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21회
- 빨리 친해지길 바래 2탄, 초등학교 특집 2탄(060930)
예능화된 '리얼', 리얼화된 '예능'
유재석은 다른 촬영장에서는 제작진이 도시락을 준비하지만 무한도전에서는 출연자들이 직접 도시락을 준비해 온다고 말한다. 각자의 도시락이 소개되면서 김치 3종 세트를 준비해온 정형돈의 고단한 노총각 생활이 드러나고, 노홍철의 어머니가 대신 마련해준 도시락을 꺼내며 하하는 자기 어머니의 부족한 요리 실력을 폭로한다.
이 맥락에서 무한도전이 말하는 '리얼'이란 촬영장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멤버들의 사생활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무한도전은 멤버들 각자의 사생활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예능의 형식으로 가공한다는 점에서 '리얼 버라이티 쇼'가 된다. 그래서 멤버들의 연애, 키와 몸무게 같은 신체적 비밀, 그들의 주거공간 등은 방송에서 낱낱이 공개되고 웃음의 소재로 사용된다. 그런 점에서 '리얼'에 대한 초기 무한도전의 탐구 정신은 멤버 개인에 대한 탐사에 국한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고 그들에 대한 친밀도를 높이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던 '리얼'에 대한 탐구는 점차 시간이 흐르며 무한도전이라는 쇼와 그곳에 출연하는 멤버들의 인생이 뒤섞여 구분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즉 인생은 연극이 되고, 연극은 인생이 된다.
하지만 그 첫 시작은 매우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 가령, 노홍철은 왜 신발만 신으면 몰라보게 커지는가, 하하의 어머니는 정말 요리를 못할까, 구차해 보이는 정형돈의 총각생활은 실제로 어떨까 등과 같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하는 문제들에서 출발했다. '형돈아 놀자', '빨간 하이힐의 진실', '형돈아 이사 가자' 등이 이러한 초기 경향을 대표하는 특집들이다.
이번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박명수의 연예 기사화 사건은 무한도전이 개인의 사생활에서 포착한 리얼을 어떻게 예능의 소재로 사용하는가를 보여준다. 박명수는 그 이전에도 틈만 나면 여자친구에 대한 발언을 했고 이번에는 "넘지 못할 '산'을 넘었습니다!"고 과감히 말했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하하가 박명수의 여자친구에 대한 집착을 폭로하며 열애설이 기사화되었고, 무한도전은 그 장면이 기사화된 문제적 장면이라며 친절히 자막화해서 가르쳐주었다. 출연자들의 입을 통해 폭로된 사실이 기사화되면, 제작진은 이것을 다시 인용하는 방식으로 바깥 세계와 쇼의 세계를 연동시킨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멤버들의 캐릭터를 다듬는 작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마니아를 위한 예능 프로그램의 탄생
뉴질랜드로의 촬영 당시 정준하는 박명수로부터 돈을 빌리게 되고 이것을 빌미로 둘 사이에는 언쟁이 일어나게 된다. 채무관계로 얽힌 정준하와 박명수는 삿대질과 고함을 주고받으며 점차 갈등의 수위를 높여가게 되고 정형돈과 하하의 데이트를 중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급기야 촬영을 중단하고 바깥으로 나가서 간신히 화해를 한 후 복귀하는 그들에게 자막은 '오해 풀고 입장하는 부부'에 비유한다. 이미 정준하와 박명수는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의 관계를 '부부'에 빗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장면은 전후 맥락을 모르더라도 그 자체로 흥미로울 수 있지만, 세부적 정보를 이미 가지고 있는 시청자에게 조금 더 '깨알같은' 재미를 줄 여지가 많다.
무한도전은 캐릭터를 만들 때나 에피소드를 제작할 때 이전 에피소드와의 연계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경향이 축적되고 강화될 수록 무한도전은 마니악한 예능 프로그램이 된다. 무한도전을 처음 시청하는 시청자는 정준하와 박명수가 왜 '어머니'와 '아버지'로 불리는 지, 그리고 유재석은 왜 '짜증'을 내고 정준하는 '억울'해 하는 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참고로 유재석의 '짜증' 캐릭터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 유독 캐릭터의 수가 적었던 유재석이 '국민MC'이자 '1인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다른 멤버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만들어졌던 캐릭터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은 어떤 편을 시청하더라도 동일한 포맷에 예상 가능한 수준의 재미를 주었다면, 일정한 형식이 없는 대신 연계성이 강조된 무한도전의 에피소드들은 단 한 편도 빼놓고 시청하기 어려운 예측불가능의 쇼였다. 예측 불가능한 포맷과 디테일한 연계성을 바탕으로 무한도전은 새로운 시청자층을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 모으는데, 그들은 '뷁'이란 인터넷 은어를 자막으로 쓰더라도 함께 웃을 수 있고, '우정시대',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 '서울의 중심에서 우정을 외치다' 등의 자막들이 무엇을 패러디한 것인 지 곧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대중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무한도전은 대중문화와 인터넷 서브문화에 익숙한 제작진이 비슷한 성향의 마니아들을 위해 제작된 최초의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다층적 예능 텍스트의 출현
정형돈과 하하는 여자 게스트와 1대 6의 데이트를 촬영하는 지 알고 둘만의 데이트에 초대된다. 정형돈이 자신의 이상형을 '긴 생머리'에 '160-162cm의 키'의 여성이라고 고백하면, '짧은 2:8 가르마'의 하하를 교차편집하고 키는 '얼추 비슷'하다는 자막을 넣어 웃음을 유발한다. 몰래 카메라 형식은 그들이 어색한 사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고, 이처럼 화해를 빙자해서 그들을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그들이 길거리에 떨어진 아카시아 가지를 주어 꽃점을 치는 장면은 연인의 헤어짐을 안타깝게 표현하는 뮤직비디오처럼 표현된다. 특히 정형돈과 하하의 어색한 데이트, 정준하와 박명수의 빚독촉 전쟁, 유재석과 노홍철의 정신없는 중계석이 3원 중계 되는 장면은 뛰어난 편집 능력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이처럼 무한도전은 포맷 뿐만 아니라 영상 구성과 편집 방식 역시 변화무쌍하다. 각각의 장면들은 해당 장면에 걸맞는 새로운 영상 언어로 재해석되기 때문에 혼란스럽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게다가 정형돈이 몸무게 측정을 거부하자 '형돈아 .... 얼마 안 있으면 개편이다'라는 자막을 통해 바깥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는 피디의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는 장면처럼 수시로 출현하는 자막들은 따라가기조차 벅찰 정도다. 하지만 그로 인해 무한도전은 종래 볼 수 없었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예능 텍스트를 만들어내게 된다. 이제 예능 프로그램은 한번의 시청으로 웃고 마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시청하고 음미해야 되는 텍스트가 된 것이다.
이 모든 사실들을 종합하면, 초창기 무한도전은 마니악한 제작진이 마니아들을 위해 제작한 마니악한 예능 프로그램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무한도전 팬덤의 높은 충성도를 설명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무한도전이 성장을 하면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문제의 씨앗이 내포되어 있다. 만일 무한도전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라이트한 성향의 팬들이 유입될 경우 제작진은 보다 대중성을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마니아적 성향을 유지할 것인가. 그후 무한도전의 제작진이 어떤 전략을 취해왔는 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과제일 것이다.
by ddol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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