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소녀시대의 배신은 오락적 재미를 위해 정형돈과의 친분을 역이용한 것이며, 그 결과 '정신감정 특집'에서 정형돈이 획득한 캐릭터('우결'에서 '무도'를 생각하고, '무도'에서 '우결'을 생각하는)는 더욱 공고해질 수 있었다.


정형돈은 정준하와 같은 조로 편성된 순간부터 자신들이 편집점을 잡아주는 '브릿지' 역할을 할 것임을 간파했다. 사실 정형돈이 '우결' 제작진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도 제작진이 요구하는 바를 재빨리 이해하고 '진상' 캐릭터처럼 악역을 맡는 것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방송계에서 정형돈이 살아남을 수 있는 현명한 처세술인 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아직 쉽게 납득할 수 없는 혈기왕성한 소녀시대로서는 자신들과 '형부' 정형돈의 방송분량이 줄어드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거성쇼'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줬던 수영, 써니, 효연은 그와 한 조가 되었을 때 방송분량을 늘리는 일을 자신들의 미션으로 삼았던 것이다. 의욕이 넘치지만 방송 사정에 아직은 미숙한 소녀들과 짐짓 무기력해 보이지만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꿰뚫고 여유를 부릴 줄 아는 정준하와 정형돈 조합은 그래서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었던 조합이었다.


실제로 방송된 화면을 보면 수영, 써니, 효연을 비롯한 다른 소녀시대 멤버들이 수첩에 필기까지 해가며 너무나 열심히 길거리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예능 프로그램에 성실한 태도로 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웃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반인을 상대로 자연스러운 유머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일이므로 소녀시대에게서 이효리의 노련함을 당장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래도 그녀들에게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는 순수한 열정과 어떤 고가의 의상보다 아름다운 푸르른 청춘이 있지 않은가.

 


이 시대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가


무한도전은 전에도 달력에 표시되어 있지만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기조차 힘든 기념일을 끄집어내 특집을 제작한 적이 있었다. '퀴즈의 달인' 시절 무한도전은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며 '충무공 탄신일 특집'을 방영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독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외교 마찰로 한참이나 어수선했던 사실을 감안하면 기획의도를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다.


소녀시대와 함께 '여성의 날 특집'을 준비했던 기획의도는 최근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연쇄살인마 강호순 사건에서 추론해 볼 수 있다. 딸들이 마음놓고 밤거리를 다닐 수 없다는 사실을 크게 걱정하던 갈치조림집 사장님의 근심어린 표정이나 신변보호를 위해 가스총을 구입했다던 젊은 여성의 진술은 우리 모두가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사회적 문제이다.

 

 



우리 사회에서 약자의 위치에 놓인 여성에 가해지는 신체적 폭력 말고도 경제난으로 인해 직업 선택의 자유마저 제한하는 제도적 폭력 역시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적 병폐이다. 여자라는 이유 자체가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다는 한 여성 시민의 발언은 달리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경제적 어려움을 핑계로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풍조에 만연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무한도전이 멜 깁슨과 헬렌 헌트가 출연했던 영화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에서 모티브를 차용해 제작한 '여성의 날 특집'은 궁핍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폭력에 시달리는 이 시대 여성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이해를 촉구하고 있다.


함께 촬영에 참여 했던 소녀시대 역시 아이돌 스타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20대 여성들로서 평소에는 접하기 어려운 여러 연령층에 속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제 막 성년의 문턱을 넘어서기 시작한 그녀들에게도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런 점에서 '여성의 날 특집' 편은 눈에 잘 포착되지 않는 미세한 흔적들과 어렴풋이 들리는 떨리는 목소리들을 재구성해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합쳐진 파편들의 몽타주에서 비단 여성들 뿐만 아니라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회적 타자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또렷히 듣게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여성의 날 특집'은 실패한 특집으로 쉽게 단정지을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아쉬운 연출과 엉성한 구성 때문에 포용하기에도 망설여진다. 그렇지만 그 안에 오롯이 담긴 다양한 문제의식들, 여성 아이돌 그룹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부터 토크쇼 형식에 나타난 우리 시대의 화법에 대한 문화적 문제나 이 시대 여성의 삶에 대한 사회학적 성찰 등은 결코 외면해서는 안될 귀중한 사유들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러한 사유들의 싹을 틔워 아름드리 나무로 성장시키는 일은 온전히 시청자들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by ddolappa

 


[참고자료]

 


1. 소녀시대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할 것.


소녀시대│“실제로 저희는 파이팅 넘치는 아이들이예요” -1
http://www.10asia.co.kr/Articles/view.php?tsc=002004000&a_id=521


소녀시대│“저희도 싸워요, 하지만 자매 같으니까 끌어안고 가는 거죠” -2
http://www.10asia.co.kr/Articles/view.php?tsc=002004000&a_id=522


소녀시대│“자라면서 계속 변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아요” -3
http://www.10asia.co.kr/Articles/view.php?tsc=002004000&a_id=523


소녀시대│버블껌 바깥의 세계에서 다시 만난 소녀들
http://www.10asia.co.kr/Articles/view.php?tsc=002004000&a_id=520

 

2. '박중훈쇼'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할 것.


<박중훈쇼>, 장동건·김태희도 구제 못했다
http://media.daum.net/society/media/view.html?cateid=1016&newsid=20090110145804079&p=ohmynews


박중훈 쇼, 색다른 쇼인가 색깔없는 쇼인가
http://media.daum.net/entertain/others/view.html?cateid=100030&newsid=20090109180012110&p=khan


바늘방석 시대, 멍석 깔아주는 '해피투게더'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90109084714550&p=poctan


장동건-박중훈의 시대 VS 박찬호-강호동의 시대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90108105016518&p=poctan


박중훈쇼, 과거에 살다
http://zine.media.daum.net/h21/view.html?cateid=3000&newsid=20090102181216365&p=hani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