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01회
- 무도리 GO 1탄(161008)
무한도전은 500회 특집으로 자신의 과거를 증강현실(AR) 게임과 접목시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무도리를 찾아서 떠난 서울의 공간들에서 멤버들과 함께 시청자들이 발견하게 되는 건 추억이란 이름으로 켜켜이 쌓인 시간의 두꺼운 층이었다. 어색한 사이였던 정형돈과 하하가 수줍게 올랐던 남산의 계단들, 2년마다 열리게 될 가요제의 첫 시작이었던 성산대교 아래의 공터, 손에 땀을 쥐게 하던 추격전을 펼쳤던 여의도 공원 등 미션 장소를 방문했을 때 소환되는 건 단순히 입체적으로 구현된 무도리 뿐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생생히 떠오르는 그 날의 기억들이었다.
제작진의 준비성과 기획력이 돋보이는 이번 에피소드는 11년 간 축적된 콘텐츠의 힘을 가지고 현재의 무한도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 그 의미가 있다. 이미 무한도전은 여러 특집에서 과거를 회고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좋았던 한 때를 단순히 회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새로운 창작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가령, '텔레파시' 특집에서도 멤버들은 남산 계단을 방문하지만 그것은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었다.
'무도리 GO' 특집은 과거의 에피소드들이 갖는 의미와 그 전후 맥락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다 성찰적인 성격을 띤다. 무한도전 역사상 가장 많은 후속 에피소드를 생산한 특집인 '아이스 원정대'에서 롤링 페이퍼를 통해 정형돈과 하하가 어색한 사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이 둘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제작된 에피소드가 '친해지길 바래' 특집이다. 이 특집을 통해 무한도전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개념을 완전히 정착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궁 밀리어네어' 특집, '스피드' 특집, 'TV 특강' 특집 등은 역사에 대한 무한도전의 지속적 관심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다. 무한도전은 시사적 주제를 예능적 형식에 담아내려 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과 차별화되었다. 기존의 오락 프로그램이 정보 전달에 초점을 맞추고 웃음은 그것을 감싸는 당의정 정도로 취급했다면, 무한도전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예능 형식에 녹여내는 보다 고차원적인 전략을 취했다.
무한도전의 에피소드들은 다른 예능을 창출하는데 영감을 주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1박2일'은 무한도전의 '무인도' 특집에서 영향받은 것이고, '런닝맨'의 포맷은 무한도전의 추격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특집 이후 무한도전은 '꼬리잡기' 특집, '100빡빡이의 습격' 특집, '여드름 브레이크' 특집 등 다양한 추격전의 변주를 만들어냈다. 특히 '여드름 브레이크'는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의 형식을 빌어 새로운 오락적 재미와 함께 재개발이라는 시사적 주제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장기 프로젝트 역시 무한도전이 처음으로 선보인 포맷 중 하나이다. 최초의 장기 프로젝트인 '쉘 위 댄스' 특집에서부터 '조정' 특집, '에어로빅' 특집, '레슬링' 특집, '벼농사' 특집 등 짧게는 두어 달에서 길게는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하나의 에피소드에 투자되기도 했다. 안정적인 시청률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예능에서 쉽게 시도할 수 없는 모험이었다는 점에서 무한도전의 도전 정신이 더욱 빛나는 특집들이다.
장기 특집들은 투자된 시간과 육체적 수고로움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맺게 된 인연들 때문에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멤버들에게 스포츠 댄스를 가르쳤던 박지은 선생, 물살을 가르는 노를 저으며 함께 땀과 눈물을 흘렸던 김지호 코치, 에어로빅의 즐거움을 선사했던 '할마에' 염정인 씨, 그리고 본업인 가수 생활도 잠시 중단한 채 레슬링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쳤던 '체리필터'의 손스타. 무한도전을 잊지 못하고, 또 무한도전 역시 잊을 수 없는 그 사람들 역시 무한도전의 가족들이다.
오랜 기간에 걸친 반복 훈련은 육체에 그 흔적을 남긴다. 마치 자전거 타는 법을 배훈 후 한참 뒤에 다시 자전거에 오르더라도 다시 탈 수 있듯이 멤버들은 추억 속 인물들과 만나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 속에 저장된 기억들을 끄집어냈다. 정준하가 망각된 것처럼 여겨졌던 동작들을 더듬더듬 기억해내며 기뻐할 때, 유재석이 수개월 간 자신의 몸에 각인된 노젓기의 감각을 다시 느끼며 뿌듯해 할 때, 시청자들 역시 그들 때문에 울고 웃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나지막히 이렇게 되뇌어 본다. 당신들과 함께 한 그 시간들을 나 역시 후회없이 사랑했노라고.
by ddolappa
[관련 에피소드 리뷰]
1.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http://blog.daum.net/ddolappa/5172779
http://blog.daum.net/ddolappa/5352562
http://blog.daum.net/ddolappa/5549041
2. 며느리가 뿔났다
http://blog.daum.net/ddolappa/7387847
3. 에어로빅 특집
http://blog.daum.net/ddolappa/8762396
http://blog.daum.net/ddolappa/8762397
4. 여드름 브레이크
http://blog.daum.net/ddolappa/8762783
http://blog.daum.net/ddolappa/8762784
5. 빨리 친해지길 바래
http://blog.daum.net/ddolappa/8762919
http://blog.daum.net/ddolappa/8762924
'무한도전 >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21회 (0) | 2016.10.14 |
---|---|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20회 (0) | 2016.10.12 |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00회 (0) | 2016.10.02 |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499회 (0) | 2016.09.28 |
정형돈의 선택을 지지한다 (0) | 2016.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