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읽기/마르코 복음서 읽기

마르코 복음 읽기 제안

ddolappa 2016. 4. 30. 14:21

 

 

[마르코 복음 읽기]

 

앞으로 제 블로그에서 성서 읽기를 연재할까 합니다. 제가 신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또 종교 관련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성서에 관련 된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까닭은 요 몇 년 간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제가 느꼈던 성서 읽기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바가 더 큽니다.

 

사실 성서에 관련된 서적은 이미 시중에 차고 넘치고, 또 이와 관련된 블로그나 카페 모임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종교적으로 해석된 성서 읽기를 제공하다 보니 비신앙인이 성서을 인류 문화의 유산으로 받아들이고 접근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관련 단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또한 특정 교파의 교리나 도그마에 따라 채색된 성서 해석만을 진리로 주장하는 논쟁에 염증을 느낀 적이 있다면, 넘쳐나는 종교적 해석들은 - 그들이 원했던 바와 다르게 - 성서와 그 종교에 대한 무관심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많아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앞으로 연재하게 될 글들이 성서를 ‘인류 문화의 유산’으로 충분히 납득시킬 만큼 탁월한 식견과 통찰력으로 무장하고 있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저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얄팍한 지식들을 단순히 나열하거나, 그마저 제대로 하지 못해 수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럼에도 이런 무모한 시도를 감히 도전하는 건, 2천년 전 그들이 살아내야 했던 상황이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던 제 개인적 경험만큼은 전달돼도 좋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 때문입니다. 이런 경험을 공유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오류나 실수에의 위험도 무릅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해서 4대 복음서 중 가장 최초로 씌어졌고, 또 그만큼 기독교적 채색이 덜 된 마르코 복음을 선택해 천천히 읽어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참고로, 개신교에서 번역된 ‘마가복음’ 대신 천주교에서 번역된 ‘마르코 복음’을 번역 대본으로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그 번역본이 제가 읽기에 조금 더 편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신약학회 회장을 역임하셨던 서중석 교수께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정양모 신부님의 마르코 번역본을 대본으로 삼을까 하다가 접근성을 고려해 결국 ‘마르코 복음’으로 결정했습니다.

 

글은 최소 일주일에 한 차례는 올릴 예정인데, 경우에 따라 변동될 수도 있습니다.

 

 

by ddolappa

 

'성서 읽기 > 마르코 복음서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5 장-갈릴래아 전도를 시작하다  (0) 2016.05.30
제 4장-세례를 받다  (0) 2016.05.19
제3장-세례자 요한  (0) 2016.05.14
제2장-이사야의 예언  (0) 2016.05.11
마르코 복음서 읽기 1장  (0) 2016.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