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03회

ddolappa 2016. 10. 23. 16:39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03회
- 우린 자연인이다, 그래비티 1탄(161022)




자연인의 삶에서 미지의 우주까지


      종합편성채널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를 패러디한 '우린 자연인이다'에서처럼 인적이 드문 산으로 들어가 자연에서 먹거리를 채취하고 손수 땔깜을 마련하면서 사는 자연인의 삶을 살아볼 수도 있다. 또 영화 <그래비티>를 패러디한 '그래비티' 특집에서처럼 우주 여행을 대비해서 쥐덫용 끈끈이를 우주 식육식물의 끈끈이 덫이라 생각하며 암흑 적응 훈련을 할 수도 있다.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영역들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다룬 이번 특집은 무한도전이 도전할 수 있는 범위가 자연인의 삶에서 미지의 우주까지 폭넓은 것임을 시위하듯 전시한다. 살아보지 않은 삶, 가보지 않은 미지의 땅이라면 체험의 경중을 떠나 언제든 무한도전의 도전 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자연인을 찾아서


      지난 2012년에 첫 방송을 시작한 <나는 자연인이다>는 2016년 9월 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중 8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인기 프로그램이다. 특히 50대 남성들 사이에서 선호도 11%의 압도적 시청률을 자랑한다. 그들이 동경하는 자연인의 삶은 '귀농'이나 '귀촌'과 달리 농사를 지어 고정 수입을 얻겠다는 목표가 없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흔히 도사, 괴짜, 할배, (노)총각, 상남자 등으로 불리는 자연인은  대부분 사업 실패, 이혼, 질병 등으로 인한 인생의 큰 고비를 겪었고, 자연으로부터 치유받는 삶을 찾아 도시를 떠난 사람들이다.


      무한도전의 패러디는 자연인의 삶을 희화화하는 대신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멤버들 중 가장 강한 물욕을 보였던 박명수는 '애 학교 보내고 생활비 하려고' 억지로 자연인을 연기하지만 불쑥불쑥 노출되는 세속적 욕망은 자연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행운의 편지'로 인해 박명수의 '머슴'이 된 '해수' 장준하는 '명수세끼'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을 전담하며 자급자족으로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일조차 결코 녹록치 않은 것임을 몸소 체험했다. 결국 그들의 일일 자연인 체험은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문화가 우리 대신 그러한 노동을 전담하는 사람들의 희생과 봉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이 에피소드의 두 주역인 박명수와 정준하는 무한도전이 언제든 믿고 꺼내 쓸 수 있는 카드임을 또 한 번 증명했다. '잠시도 못 쉬는 머슴의 삶'을 산 정준하와 그의 희생으로 '여유로운 자연인의 삶'을 산 박명수는 끊임없이 티격태격하지만 늘상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을 보이며 이어지는 상황극에서도 베테랑 희극인들다운 관록을 보여주었다. 태백산맥에서 호랑이를 쫓다가 어느덧 그 자리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박명수의 원래 직업은 놀랍게도 '어부'였다. 최규하 대통령 시절부터 산속에 들어와 '머슴' 생활을 시작했다는 '노총각' 정준하는 뜻밖에도 4대 보험 가입은 물론 월 600만원의 고소득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한 끼를 해결하는 곧바로 다음 끼니를 걱정하는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고, 또 그 안에서 오락적 재미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런 삶을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견해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반문명적 삶에 대한 동경이 우리 사회의 경제를 책임지는 주축이라 할 50대에서 열광적으로 넘쳐나고, 또 자연인의 삶을 흥미로운 기인으로 취급해 가벼운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방송문화는 반성해볼 여지가 있다. 그것은 혹시 타인의 불행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악취미의 반영이거나, 현재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고 망각하게 만드는 마취제로 기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열정이 고생으로 보이지 않도록


      무한도전 3회 '우주 특집'에서 '꼴뚜기별 왕자' 박명수는 모형 우주선의 문을 제대로 열지 못하는 어수룩한 모습을 보여 큰 웃음을 주었다. 외계인으로 분장해서 서로의 외모를 놀리던 그들은 이제 진짜 우주인이 되기 위해 러시아로 훈련을 떠났다. 무한도전 마지막 회에서나 가능할 줄 알았던 우주여행이 11년만에 가능해진 것이다.


      혹자는 멤버들의 나이와 체력적 문제를 거론하며 꼭 가야 하는지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고, 또 혹자는 우주여행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며 불안감과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김태호 피디는 "이번 러시아행은 '강력한 훈련'의 개념이라기 보다 무중력을 체험하고, 우주정거장 실물 모험에서 마음도 다잡아보고, 실제 우주복도 입어보며, 게임도 즐겨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인터뷰도 했지만 불안한 여론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우주여행의 서막이라 할 '그래비티' 1탄은 바로 그러한 여론을 겨냥한 무한도전의 답변이다. 실제 나사에서 우주인들을 상대로 진행하는 암흑적응훈련을 예능의 어법으로 재해석한 모의훈련은 무한도전의 열정을 고생으로 보이지 않기 위한 장치이다. 회전의자는 암흑행성에 불시착한 우주선이고, 쥐 잡이용 끈끈이 덫은 '찐득이 괴물'이고, 계단은 행성의 가파른 단층지대라고 주장하는 제작진의 태도에는 시청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을 즐거운 마음으로 시청해주길 바라는 요청이 담겨 있다.


      시청자들의 기대와 우려 모두 무한도전을 향한 관심의 발로이겠지만, 지나친 관심과 걱정으로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뒤흔들거나 아직 방영조차 되지 않은 내용을 미리 재단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자연인의 삶이건 우주여행이건 모두 도전해야 할 미지의 탐구 영역일 뿐이라는 무한도전에게 약간의 존경심을 갖고 무사히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이 어쩌면 시청자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노동과 희생 덕택에 내가 편안한 일상을 누릴 수 있듯이 무한도전 멤버들과 제작진의 노고 덕택에 내가 해보지 못했던 낯선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by ddola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