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00회

ddolappa 2016. 10. 2. 12:46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00회
- 신들의 전쟁 2탄(161001)

 

 

예능의 신들과 연기의 신들

 

      지난주에 이어 예능의 신들과 연기의 신들이 본격적으로 '병정 게임'을 벌였다. 초기에는 비슷한 수싸움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지만, 하하가 김원해에 의해 붙잡힌 후 박명수와 정준하가 어이없이 연달아 포획되며 무게의 추는 연기의 신들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황광희와 양세형만 남은 최악의 상황에서 변장과 급습 그리고 지리적 이점을 살린 플레이로 최종 승리는 예능의 신들에게 돌아갔다.

 

      양세형은 재빠른 두뇌회전과 날랜 몸놀림으로 추격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유재석마저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붙잡힌 상황에서 광희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작전을 지시했고, 그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상대편 진영에 뛰어들어 혼란을 유발시키고 황정민을 붙잡는 등 제 몫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 광희는 게임이 시작한 지 몇 시간이 지나도록 게임의 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 곽도원으로부터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뛰어난 달리기 실력으로 그를 추격하던 황정민을 따돌리고, 피자 배달부로 변장을 한 채 상대의 실낱같은 헛점을 전광석화처럼 파고 들어 당당히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방송의 실제적인 주인공은 그들이 아니라 유재석이다. 그는 현상황 속에서 가장 에이스라 생각되는 인물들에게 조커와 왕이라는 중책을 맡겼고, 그들은 실제로 유재석의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해냈다. 그는 전체적인 판을 기획하고 거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들을 배치할 뿐만 아니라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최선의 수를 생각해서 실천하는 능력을 보였다. 즉각적인 명령을 내리기보다는 이해력이 부족한 멤버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며 설득하는 모습은 그 광경을 지켜보던 곽도원마저 감탄할 정도였다.

 

      눈에 흰자가 보일 정도로 링가링가 게임에 심취했던 황정민은 뛰어난 체력으로 광희를 뒤쫓으며 추격전의 긴장감을 높였고, 유재석과 끊임없이 전화통화를 시도하며 예능적 재미를 주었다. 다만 정만식이 지적한 것처럼 순간이동과 같은 복고풍 예능취향은 그의 천진난만함과 '아재스러움'을 동시에 보여주는 대목이다.

 

      예능을 느와르 장르로 탈바꿈시킨 것은 오로지 정우성의 덕택이다. 달라진 눈빛과 표정으로 차 위로 뛰어올라 차창을 위협적으로 두드리는 그의 몸짓은 액션 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광경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의 비현실적 외모는 일상적 공간마저 영화 속 풍경으로 변화시키는 마법을 부렸다. 그와 함께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박명수가 무심결에 조커의 정체를 발설한 것은 어쩌면 정우성을 비현실적 존재로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박명수가 착각한 정우성의 또다른 모습은 게임에 몰입한 채 땀까지 뻘뻘 흘리며 쇼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장난꾸러기 같은 그의 면모다.

 

 

 

 

      배우들과의 추격전은 그들의 천진난만함과 의외성을 여실히 드러내며 오락적 재미를 만들어 냈는데, 그 중 가장 돋보이는 역할을 한 사람은 곽도원이다. 포로로 붙잡힌 그는 리액션이 좋은 '열혈 시청자'로 돌변해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며 촬영 자체를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곽도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영화 배우들은 무한도전에 대한 상당한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 그들이 오래전부터 무한도전을 시청해왔음을 짐작케 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영화를 홍보하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생각을 잊고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어 흥분되고 신이 난 모습을 보였다. 특히 곽도원은 꾸밈없이 순박한 말투와 유머러스한 태도로 팬심을 드러내 포로였음에도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할 수 있었다.

 


무한도전 특유의 자막은 어디로 갔을까

 

      곽도원은 쇼에 출연한 게스트이자 동시에 바깥에서 쇼를 지켜보는 시청자의 역할을 자처해 적지않은 웃음을 주었다. 예전 무한도전에서 곽도원의 역할을 하던 것이 바로 무한도전 특유의 자막이었다. 특히 시청자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자 김태호 피디의 견해가 반영된 궁서체 자막은 희극적 상황 자체를 다시 상대화함으로써 복합적인 웃음을 유발했다. 그리고 광고, 영화, 드라마는 물론 웹문화로부터 차용된 다양한 패러디 자막들은 젊은 세대들이 무한도전에 열광토록 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런 세련되고 재치있는 자막들은 요즘 무한도전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그 대신 무한도전에서 조연출을 했던 피디들이 제작하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 주 방송에서 자신의 외모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정우성에게 '새롭고 짜릿한 잘 생김'이란 자막이 짧게 붙었었는데, 이것은 인터넷에서 크게 회자되었던 그의 인터뷰에서 나온 것으로 전혀 '새롭고 짜릿하지' 못한 자막의 사용이었다. 이번 방송에서는 애니메이션 '올림포스 가디언'을 활용해 게임 방식을 설명하는 영상을 제작했는데, 이것 역시 이미 'SNL코리아'에서 권혁수가 그리고 추석 특집 방송 '상상극장 우.설.리'가 보여준 것이다.

