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기획 리뷰]

그래도 무한도전은 계속된다

ddolappa 2018. 3. 14. 11:21

그래도 무한도전은 계속된다




     김태호 PD가 무한도전에서 하차했다, 그를 대신해서 최행호 PD가 준비 중이며 유재석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과 협상 중이다, 김태호 PD가 무한도전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며 '크리에이터'로서 제작에 도움을 줄 것이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전원 하차하기로 결정했다 등등. 무한도전에 대한 혼란스러운 소문들과 기사들이 며칠 간 인터넷 공간을 술렁이게 했다. 최종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무한도전은 3월 말 휴식에 들어가 '가을 이후' 되돌아오며, 김태호 PD와 유재석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 역시 하차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을 이후'의 시기가 언제일 지, 기존 멤버들을 고수할 지 아니면 노홍철이나 정형돈이 복귀해서 변화가 생길 지, 무한도전이 앞으로 김태호 PD가 요구한 시즌제 형태로 제작될 것인지 아닌 지 등등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으며, 그에 따라 무한도전의 앞날 역시 반드시 긍정적으로 낙관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MBC는 '우리 결혼했어요', '마리텔', '진짜 사나이' 등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을 다음 시즌을 약속하며 종영시켰다가 아직까지도 제작하지 않은 전력이 있다. 그리고 만일 최행호 PD가 준비 중인 후임 프로그램이 무한도전 못지 않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면 무한도전이 원래의 시간대로 복귀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MBC가 '무한도전'이란 브랜드를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MBC는 김태호 PD의 시즌제 요구가 지나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유재석을 비롯한 다른 출연자들만 유지할 수 있다면 PD만 교체해서 무한도전을 계속해서 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김태호 PD 입장에서는 현재와 같은 제작환경에서 무한도전을 이끌어 간다는 것은 더 이상 무리라고 판단을 했고 그래서 하차라는 초강경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추측된다. MBC는 '1박2일'을 모델 삼아 형식뿐인 시즌제 예능을 도입하고자 했던 것 같은데, 문제는 그들이 13년 간 이어온 김태호 PD와 출연자들 간의 관계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주의할 점은 다순히 오랜 세월 쌓아온 인간적 신뢰나 정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제작에서 서로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그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태호 PD와 유재석은 무한도전의 두 기둥들인데, 수많은 인터뷰에서 유재석은 김태호 PD를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준 사람으로 표현했고, 김태호 PD는 유재석을 현장에서 자신을 대신할 야전 사령관으로 표현한 바 있다. 무한도전을 위해 자신의 출연료를 스스로 삭감하기도 하고, 자비를 투자해 연습실을 마련하고 촬영 시간 외에도 무한도전을 위해 아낌없이 모든 것을 바쳐온 유재석이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스타 예능 PD로서 이직에의 유혹이 적지 않았음에도 10년이 넘는 세월을 꿋꿋이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 제작에 헌신해왔던 김태호 PD를 MBC 사측은 너무나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팬들은 출연자들만 유지시킨 채 담당 PD를 바꿔가며 제작한다는 발상이 적어도 무한도전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몰랐거나 외면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돈'이란 물질에 눈이 가려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한도전이라는 브랜드가 갖고 있는 수많은 광고수익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고, 그래서 출연자들만 유지시키면 담당PD를 바꿔서 제작하더라도 문제가 없을 거란 안일한 태도로 협상에 임했던 것이다.


     방송국 입장에서 예능 프로그램은 저비용 고효율의 효자 프로그램이다. 타 프로그램 제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투자하고 높은 수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방송사마다 대표적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총력을 동원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예능 프로그램을 천시하고 출연자들을 일종의 소모품으로 대하는 태도 역시 뿌리깊게 남아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MBC 사측이 무한도전 제작진과 협상하는 과정만 보더라도 골수에 박혀 있는 듯한 예능 천시태도를 엿볼 수 있다. 만일 무한도전이 이명박 정권의 관제 여론몰이에도 흔들리지 않고, 또 박근혜 정권이 집요하게 창조 경제를 홍보하는 방송을 제작해달라고 요구해도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을 정도의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협상은커녕 소리소문 없이 폐지되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어려운 시절 뚝심있게 MBC와 무한도전을 지켜온 김태호 PD를 단번에 퇴출시키는 패기만 봐도 그렇다.


     어쨋든 무한도전은 적어도 가을까지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것은 그간 무한도전을 믿고 지지해온 시청자들의 힘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MBC 역시 무한도전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기에 애매모호한 타협안을 받아들 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렵게 획득한 그 유예기간 동안 김태호 PD와 제작진이 무엇을 준비해서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게 될 지 예측할 수 없다. 다만 그들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MBC에 대해서 시청자들은 보다 분명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그들이 무한도전 측과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는 정말 최선이었냐고, 당신들이 정권의 개가 되어 방송국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어 있을 때도 무한도전이 존재했기 때문에 갱생의 가능성을 희미하게나마 유지했던 사실을 어떻게 잊을 수 있느냐고 따져 물어야 한다. MBC가 다시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방송국이 되기 위해서는 철두철미한 적폐청산이 완수되어야 하는 한편, 과거의 퇴행적 가치를 버리고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태도로 국민들이 호감을 얻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시작은 보도국과 예능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얼핏 서로 가장 동떨어진 기능들처럼 보이지만 뉴스와 예능만큼 국민들의 삶에 밀착되어 있는 것도 드물다. 다행히 MBC의 보도 기능이 점차 되살아나고 있지만, 인재 유출이 극심한 예능국이 정상화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정상화'가 다시 예전과 같은 조직편제나 가치체계로의 회귀를 의미해서는 곤란하다. MBC의 정상화는 기능이 마비된 채 뒤쳐진 지난 1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시대를 선도할 새로운 기능과 가치를 선보일 때 비로소 성취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가을 경에 돌아올 무한도전은 오래된 프로그램이 앞으로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는 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험 무대이자, MBC가 얼마나 정상화를 이루냈는 지를 살펴볼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김태호 PD와 유재석의 관계처럼 MBC 속의 무한도전, 무한도전을 품은 MBC가 되어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과 방송국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by ddola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