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7> 캐릭터 중심에서 스토리 중심으로
무한도전 143회 090228 : 정신감정 특집
무한도전의 두뇌지도 그리기
사람의 마음은 하트 모양의 심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1000억 개의 신경 세포 뉴런들로 구성된 두뇌 활동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상식처럼 통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과학적 해명에도 불구하고 육체라는 감옥에 숨겨져 있는 인간의 마음을 남김없이 읽어내 누구나 손쉽게 찾아갈 수 있는 지도를 그려내는 일은 인류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꿈인지 모른다.
무한도전의 '정신감정 특집' 편이 갖는 판타지적 성격은 바로 이처럼 타인의 마음을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보편적 호기심에 기초하고 있다. '돌+아이' 노홍철을 보면서 누구나 한 번은 궁금하게 생각했을 그의 광기(!!)가 실은 집중력 장애(ADHD)의 흔적일 뿐이며, 박명수가 어린 시절 공병을 친구 삼아 지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노홍철과 동일한 질환을 앓았기 때문이라는 정신과 전문의의 설명은 그 동안 대중들이 갖고 있었던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집중력 장애를 겪었다고 해서 누구나 노홍철이나 박명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과학적 해명이 그들이 갖고 있는 인간적 매력이나 개성까지 밝혀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까닭은 그들이 성장하며 축적해온 다양한 문화적, 사회적 경험들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 채 모든 것이 생물학적이고 심리적인 요인으로 환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형돈이 자신에 대한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을 부정하며 단편적인 모습만 갖고 어떻게 자신을 알 수 있느냐며 의심을 표명한 것도 나타낸 것도 인간의 심리활동이 복잡한 요소들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견해는 과학을 통해 인간의 정신활동 전부를 해명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헛된 미망인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생각들, 즉 과학적 지식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투명하게 알 수 있다는 생각과 인간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충돌하는데서 '정신감정 특집'의 오락적 긴장감이 생겨난다. 출연자들의 무의식적 언행과 습관 등을 관찰해서 그들의 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전문가의 견해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면서 결국에는 설득되고 마는 과정이 흥미진진한 오락거리로 재구성되고 있다.
그런데 '정신감정 특집'은 이러한 기본적 갈등 구조 이외에 또 다른 긴장 구조를 내포하고 있다. 즉 무한도전 내에서 출연자들이 갖고 있는 '캐릭터'는 그들의 실제 '성격'이라는 견해(노홍철)와 그렇지 않다는 견해(박명수)의 대립이 그것이다.
사이코 드라마에서 박명수는 '악마의 아들' 캐릭터는 캐릭터일 뿐 그의 실제 성격과는 무관하다고 변명하자, 노홍철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해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어 웃음을 유발한다. 그런데 가볍게 웃고 넘어갈 수도 있을 이 장면은 무한도전 내의 캐릭터들이 실제 성격을 반영한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해묵은 논란을 상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무한도전이 최근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방향 전환의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된다.
캐릭터 전성시대의 황혼
최근 방영되고 있는 오락 프로그램들은 캐릭터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개성 강한 캐릭터들로 넘쳐나고 있다. 예능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곧 캐릭터를 갖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는데, '리얼 버라이어티'와 '캐릭터' 전성시대를 연 장본인인 무한도전의 김태호 피디가 '캐릭터의 덫'에 빠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러한 트렌드를 거스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 무한도전 캐릭터의 형성 과정을 잠시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김태호 피디는 무한도전 시즌2에 해당되는 '퀴즈의 달인' 시기와 독립 프로그램으로 편성된 시즌3가 시작된 뒤에도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다듬는 작업에 공을 들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캐릭터들을 출연자들의 실제 성격과 그들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 바탕해서 창조했기 때문에 쇼의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다시 말해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은 장시간 면밀한 인간탐구 정신이 발휘된 노력의 소산이기 때문에 3년 넘게 방영되면서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제작진과 출연진은 캐릭터가 식상하게 느껴질 때쯤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이는 기민한 대처를 통해 오래 방영된 프로그램이 갖는 진부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정신감정 특집'은 기존의 캐릭터화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본 아이디어 역시 '면접 특집'에서 정형돈이 제시한 적 있는 아이템을 차용하고 있고, 그 내용 또한 초기 에피소드인 '우주 특집'에서 소개된 바 있는 출연자들의 인성 테스트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 특집'에서 화목한 가정을 가꿀 수 있는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출연자들은 'HTP'(Home, Tree, Person) 테스트를 받게 된다. 그 결과 노홍철은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감'을 유발하는 사람이고, 유재석은 적절한 사회적 적응을 하고 있으나 감정표현에 서투르고 수줍어 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정신감정 특집'에서 제시된 전문의의 소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주 특집'과 '정신감정 특집'에서 행한 인성 테스트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우주 특집'에서 심리 테스트는 '퀴즈의 달인' 시절부터 계속되어 온 출연자들의 캐릭터화 작업을 정리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박명수는 '불안과 공격성'을 갖고 있는 '비관습적, 비사회적, 비정상적' 인물로 과장되게 묘사되고 있다.
