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499회
- 신들의 전쟁 1탄(160924)
영화 배우들의 무한도전 체험기
영화 홍보를 목적으로 배우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은 일종의 업계의 관행이 되었지만, 적어도 최근까지 무한도전은 그러한 관행이 통용되지 않는 예외의 영역이었다. 그 이유는 무한도전이 개성 강한 캐릭터를 가진 멤버들 간의 끈끈한 케미에 기반하여 웃음을 산출하는 특성을 갖고 있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대된 게스트들이 무한도전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할 경우 시청자들로부터 혹평을 받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런 이유로 무한도전은 홍보를 목적으로 출연하기에 득보다는 실이 많은 프로그램으로 인식되어 왔다.
일종의 금기와 같던 무한도전의 성역을 가장 효과적으로 침범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잭 블랙이었다. 영화 '쿵푸팬더 3'의 홍보를 위해 내한한 잭 블랙은 무한도전에 출연해 단 한 번도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언급하지 않고도 홍보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두었다. 그는 놀라운 적응력과 순발력으로 무한도전이란 세계에 적극적으로 빠져들었고, 시청자들은 그의 재능과 개성에 매료되었다. 그 결과 잭 블랙 개인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가 상승한 것은 물론 영화 역시 40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불러모을 수 있었다. 그는 무한도전에 게스트로 출연할 때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가를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잭 블랙의 사례는 이번 '신들의 전쟁' 에피소드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영화 '아수라'의 홍보를 위해 무한도전을 방문한 영화 배우들은 자신들의 방문 목적을 굳이 밝히는 대신 '무도 드림' 특집을 통해 무한도전과 맺었던 인연에 대해 언급한다. 여기에 황정민이 '못친소 시즌1'에 초대받은 사실이나 김원해가 '무한상사 2016'에 출연한 사실 등이 덧붙여지며 배우들과 무한도전 간의 긴밀한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특히 정우성은 유재석이 자제를 시켜야 할 만큼 웃음에 대한 의욕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원해 역시 등장하자 마자 조연을 주로 맡아 연기하는 자신을 희화시키며 '자격지심' 캐릭터를 보여주는 한편, 자신을 광희와 연결시키며 프로그램에 대한 높은 이해를 보여주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에피소드는 헐리우드 배우 잭 블랙을 벤치마킹한 한국 영화 배우들의 무한도전 체험기로 볼 수 있다. 황정민, 정우성, 곽도원, 김원해, 정만식, 주지훈 등의 배우들은 무한도전에 출연해 어떤 개성과 매력을 보여줄 것인가. 또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무한도전이 준비한 아이템은 과연 무엇일까. 이 두 가지 사항이 이번 에피소드의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예능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유재석이 정우성에게 본인이 잘 생긴 것을 아느냐고 질문한 뒤 각각 90년대식과 요즘 트렌드에 맞춰 대답해달라고 요구한 장면은 무한도전에 입장하기 전에 치루는 선언식과 같은 역할을 했다. 90년대였다면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미덕이겠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권장되는 시대로 그에 걸맞는 자세를 취해달라는 부탁인 셈이다. 이에 정우성은 "잘 생긴 것은 단점이 없다"고 대답하며 유재석의 요구에 기꺼이 부응했다.
정우성은 등장하는 순간부터 자신을 흉내내는 정준하를 따라하며 웃음에 대한 과도한 의욕을 보였고, 그것은 유재석이 나서서 말리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유재석은 웃음에 대한 과욕이 도리어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인상만 남길 뿐이라는 사실을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의를 준 것이다. 정우성은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잘생긴 외모에 대한 농담을 종종 던져왔고 그에게 유머러스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대중들에게 알려왔지만 아직까지는 무한도전 내에서 그러한 면모를 자연스럽게 표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우성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자연스럽게 자신의 유머 감각을 드래내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 하하와의 재치있는 전화 통화 장면이나 게임에 진지하게 몰입한 모습 등은 외모에 가려진 그의 천진난만하고 장난스러운 면모를 잘 드러냈다.
처음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곽도원은 모든 것을 신기해하는 순박한 모습을 보이며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했다. 그는 등장 순간부터 수많은 카메라에 놀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무한도전에 출연한 것에 감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너무나 솔직한 화법 때문에 소속사에서 그 동안 예능 출연을 금지시켰다는 그의 언급처럼 곽도원은 매순간 배우가 아닌 인간 곽도원이 지닌 개성과 매력을 발산했다. 과거 '버스커버스커'의 장범준이나 '젝스키스'의 이재진처럼 예능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무한도전에 출연해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 경우가 있었는데 곽도원 역시 이 명단에 추가로 등록되어야 할 것 같다.