 

      화면 구성이나 편집 역시 예전과는 달라졌다. 초창기 무한도전의 화면은 다양한 각도에 촬영된 장면들이 퍼즐조각처럼 이어붙여져 끊임없이 움직이며 속도감 있는 화면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CG나 배경음악을 활용한 재치있는 화면 구성과 장면 연출이 덧붙여져 더욱 몰입감있는 감각적 장면들이 산출됐다. 하지만 늘어난 방영 시간으로 인해 이런 장면들은 점차 사라지고 최근의 무한도전은 무거운 느낌마저 들게 할 정도로 정적인 화면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방송만 하더라도 정우성이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연기를 했음에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연출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박명수가 무심결에 조커의 정체를 누설하는 장면 역시 조금은 밋밋하게 연출되서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다.

 

      정형돈, 노홍철, 길의 탈퇴, 박명수와 정준하의 노쇠 현상, 광희의 부진 등 인력 문제에 가려 그간 무한도전의 연출과 제작 방식에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11년 간 500회나 방송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뜻깊은 일이나 앞으로 1,000회를 목표로 한다면 현재의 영광에 취해 있기만 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다시 새롭게 뛰기 위해 신발끈을 고쳐매야 할 때다.

 


우리는 무한도전에 살고 있다.

 

      500회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유재석은 무한도전은 멤버들에게 인생의 한 부분이며 자신들은 무한도전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호 피디와 더불어 무한도전의 창조자이자 무한도전의 심장이기도 한 유재석의 그 말은 다시 고쳐 쓸 필요가 있다. 무한도전의 출연자이자 제작자인 당신들 뿐만 아니라 시청자인 우리도 무한도전에 살고 있다고.

 

      11년 간 무한도전을 시청하며 그들이 웃을 때 함께 웃고, 그들이 눈물을 흘릴 때 함께 울었던 시청자들 역시 토요일 오후만 되면 약속 시간마저 미룬 채 그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다. 이제는 하나의 삶이 되어 버려 재미가 있든 없든 무한도전을 시청하게 된다는 그들 역시 무한도전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무한도전 제작진과 시청자들이 함께 고민해 봐야 할 순간이 도래한 것 같다. 매주 빠듯하게 제작해서 한주한주 방송을 내보내는 것이 과연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이 앞으로 10년을 더 지속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방송국 입장에서 최고의 화제성과 수익율을 보장하는 프로그램을 순순히 놓아줄 리는 없다. 매주 무한도전을 시청하고 싶어하는 시청자들 역시 그들을 쉽게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송사나 시청자 모두 자신들의 욕심으로 무한도전의 수명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차 선언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노홍철과 길이 무한도전에 다시 복귀할 가망은 현재로서는 전혀 없어 보인다. 또한 유재석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의 일부로 여겼던 무한도전을 심리적 문제로 하차할 수밖에 없었던 정형돈의 경우는 어떠한가. 40대 후반을 바라보는 박명수와 정준하의 신체적 노화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고, 비교적 체력 관리를 잘 한 유재석 역시 벌써 40대 중반이다.

 

      김태호 피디가 아무리 뛰어난 연출자라고 할지라도 제대로 된 휴가 한 번 없이 벌써 11년째 무한도전을 연출 중이다. 그의 창조성이 언제 고갈될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다. 게다가 그가 아무리 창조적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적 재정적 한계는 늘 그의 발목을 잡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2008년부터 TV 플랫폼을 벗어나 영화, 인터넷 등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지만 시즌제가 해결되지 않아 다른 아이템을 해결할 수 없었다"고 밝힌 적도 있다.

 

      현재 방송 환경은 미디어의 발달과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급변하고 있다. 수많은 능력있는 연출자들이 방송국에 사표를 제출하고 제작 환경이 더 좋은 종편이나 중국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김태호 피디의 라이벌로 불리는 나영석 피디는 시즌제 예능을 정착시켰을 뿐만 아니라 TV 플랫폼을 벗어난 모바일 예능을 선보이기도 했다. 제작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 한 김태호 피디의 천재성도 그리고 무한도전의 운명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곧 사라질 지 모른다.

 

      따라서 앞으로 무한도전 500회를 넘어 1,000회 이상 방송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남을 지의 여부는 시즌제 도입이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의 욕심을 채우는 데 만족할 지, 아니면 긴 안목으로 미래의 지속 가능성에 투자할 지의 여부가 무한도전과 우리의 삶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무한도전과 우리는 현재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 위에 서 있다.

 

 


by ddola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