그와 달리 '정신감정 특집'에서 출연자들의 심리상태는 일반인들이 생활 속에서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을 법한 양상을 보여준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는 정준하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분열된 정체성으로 괴로워 하는 정형돈의 모습은 현대인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심리상태의 한 예일 뿐이다. 심지어 개성 강한 노홍철의 정신 또한 집중력 장애의 한 유형으로 정리된다. 특히 가장 비중있게 다루어진 박명수의 심리치료극은 자녀교육은 아내에게 위임한 채 경제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 가정생활에서 겪게 되는 소외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정신감정 특집'은 출연자들의 개성 강한 캐릭터를 일반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정신과 전문의의 존재 때문이다. 그의 전문적 지식은 출연자들의 특수한 심리상태를 유형화시켜 분석함으로써 그들의 캐릭터에 보편성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제작진 역시 박명수의 사이코 드라마에서 볼 수 있듯 아버지와 자녀들 간의 대화단절로 인해 가정불화가 발생하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을 읽어내면서 심리학적 요소를 사회학적 층위로 확장시키고 있다. (일반인들에게서 특이한 개성을 발견하고자 기획된 '돌+아이 특집'은 '정신감정 특집'과 대칭관계에 놓인다.)
그런 점에서 '우주 특집'이 캐릭터 전성시대의 서막을 알리고 있는 에피소드라면, '정신감정 특집'은 그 시대의 황혼에 위치한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정신감정 특집' 편은 저무는 시대의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의 빛을 예비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스토리 중심의 시대이다.
캐릭터 중심에서 스토리 중심으로
'정신감정 특집'의 전반부는 출연자들의 심리분석에 집중되고, 후반부는 심리치료 과정을 드라마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할애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캐릭터 중심에서 스토리 중심으로 무한도전의 방향 전환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은 출연자들의 캐릭터 자체를 포기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캐릭터의 비중을 낮추는 대신 스토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김태호 피디는 "과거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특집에서 나온 출연진의 캐릭터로 콩트를 해보는 것도 생각 중"에 있다고 말한 바 있고, 최근 정체된 모습을 보이는 출연자들의 캐릭터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캐릭터와 스토리는 어떤 상관관계에 있기 때문에 김태호 피디는 출연자들을 강하게 질타한 것일까?
캐릭터에 기반한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시트콤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상당수의 시청자들이 '패미리가 떴다'를 야외에서 촬영한 시트콤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도 장소 변화와 상관없이 고정된 캐릭터들이 엇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명수가 '상황극'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캐릭터와 캐릭터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짧은 콩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만 콩트는 '대본'과 주어진 상황에 따른 '역할'이 있는 반면, 상황극은 즉흥적인 '애드리브'와 '캐릭터'로 이야기를 만든다는 차이점을 지닌다.
