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정형돈의 선택을 지지한다

ddolappa 2016. 9. 20. 19:46

정형돈의 선택을 지지한다.

 

 


      '무한상사-위기의 회사원들'에 깜짝 등장한 정형돈의 모습을 반가워 하며 그의 쾌유와 조속한 복귀를 바라던 여론은 불과 며칠 만에 싸늘하게 돌변했다. '무한상사' 방영 3일 후 정형돈의 '주간 아이돌' 복귀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100억 원대의 웹영화에 정형돈이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한다는 소식과, '형돈이와 대준이'의 음반 활동이 재개된다는 소식이 연이어 알려졌다. 정형돈이 건강상의 이유로 무한도전에서 하차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대중들로서 납득하기 어려운 과감한 행보라 할 수 있다.

 

 

 

 

 

      우선 정형돈의 행보와 대중의 인식 사이에 존재하는 몇 가지 간극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정형돈의 무한도전 하차가 곧 그의 연예계 활동의 중단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이미 불안장애로 1년 가까이 휴식을 취하며 활동을 중단했다. 이경규나 김구라처럼 같은 질병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 연예인들이 치료와 방송활동을 병행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정형돈이 완치되지 않은 채 방송활동을 재개하더라도 전혀 납득 못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정형돈의 연예 활동 복귀를 무한도전에로의 복귀로 동일시하는 시각에 있다.

 

      정형돈은 과거 무한도전이 종영되면 자신의 연예인으로서 생명도 끝날 것 같다고 말할 만큼 프로그램에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시청자들 역시 그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무한도전의 성장 과정을 정형돈의 성장과정과 동일시할 만큼 그에게 특별한 애정을 주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무한도전은 정형돈이 출연을 선택할 수 있는 많은 프로그램들 중 하나일 뿐 그와 운명 공동체로 엮인 관계는 아니다. 평소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이 서로의 관계를 가족과 같다고 말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프로그램에 출연할 것을 강요할 수 있다는 말과 동일시될 수 없다.

 

 

 

 

      가령, 음주 사건 이후 노홍철은 더 이상 무한도전에 출연하지 않지만 여전히 유재석이나 김태호 피디를 비롯한 동료들과 자주 연락을 취하며 사석에서 만난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반드시 무한도전에 복귀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가족과 같은 관계는 유지될 수 있다. 만일 무한도전이 표방한 가족 개념을 함께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 정도로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거나, 방송상 설정에 불과한 유사 가족 개념을 혈연 관계에 기반한 가족으로 오인하고 있다면, 정형돈의 선택은 가족을 내팽개친 이기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바로 이 지점이 정형돈에게 동정적인 여론이 분노로 바뀐 지점이다. 정형돈이 과감할 정도로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며  연예계 활동을 재개했음에도 그의 가족이라 할 무한도전에 복귀하지 않는 모습은 가족 품을 떠난 탕자에 다름없는 것이고, 따라서 그의 행보는 이득에 눈이 멀어 가족을 버린 폐륜적 행동으로 치부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중들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상대가 자신의 희망과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해서 분노하고 경멸하는 것은 변심한 애인을 납치해 가두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살인자의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대중들이 보여주는 무의식적 행동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 그것은 최근의 무한도전이 출연자들의 이탈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던 원래의 출연자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 지금의 위기는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거란 환상 역시 쉽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무한도전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던 원래의 출연자들이 모두 있던 시절에도 끊임없이 위기를 겪어왔다. 무한도전의 역사 자체가 위기 극복의 역사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무한도전이 겪고 있는 위기를 단순히 출연자들의 부재에서 찾는 것은 굉장히 협소한 인식일 수밖에 없다. 무한도전의 진짜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유재석은 빼곡한 원래의 스케줄을 소화하며 무한도전을 위해 별도의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무한상사' 촬영을 위해 밤새 달리기를 하고, 잠시 다른 촬영장에 들렸다가 또 다시 무한도전 촬영장에 복귀해 며칠 밤을 새가며 달리고 또 달려야 했다. 게다가 그 와중에 유재석은 엑소와의 콜라보 작업을 위해 틈틈히 까다롭고 복잡한 엑소의 안무를 익혀야 했고, 따로 시간을 내서 태국까지 다녀와야 했다. 다행히 방송은 언론으로부터 역시 '유느님'이란 호들갑스런 찬사를 받았지만, 무한도전의 살인적 제작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한 언론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무한도전은 다음 달에 우주비행 훈련을 받기 위해 러시아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다. 대중들은 이렇게 열악하기 짝이 없는 제작환경 속으로 아직 건강이 회복되지 않은 정형돈이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분노하고 경멸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문제의 근원은 대중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핵심은 외면한 채 피상적인 사실 전달에 열중하는 언론에 있다. 그들은 정형돈의 행보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기사를 내놓지만, 정작 그의 건강이 얼마나 회복된 것인지, 또 무한도전으로의 복귀를 미루는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살인적 일정을 무사히 소화한 유재석을 찬양할 뿐 열악한 제작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 경우다.

 

      혹자는 많은 돈을 받으니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반문하기도 한다. 이런 반문 속에는 돈만 받는다면 얼마든지 사람 이하의 존재로 추락할 수 있다는 다짐과 의지가 담겨 있다. 문제가 있는 현재의 구조를 개선시키기 보다는 어떻게든 그 안에서 살아남겠다는 절박함이 현상황을 더욱 절박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망각하고 있다.

 

      유재석이 열악한 상황을 그만의 뛰어난 능력과 의지로 극복한 것을 무한도전의 다른 출연자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형돈은 그가 할 수 있는 능력 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고 개인의 선택은 존중될 필요가 있다. 정형돈에 대한 온갖 추측과 억측을 뒤섞어 어처구니 없는 비난을 쏟아내기를 멈추고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과 그것의 제작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성찰의 계기로 삼는 것이 보다 생산적인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일방적인 희생과 헌신만으로 방송 프로그램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환상 만큼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그것이 '헬조선'화된 사회를 탈출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by ddola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