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04회

ddolappa 2016. 10. 30. 09:41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04회
- 그래비티 2탄(161029)




새로운 경험을 찾아서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GCTC)에서 우주인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기 위해 러시아로 출국한 무한도전 멤버들은 붉은 광장에 도착해 화려하고 이국적인 경관에 압도당했다. 테트리스 게임을 떠올리는 성 바실리 성당 앞에서 흥분과 설렘,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그들의 표정은 이번 특집의 지향점을 압축해 보여준다. 그것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이다.





      과거 버스에서 오래 버티기를 하며 입었던 쫄쫄이 운동복을 이제는 무중력 체험을 하기 위해 입으며 격세지감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새로운 도전 앞에 중년의 시간을 거슬러 다시 혈기왕성한 청년이 된 것처럼 기분 좋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며 감격스러워 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이미 모든 것을 해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이 없다는 것이라면, 11년차 무한도전에게 우주여행 프로젝트는 노쇠해졌다는 세간의 의혹을 떨쳐버릴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어린 시절 상상을 현실로


      중력의 도움이 없이 위의 연동운동에만 의지해야 하는 우주에서의 식사가 "물구나무를 서서 식사하는 느낌"이라는 우주인들의 고백에 착안하여 그들은 실제로 물구나무를 선 채로 식사를 해보기도 했다. 불과 얼마전 롤러코스트에서의 음식물 섭취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이번의 경우는 다르게 평가해야 할 것 같다. 앞의 경우는 이미 했던 경험의 재탕이었지만, 이번 경우는 명분도 분명하고 무엇보다 참여하는 멤버들이 억지스런 웃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름 진지한 태도로 훈련에 임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된 것은 특수 헬륨 풍선으로 무중력 적응 훈련을 하는 장면에서였다.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른다는 어린 시절의 상상은 영화 <업>에서처럼 허구의 세계에서나 가능할 법했다. 하지만 수백개의 풍선을 타고 거대한 운동장의 지붕 높이로 떠오른 초현실적 장면은 훈련에 참여한 사람이나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 모두에게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100Kg이 넘는 거구의 정준하를 부실한 체력의 광희가 한 손으로 치켜든 장면이나, 풍선에 메달려 공중으로 떠오른 박명수가 공포에 못 이겨 내뱉은 욕설이 새떼로 표현된 장면 등은 그러한 경험에서 얻을 수 있었던 부가적 장면들이다.



어떤 우주를 선택할 것인가


      이번 특집에서 특히 반가웠던 것은 재기발랄한 무한도전의 자막이 다시 돌아왔다는 점이다. 박명수가 김태호 피디를 영화 <혹성탈출>의 원숭이 같다고 놀리자 김태호 피디는 "지는?" 이라며 응수한다. 이 광경을 지켜본 다른 멤버들은 박장대소하지만 정작 들었어야 할 박명수는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그래서 "끝까지 모르쇠인 불통왕"이란 자막으로 다시 한 번 그를 비꼬았다. 하하가 급히 배운 러시아어로 박명수에게 "빠까 명수 시바야"(안녕 명수 아름다워)라고 하자 "욕 같은 칭찬"이란 자막을 통해 러시아어와 욕설의 경계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묘미를 보여주었다.


      무한도전 특유의 자막은 프로그램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만큼 특유의 웃음 코드를 발생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출연자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1차적인 웃음이 생겨난다면, 자막은 그것을 2차적으로 가공을 해 새로운 유머의 층위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통왕', '예지몽', '온 우주의 기운', '오방색 풍선' 등은 현실 정치 상황을 환기하며 해당 장면을 풍자와 해학의 차원으로 이동시킨다.





      사람이 풍선을 타고 공중으로 날아오른 장면이 초현실적이라면, 현대 사회의 선출직 공무원인 대통령이 주술과 무속의 힘을 빌어 국정 운영을 하는 광경 역시 초현실적이다.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가 버리고 도망갔다는 태블릿 PC에서 발견된 오방낭이란 파일명은 대통령 취임식 당시 우주의 기운을 상징하는 부적 '오방낭 복주머니' 퍼포먼스와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수공예가들은 행사에 등장한 오방낭의 색 위치가 틀렸으며 색상의 위치가 틀린 오방낭은 상생이 아닌 상극을 뜻하게 돼서 오히려 좋지 않은 의미가 될 수 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된 과거로의 역주행은 군사 독재 시대를 거쳐 이제는 제정일치의 시대에까지 다다른 느낌이다.


      무한도전이 우주로 시선을 돌리며 미래를 향할 때, 우리의 정부는 '혼'과 '기'로 가득찬 주술적 '우주'를 향해 머리를 조아린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또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도 했는데 몸소 그 사례를 실천하는 모범을 보이고 계시다. 벌거벗은 임금을 비웃지 못한다면, 그 상황이야말로 웃기는 상황이 아닐까.







      작금의 개탄스런 현실의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역사의 시간은 일방적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지만은  않으며, 비전이 없는 위정자들과 그들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소홀히 한 국민들은 다 함께 퇴행을 거듭하다가 역사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교훈이야말로 현 정권이 남긴 유일한 업적처럼 보인다.


      이 지점에서 무한도전은 풍자를 넘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이 선택한 우주는 어떤 것이냐고. 어쩌면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열어줄 지도 모를 우리 바깥의 미지의 세계인가, 이니면 '혼'과 '기운'으로 가득찬 주술의 세계인가.






by ddola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