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20회

ddolappa 2016. 10. 12. 08:13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20회
- 빨리 친해지길 바래 1탄, 초등학교 특집 1탄(060923)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등장


      '아이스 원정대' 편에서 서로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롤링 페이퍼를 통해 정형돈과 하하가 어색한 사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그 둘이 친해지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에피소드가 이번 특집이다. '빨리 친해지길 바래' 특집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로서 무한도전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초창기 무한도전에서 가장 중요한 에피소드이다.

      '무(모)한 도전', '무(리)한 도전'을 거쳐 시즌3에 해당하는 무한도전이 시작되었지만 아직 쇼의 정체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번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자막은 무한도전을 '리얼리티 버라이어티 쇼'이자 '연예 오락 프로그램의 3D'로 소개하지만, 다소 혼란스러운 명칭처럼 그것이 지향하는 쇼의 세계가 무엇인지 정확히 밝히지는 못했다. 기존 버라이어티 쇼에 과장된 캐릭터들이 추가된 정도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무한도전은 현실과 오락의 경계를 허무는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탄생시키게 된다. 몰래 카메라를 통해 정형돈과 하하가 쇼의 세계에서와는 달리 실제로는 그렇게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그렇게 확인된 현실의 관계는 다시 쇼 오락의 소재로 사용됨으로써 무한도전의 세계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선 어딘가에 위치하게 된다. 그 결과 기존의 버라이어티 쇼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리얼리티 쇼도 아닌 과도기적 형태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탄생하게 된다.

      기존 오락 프로그램은 그것이 아무리 리얼한 느낌을 주더라도 결국은 각본에 의해 짜여진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하고 만다. 그래서 '강호동의 천생연분'이나 <일요일이 좋다>의 'X맨'에서 출연자들이 노골적으로 연인 관계라고 주장하더라도 가벼운 농담 정도로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몰래 카메라 형식을 차용한 수많은 오락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쇼 바깥 세계의 현실을 다시 쇼의 세계로 끌어들여 자신의 세계를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삼은 경우는 없었다. 무한도전은 현실 세계와 쇼의 세계를 연동시킴으로써 기존의 오락 프로그램에서 느낄 수 없었던 보다 리얼한 오락적 재미를 발견하는 한편, 생명체처럼 쇼의 세계관을 점차 진화시켜 나가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무한도전이 '리얼 버라이어티 쇼'로 진화하는 과정이 갑작스럽거나 억지스럽지 않은 까닭은 그것이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을 거치며 그들의 진화를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한 정서적 및 논리적 토대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야외에서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거나 지하철과 100m 달리기 대결을 펼치던 시기는 비록 황당한 도전이긴 하나 웃음을 위한 그들의 노력만큼은 리얼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실내에서 '아하 게임'을 하던 시기는 설문조사를 통해 멤버들의 실제 모습과 프로그램 안에서의 캐릭터를 섞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시즌3에 해당하는 무한도전에서 '리얼 버라이어티 쇼'로 진화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졌다.


캐릭터의 중요성


      무한도전이 '리얼 버라이어티 쇼'로 진화할 수 있는 결정적 근거는 멤버들의 캐릭터에 있다. 실제 성격에 바탕을 두고 창조된 그들의 캐릭터는 현실과 허구를 이어주는 거멀못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무한도전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이자 '캐릭터화된 쇼'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은 초등학교 시절을 배경으로 한 상황극인 '초등학교 특집'에서도 확인된다. 멤버들이 등장할 때마다 자막을 통해 '닭집 큰 아들', '반장', '양조장 4대 독자', '뉘 집 애더라?', 'U.F.O 소년', '잘생긴 전학생' 등의 캐릭터가 소개된다.

      설정된 캐릭터는 촬영 현장에서의 반응에 따라 곧바로 수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파마 머리를 한 채 아기 인형을 업고 있는 정준하를 다른 멤버들이 '아줌마'라고 놀리자 그는 곧 '준하 아줌마'가 된다. 그리고 그 곁에 있던 박명수를 '아버지'라고 부르자 그들은 곧 부부관계로 묶이게 된다. 정준하와 박명수는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받은 동시에 부부 역할로 상황극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아이스 원정대' 촬영시 채무 관계가 발생하게 되고 이를 두고 말다툼을 벌이다가 '하와 수' 커플을 탄생시키게 된다.