이렇게 볼 때 캐릭터에 기초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는 단조롭기 때문에 쉽게 식상해질 수 있고,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한도전은 그나마 일정한 포맷을 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과감한 형식 실험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극복해왔지만, 고정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여타의 프로그램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한계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맥락에서 캐릭터는 연기일 뿐이라는 박명수의 주장과 그건 연기가 아니라 실제 성격이라고 맞서는 노홍철의 주장이 충돌하는 장면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그 안에는 캐릭터와 스토리의 문제를 새롭게 정립시킬 수 있는 단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노홍철의 주장은 무한도전의 캐릭터는 출연자들의 실제 성격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리얼리티를 띠고 있다는 기존의 견해에 부합한다. 이에 반해 자신의 캐릭터는 연기일 뿐 본래의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박명수의 주장은 자기 합리화를 위한 변명이긴 하지만 무한도전이 표방해온 세계관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위험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출연자들의 캐릭터가 전부 연기, 즉 거짓이었다는 말인가!
박명수의 주장은 '동네 바보형' 캐릭터를 맡아온 정준하가 출연자들 중 지능검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사건의 순서를 배열하는 능력이 부족해 눈치가 없는 것일 뿐 결코 바보는 아니었다는 지극히 상식적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박명수가 최근 '기부 천사'로 거듭나거나 자상한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그의 기존 캐릭터와 상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무한도전이 기존의 세계관을 변화시키고 있는 징후로 해석될 수 있다. 그 동안 제작진이 박명수의 그러한 면모를 몰랐기 때문에 화면에 등장시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무한도전의 세계관 내에서 불필요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노출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캐릭터 역시 일종의 연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캐릭터가 출연자들이 갖고 있는 성격 중 일부를 과장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리얼리티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박명수와 노홍철은 서로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허구'(연기)이면서도 '사실'(실제 성격)인 무한도전의 캐릭터가 갖고 있는 특성 중 일면만을 대변한 견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무한도전이 성격에 기반한 '캐릭터' 연기를 일정 부분 포기한 대신 출연자들에게 주어진 상황에 맞는 '역할'을 연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들어 무한도전이 콩트의 비중을 높인데서도 확인된다. '육남매 특집'이나 '춘향이 선발대회'의 경우 출연자들의 행동은 예전과 달리 서사의 법칙에 의해 보다 강하게 제약받고 있고, 심지어 김연아 선수가 출연한 '축제의 무도'에서도 게스트와 함께 콩트 연기를 하는 코너가 마련된 것도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최근 방영된 에피소드들에서 발견되는 어정쩡한 형태의 콩트는 무한도전의 과도기적 성격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김태호 피디가 출연진을 다그치는 것도 자신들의 캐릭터에 갇혀 있는 연기 형태에서 벗어나 보다 폭넓은 연기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다양한 스토리를 선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한도전의 운명은 김태호 피디가 제시한 도전 과제를 출연자들이 얼마나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특한 개성으로 대중들의 눈을 잠시 사로잡을 수는 있겠지만,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연예계에서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역량을 끊임없이 확장시키려는 노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무한도전 출연자들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10분 정도 방영되는 오프닝을 위해 3~4시간의 촬영을 하고, 별도의 추가 출연료 없이 일주일에도 서너 차례씩 고된 촬영을 마다 않는 열정이 없었다면 무한도전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태호 피디가 제시하고 있는 원대한 쇼의 비전은 지금보다 더 강도 높은 에너지와 향상된 재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출연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까다로운 도전 과제를 부여받은 것인지 모른다. 김태호 피디가 올해 여름 전까지 과도기로 설정한 이 기간은 따라서 새로운 쇼를 준비하기 위한 일종의 트레이닝 기간이라 할 수 있다. 그가 3월과 5월 사이 토요일 예능 프로그램의 비수기 기간 동안 재미있는 아이템, 새로운 아이템, '무한도전'만이 할 수 있는 아이템 이외에 '육남매 특집'같은 초심 특집을 준비해놓고 있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들이 고된 훈련을 마친 후 과연 어떤 세계를 펼쳐보일 지 벌써부터 궁금해지지 않는가.
by ddolappa
[참고자료]
‘무한도전’PD “캐릭터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하겠다”
http://media.daum.net/entertain/all/view.html?cateid=1005&newsid=20081222095108597&p=ned
'무도' 김태호 PD, 출연진 질타 "언제까지 그 캐릭터로 할거야!"
http://media.daum.net/entertain/view.html?cateid=1032&newsid=20090403124904294&p=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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