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06회

ddolappa 2016. 11. 13. 07:05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06회
- 위대한 유산 특집 1탄(161112)





풍자와 비판의 품격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을 패러디하거나 풍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풍자는 아쉽게도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한 채 최순실을 시종일관 예의가 없고 자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극성스런 '아줌마'로 그려내는데 머물렀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수준밖에 안되는, 자격도 권한도 없는 여인에게 국정 운영의 조언을 구하고 그에 따라 중요한 정책을 실무진과의 상의도 없이 결정한 박근혜 대통령에 있는 것이 아닐까. 정작 희화되어야 할 대상은 최순실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하하가 평소 친밀한 관계인 개코를 지나치게 밀어주자 유재석이 그만 띄워주라며 제지한 장면에서 무한도전은 자막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눈물 나는 우정을 '이런 친구는 버리는 게 상책'이라며 풍자한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무한도전의 풍자 수준을 엿볼 수 있다.







     무한도전은 작금의 현실에 대해 직접적으로 발화하는 대신 역사라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역사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렇게 발견된 내용을 최신 트렌드 음악인 힙합 비트에 실어 역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겠다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다. 심지어 천년 전에 기록된 <청산별곡>이 현재의 국어 교과서에 실린 것처럼 먼 미래의 국어 교과서에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싣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 결과 무한도전은 위태로운 현재를 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살펴볼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하는 한편, 보다 날카로운 비판적 의식을 드러낼 수 있었다. 고려가 망한 징조로 언급된 '기득권의 부정부패', '백성수탈', '사치와 향락' 등은 역사를 경유해 진단된 현재의 문제점들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당시 기득권층이 가졌던 '우월의식과 부패' '백성을 개, 돼지 따위의 짐승 취급'하는 태도 역시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모습들이다. 임진왜란을 언급하며 '기득권 세력의 무능과 방만이 백성들의 힘든 삶'으로 이어지게 했다는 분석은 현재의 위기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즉 무한도전의 시각에 따르면, 현재 국민들의 삶을 궁핍하고 곤란하게 만드는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이나 최순실 개인에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되어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유지되는 유일한 정책적 일관성은 사회적 시스템을 기득권층에 유리하게 작동하도록 바꾸어놓았다는 점에 있다. 국민들에게 공정하게 분배 및 재분배되어야 할 부가 기득권층에게 더 많이 할당되도록 사회적 체계를 무리하게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의 감시 기능을 담당한 검찰과 언론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기득권의 권익을 수호하는 하녀로 전락한 감시 기관들은 사회적 위기의 징후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왜곡함으로써 더 큰 위기를 불러왔다. 천안함 사건, 메르스 사태, 세월호 사건 등은 비판 기능을 상실한 사회가 맞이하게 된 대표적인 비극들이며, 이번 박근혜-최순실 스캔들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대한민국에선 노력하면 가능하다'는 믿음을 상실한 사회에 살게 되었다. 흙수저-금수저 논란은 현재의 우리 사회가 골품제도를 통해 사회를 통제하던 신라 시대와 마찬가지로 '차별이 당연시된 폐쇄적 사회'라는 사실을 슬프게 증명할 뿐이다.



놀라운 기획력과 넓은 시각


     개코, 딘딘, 도끼, 비와이, 송민호, 지코 등 요즘 힙합신에서 가장 핫하다는 랩퍼들을 모으고, 스타 역사 강사인 설민석을 초대해 그들에게 역사 교육을 받게한 뒤 예술적 영감을 얻어 그것을 랩으로 만들게 한다는 발상이나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획력은 거의 무한도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역사와 랩의 조합이 다소 뜬금없이 보일 수도 있지만, 무한도전은 사회 부조리와 기득권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아마도 공통 분모를 발견한 것 같다. 임진왜란의 혼란이 사회 비판적인 '위항문학'을 산출했고, 탈놀이와 고려가요가 기득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았듯이 슬램가의 흑인들에게서 시작된 랩 역시 사회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담는 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라는 우회로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더욱 신랄한 비판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시각에서 현재의 문제점을 진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기득권층이 문제다 라고 말하는 것과 기득권의 부정부패로 신라가 망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이 이번 특집은 바로 그 차이의 묘미에서 오락적 재미가 산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서 역사


     하지만 설민석의 강의 내용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태도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신라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삼국통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화랑도'라는 뛰어난 교육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교육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나치게 단순화된 그의 설명은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다.

     또한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독립운동가 나철의 <대종교>로 이어지는 단군 신화에서 민족정신의 뿌리와 자주의식의 근거를 찾는 설명은 단일 민족의 신화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국사'에서 '한국사'로 명칭이 바뀐 최근의 역사 경향으로부터 거리를 둔 것이다. 그리고 팔만 대장경은 분명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긴 하나 종교의 힘을 빌어 난세를 극복하겠다는 자세가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선뜻 와닿지는 않는다. 우리도 '우주의 기운'이 도울 수 있도록 '노오력'해야 한다는 말인가.








     설민석은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학자 E.H.카의 말을 인용하며 강의를 시작했지만, 그가 실제로 요약한 역사는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과정'으로 이해한 역사학자 A.토인비의 견해에 보다 가깝다. 토인비는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인간의 응전이 인간 사회의 문명과 역사를 발전시키는 바탕이 된다고 생각했다. 설민석의 경우 외세의 침입이나 기득권의 무능과 부패는 자연의 도전에 해당하고, 단군 신화, 팔만 대장경, 위항문학, 한글 등은 인간의 응전에 해당한다.

     하지만 마치 인과관계처럼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관계는 설명을 위한 단순화의 결과이며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단군 신화가 항일독립투쟁에 도움이 되었다고 해서 단군 신화 때문에 독립이 되었다거나 단군 신화만이 유일하게 독립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선조를 위시한 조선의 기득권 세력의 무능과 방만이 백성들을 힘들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의 침략에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곤란하다.

     설민석의 강의는 역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분명 유익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문제가 따른다. 현재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대안을 예상하는데 영감을 주는 하나의 지침정도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위기에 대한 진단 뿐만 아니라 인간의 대처 방식 역시 무한히 다양하기 때문이다. 설민석은 현재의 위기의 원인을 기득권층의 무능과 부패에서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볼 경우 또 다른 원인이 지목될 수도 있고 그에 따라 또 다른 해결책이 제시될 수도 있다.

     과연 뛰어난 랩퍼들이 그의 강의를 듣고 어떤 영감을 받았고, 또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랩에 담아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by ddolappa


 
뱀다리. KBS는 물론 민명방송인 SBS조차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광화문 촛불집회를 보도한 반면 공영방송 MBC는 그 시간에 평소처럼 무한도전을 방영했다. 무한도전을 시청할 수 있게 된 것을 좋아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항의해야 하는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정권의 충견으로 길들여진 MBC는 이제 '와치독'으로서의 사명을 완전히 포기한 것 같다. 더 이상 짖지 못하는 개가 복날에 어떤 운명을 당하는지 부디 기억하고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