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07회

ddolappa 2016. 11. 22. 03:42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07회
- 위대한 유산 2탄(161119)




'문화적 증거' 남기기


     무한도전은 위태로운 현재의 정치 상황을 직접적으로 풍자하는 대신 역사라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현재의 시선으로 재발견된 역사적 사실들은 우리의 현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나아가야 할 방향과 대안을 성찰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시사적 현재성을 잃지 않았다. 나아가 우리가 당면한 고통과 어려움은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겪어냈던 그것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고통받는 자들로서의 연대성을 느끼게 했다.

     다만 설민석의 강의는 지난 번에도 언급했듯이 혈연과 민족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협소한 민족중심주의로 경도될 위험이 있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단결'과 '근성'의 DNA가 있다는 그의 언급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사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론은 매우 단순하다. 그러한 속성이 우리 민족에게 있다면, 임진왜란 때 고통받는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를 비롯한 지배계층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란 말인가? 나아가 그의 주장은 소위 '국뽕'(국가+마약의 합성어)에 취하게 할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다.







     무한도전은 자막을 통해 설민석의 강의에 적절한 균형과 중심을 잡아주었다. "단결과 근성의 DNA"에 "만들어진"이란 자막을 달아놓음으로써 그것이 타고난 민족성으로부터 유래된 것이 아님을 밝혔다. 즉 우리 민족의 특성은 인종학적으로 타고난 생득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후생적으로 획득된 것이란 말이다. 역사적 경험을 함께 하고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우리의 공동체적 정체성이 형성된다는 사고는 열린 민족주의를 향해 문을 열어놓았다. 또한 "단체로 들이킨 애국심 한 사발"이나 "애국심 만취 상태"와 같은 자막을 통해 소위 '국뽕'에 거리는 두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이번 프로젝트가 단순히 애국심 고취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이번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영화를 제작한 이유를 '문화적 증거'를 남기는데 있다고 대답했다. 2016년 11월 19일 기준 위안부 생존자가 40 명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모진 수모를 당하다가 불태워진 그들의 육체적 현존을 그리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문화적 증거'를 남기는 행위가 곧 그의 영화 제작 활동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역사와 힙합의 만남인 이번 프로젝트는 현재의 시국을 우리의 문화 속에 기록하려는 시도이다. 무능과 부패로 대한민국 전체를 위태롭게 했을 뿐만 아니라 국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자리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한 박근혜 정부의 민낯을 똑똑히 기억하고 그것을 우리의 문화적 DNA 속에 기록하려는 노력의 일환이 바로 이번 프로젝트이다.


역사의 현재화 작업


     무한도전은 복화술을 통해 과거에서 현재를 떠오르게 한다. 일제에 대항해 자주와 평화를 외치던 삼일운동의 함성은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의 시위 소리로 오버랩된다. 서른이 넘도록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방황했던 이순신의 우울한 인생과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야 했던 식민지 청년 윤동주의 가슴앓이는 연애는 고사하고 미래의 꿈조차 잃어버린 채 현생에 쫓기듯 매달려야 하는 현시대의 청춘들을 연상시킨다.

     '밥이 백성의 하늘이다'는 통치철학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목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그들에게 문자를 만들어준 세종대왕의 경우는 또 어떤가. '훈민정음'에는 '백성의 소리를 새겨들음이 마땅하다'는 또 다른 뜻이 담겨 있다. 세습에 의해 왕권을 계승했지만 세종대왕은 백성이 세운 왕으로 어찌 백성의 억울함을 듣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에 반해 국민의 선택으로 임명된 5년직 계약 공무원인 대통령이 여론은 무시한 채 자신의 비리와 무능을 감추기 위해 변명과 거짓으로 일관하는 것은 이미 민주시민사회의 수장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독재자(dictator)의 어원 '혼자 말하는 사람'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수를 침묵시키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은 채 홀로 말하는 사람은 독재자일 뿐이다.







     무한도전이 역사를 배우기 위해 초대한 사람들이 설민석 강사 외에 드라마 <세종대왕>의 김영현과 박상연 작가,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 영화 <명량>의 전철용 작가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모두 역사를 소재로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했던 사람들로, 이번 특집에서 무한도전이 역사에 접근하는 방식을 잘 드러낸다. 역사의 드라마화나 영화화 작업은 그 시대가 현재의 삶에 가지는 현재성에 의해 선택이 결정된다. 역사적 사실 역시 현재적 관심과 문제의식에 따라 새롭게 조명되기도 하고 전혀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기도 한다. 곧 '문화적 증거'를 남기는 작업은 역사를 현재화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것은 역사와 힙합의 협업이 결코 동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처럼 단편적인 역사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역사에서 소재를 취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금 현재를 향한 발언이다.


역사로 우리 시대를 모자이크하다


     일제가 지배하는 식민지 현실을 유관순 열사는 '감옥'으로, 시인 윤동주는 '병원'으로 표상했다. 식민지배로부터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감옥 밖의 현실은 수감된 상태와 마찬가지였고, 꽃다운 청춘은 채 피기도 전에 이미 마음 속 깊이 병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무엇으로 표상될 수 있을까. '헬조선'이란 유행어가 지시하듯 우리는 지옥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한도전은 고조선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차용된 다양한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풍경을 그려낸다. 역사의 인용으로 재구성된 현재의 모습은 끊임없는 수난과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 안에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자유와 더 나은 세계에 대한 꿈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은 오늘날 새롭게 조명해야 할 통치철학이며, 안용복의 주인의식이나 이순신 장군의 용기 역시 작금의 현실과 맞서 싸울 희망의 무기다. 다시 말해 역사로 떠난 무한도전의 긴 여정은 체념하듯 받아들이게 된 가망없는 현실에서 힘겹게 희망의 싹을 발견하기 위한 도정이었던 것이다.

     어렵게 발견된 희망의 싹들이 어느새 가수들의 마음 속에 옮겨져 뿌리를 내리고, 그들의 노래를 통해 꽃을 피우고, 그 노래가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이어져 거대한 함성으로 변할 수만 있다면, 이 비참한 현실도 한뼘만큼 달라지지 않을까. 절망의 끝에 부르게 될 그 작은 노래의 꽃에 희망을 걸어본다.



by ddola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