      무한도전 멤버들의 캐릭터는 그들의 실제 성격, 실생활에서의 에피소드, 상황극 속의 주어진 역할, 다른 멤버들에 의한 명명 등 다양한 계기로 탄생하지만, 무엇보다 자막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급훈과 관련된 토크를 하며 박명수가 홍익인간에 대해 말하자 '홍익인간 .... 뜻은 아시려나?'라는 자막이 등장한다. 또한 하하가 "진짜 학교 다녔나봐."라며 말하자 '희한한 졸업 증명'이란 자막이 등장해 박명수의 무식함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자막이 리얼한 웃음으로 수용될 수 있는 건 그 전에 공개된 박명수의 학창시절 생활기록부에 대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허구적 형식은 리얼함을 포착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상황극 속에서 받아쓰기 시험을 보는 것은 각본이지만 출연자들이 획득한 점수는 리얼한 것이다. 그래서 박명수가 받아쓰기 10점을 받은 것보다 하하가 20점을 획득한 것이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여져 다른 멤버들의 놀림감이 되는 까닭은, 소위 '가방끈'이 짧은 박명수와 달리 하하는 현실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이야기는 '강변북로가요제'에서 하하가 부른 '키작은 꼬마 이야기'의 가사로 다시 등장하게 된다.

      정준하의 영입 이후 '뚱보' 캐릭터를 빼앗긴 정형돈은 그후 이렇다할 캐릭터 없이 지내다가 이 에피소드에서 하하로부터 그의 예능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캐릭터를 부여받게 된다. 정형돈과의 어색한 관계가 불편했던 하하는 그를 향해 누구나 어색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농담을 하게 된다. 정형돈은 그후 이렇게 해서 탄생한 '어색한 뚱보' 캐릭터와 수 년간 '친해지길 바래'를 찍게 된다.



새로운 오락 텍스트의 등장


      무한도전은 세련된 자막과 감각적 편집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오락 문법을 만들어냈다. '아홉살 인생 무한도전', '추억은 방울방울'과 같은 인용은 무한도전의 텍스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고, 정형돈과 하하가 어색한 인사를 나눌 때 등장한 '무슨 상견례 자리도 아니고' 같은 자막이나 정준하가 과도하게 귀여운 척을 할 때 등장한 '이런 건 정부에서 단속해야 되는데'와 같은 자막은 관찰자의 시점에서 장면을 상대화하면서도 세련된 유머 감각을 발휘해 독특한 질감의 웃음을 유발했다.

      멤버들의 개그 감각과 서로의 합도 좋았지만 그것을 보다 맛깔스럽게 살리면서 보다 다층적인 코미디 텍스트를 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자막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무한도전은 독특한 스타일의 자막을 창조함으로써 한순간 웃고 사라지는 웃음이 아닌 반복적으로 읽을 수 있는 복합적인 오락 텍스트를 만들어냈다. 이제는 출연자들의 말과 행동 뿐만 아니라 자막까지 함께 읽어야 그 장면에 담긴 유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한도전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처음으로 출연자들 개개인을 전담하는 카메라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그 결과 각각의 인물들을 촬영한 장면들을 이어붙인 화면은 보다 입체적이고 감각적인 편집의 속도감을 전달했다. 풀샷은 오프닝 장면에서만 사용될 뿐 대부분은 출연자들의 미디엄샷이나 클로즈업샷을 연결해 대화적 상황을 연출했다. 그리고 몇몇 출연자들 간의 상황극이 만들어지면 스틸샷으로 마무리하고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는 연출을 통해 수많은 작은 콩트들을 구분해서 인식하도록 했다.

      가령, '초등학교' 특집에서 받아쓰기 시험을 보고 성적을 발표하기까지 정준하의 귀여운 척, 박명수의 부정의혹, 급훈과 관련된 토크 등 수많은 상황들이 쉴새없이 일어난다. 각각의 상황은 관련된 인물들의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편집함으로써 개개인의 캐릭터와 성격이 더욱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그로 인해 시청자는 그 상황을 캐릭터와 캐릭터의 충돌로 받아들이게 된다. 따라서 무한도전이 '캐릭터 쇼'로 불리게 된 데는 출연자들의 역량 뿐만 아니라 자막과 편집이 중요하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무한도전과 아이돌 그룹


      흔히 '리얼 버라이어티 쇼'로서 무한도전의 파급력을 '1박2일', '라인업', '무한걸스' 등 이후 생겨난 유사 프로그램과 연관시켜 논의되곤 한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영향력은 그보다 더 확대시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아이돌 그룹의 활동 방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최근의 아이돌 그룹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 과정이 공개되며 팬덤이 형성되고, 본격적인 활동 전후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찍으며 멤버들 개인의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멤버들 간의 라인이 형성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들은 다시 팬들에 의해 재편집되고 자막화 작업까지 덧붙여져 2차 가공물로 재탄생된다. 특히 팬에 의해 가공된 2차 영상물들에서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을 캐릭터화하고 그들 간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무한도전의 작업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심지어 예능감이 부족한 멤버를 '노잼 캐릭터'로 캐릭터화하는 것은 정형돈의 캐릭터로부터 차용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무한도전의 작업 스타일이 아이돌 그룹의 활동방식과 소비패턴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무한도전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팬덤을 거느린 '최고령 아이돌'이라 불리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by ddola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