배우로서 품위와 인간적 매력 사이
아직은 예능 프로그램이 낯설고 어색한 배우들을 위해 무한도전이 준비한 아이템은 배우로서 품위를 잠시 내려놓으면서 인간적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것이자 동시에 연기라는 그들의 전문 영역에 대한 존경과 감탄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가령, 댄스 배틀이나 의자 뺏기 게임은 그 유치함을 통해 성인 남자 배우로서의 권위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라면, 명대사와 명장면의 재연은 전문 연기자로서 그들의 품위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모순적 아이템은 배우들이 웃음의 대상이 되어 희화화되더라도 그것이 그들의 인간적 개성과 매력을 드러내는 기능을 할 뿐 그들의 전문 영역은 오히려 존중되는데 기여한다. 황정민이 정우성이나 주지훈에 비해 다소 부족한 외모와 좋지 않은 피부로 인해 놀림감이 되더라도 그는 영화 '신세계'와 '곡성'에서 보여준 명연기로 기억되는 훌륭한 배우라는 사실을 결코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곽도원은 영화 '곡성'에서 등장한 대사 하나로 웃음과 감탄을 동시에 유발했다. 아내와 차안에서 사랑을 나누던 광경을 딸에게 목격되었을 때 당황스런 표정과 몸짓을 하며 다급하게 내뱉은 '효진아!'는 갑자기 미친듯이 음식을 먹고 있는 귀신들린 딸에게 다가가며 걱정스럽게 읊조린 '효진아!'와 얼마나 다른 것인가. 촬영장 전체가 숨을 멈추고 지켜볼 만큼 뛰어난 집중력과 몰입감이 발휘된 그의 연기는 예능에서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결코 배우로서 그의 품위를 해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무한도전은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 속 명장면이나 명대사를 재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 희화화로까지 나아갔다. '무한상사 2016'에 등장한 장면들을 전문 배우들에게 연기하도록 함으로써 동일한 장면이 배우들의 연기력과 개성에 따라 어떻게 다른 감정의 폭을 지닐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무한도전 멤버들의 부족한 연기력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켜 웃음을 유발했다. 이런 장치는 '무한상사'가 진지한 정극 연기에서 다시 콩트로 돌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무한도전이란 롤러코스터
무한도전이 영화 배우들을 대하는 태도는 추격전의 기초 훈련 명목으로 실시된 '의자 뺏기' 게임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고급스런 레스토랑에서 수려한 정장 수트 차림의 배우들이 고혹적인 목소리의 재즈 가수가 부르는 '밀과 보리가 자란다'에 맞춰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춤을 추는 장면은 이질적이고 부조화적인 요소들의 충돌로 인해 혼란스럽지만 그 자체로 희극적인 상황이다. 여기에 유재석을 비롯한 무한도전 멤버들의 끊임없는 도발과 유혹에 굴복당한 배우들은 점차 무게감을 내려놓고 능동적으로 쇼를 즐기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사실 무한도전 제작진이 배우들을 준비한 아이템에서 전혀 새로운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명장면이나 명대사를 재연하는 것이나 댄스배틀은 식상하다 못해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배우들의 새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을 먼저 내려놓고 모범을 보인 유재석과 배우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쇼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 멤버들과 제작진의 배려 때문이다. 여기에 배우 정우성이 적극적인 태도로 쇼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다른 배우들 역시 따라오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 주효했다.
하지만 무한도전이란 롤러코스터가 마냥 신나고 즐거운 경험만 선사한 것은 아니다. 가령, 추격전을 펼치기 위해 계급을 정하는 장면에서 마지막까지 게임의 룰을 이해하지 못한 듯한 광희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 전까지 진행된 대화에서 광희는 거의 한 마디도 끼여들지 못했다. 광희는 자신이 콤비라 여긴 양세형이 하하와 짝을 이루어 대화를 주도했을 때도, 박명수와 정준하가 주축이 되어 중요한 역할을 맡기 위해 난전을 펼칠 때도, 간간히 추임새 정도만 넣을 뿐 어떤 역할을 맡고 대화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나마 유재석의 배려로 조커 역할이 추격전에 재능을 보인 광희에게 분배되었을 때 그가 처음으로 힘있게 던진 말 한 마디는 유재석을 비롯한 모두를 탄식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출연분량이 부족한 광희를 위한 제작진의 배려인가 아닌가. 광희는 실제로 이해를 못한 것인가 아니며 이해하지 못한 척 연기를 한 것인가. 사실 웃음이 목적인 예능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인지 모른다. 다만 그 장면은 광희 스스로 말했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쳐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유발할 뿐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제 군입대를 앞둔 광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에게 주어진 기회를 보다 현명하게 붙잡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by ddol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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