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110회

ddolappa 2008. 6. 22. 11:59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24> 독창성의 패러디, 패러디의 독창성

 

 


무한도전 110회 080621 :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전편

 


형식실험 그 이상의 가치


6개의 돈가방. 그 중 하나만이 진짜 돈이 든 가방이다. 수단과 방법은 필요없다. 무슨 수를 쓰던 돈가방을 찾아라!


지난 주 예고했던 것처럼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편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볼 수 있었던 초특급 블록버스터급 에피소드였다. 시종일관 시선을 잡아끄는 박진감 넘치는 추격신,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배신과 음모, 누가 진짜 돈가방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호기심이 마치 한 편의 잘 짜여진 스릴러 영화를 감상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했다. 여기에 스피드한 편집, 역동적인 카메라의 움직임, 깔끔하게 처리된 흑백의 자막이 덧붙여져 예능 프로그램의 어설픈 영화 찍기 흉내가 아니라 진짜배기 스릴러 영화에 도전하는 듯한 야심마저 엿보였다.


혹자는 미션을 받고 목적지까지 선착순으로 도착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서울 구경 특집'이나 '경주 보물찾기 특집'과 무슨 차이가 있냐고 불평을 늘어놓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무한도전의 초심은 형식실험이다"라는 명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데서 생긴 오해일 뿐이다. '서울 구경 특집'은 시청자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그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기획된 특집이라면, '경주 보물찾기 특집'은 예능에 스릴러, 퀴즈, 여행 등 다양한 형식들을 접목시켜 잊혀져 가는 문화유산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기획된 특집이다.1) 그렇다면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편은?


김태호PD는 한 인터뷰에서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는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에서 캐릭터 콘셉트를 일부 차용하고 가이 리치 영화 '록 스탁 엔 투 스모킹 배럴즈' 처럼 캐릭터들이 서로 배신과 반목을 반복하며 얽히고 설키는 관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설명했다.2)


그러나 김태호PD의 저 인터뷰는 언급되지 않은 보다 많은 사실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트릭이다.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편은 첩보, 스릴러, 액션, 느와르, 슬랩스틱 코미디, 갱스터,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영화 장르들이 혼합되어 있고, 언급된 2편 이상의 영화들이 패러디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태호PD의 경우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라는 제목은 패러디되고 있는 수많은 영화들의 '독창성을 갖고 튀어라'로 다시 옮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기존의 영화들을 단순히 베끼기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장르 영화의 특성들을 무한도전식으로 교묘히 비틀어 새로운 독창성을 산출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형식실험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패러디, 패러디, 패러디


첫 오프닝은 무한도전의 다섯 멤버들과 초청 게스트 전진이 벌이는 긴박한 추격신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는 10분 전 대기실 상황을 비추며 그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설명된다. 이러한 편집방식은 이미 수많은 스릴러 영화가 보여준 것으로써 역동감 넘치는 추격 장면이나 끔찍한 범죄 장면을 처음에 배치해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고, 관객들에게 그가 혹은 그들이 왜 그럴 수 밖에 없는가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그와 아울러 무한도전은 개봉 예정인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캐릭터 콘셉트를 패러디해서 '좋은 놈'(유재석), '나쁜 놈'(박명수), '모자란 놈'(정준하), '어색한 놈'(정형돈), '이상한 놈'(노홍철), '굴러들어온 놈'(전진) 등의 캐릭터로 변형하고 있다.


'8시까지 MBC 로비에 놓인 테이블에 돈가방을 갖다 놓는 사람에게 금일봉 300만원을 하사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본부장의 영상 또한 영화 <007>의 패러디이다. 영화 <007> 제2탄 '위기일발'(1963)에서 처음 등장한 악의 조직 스펙터의 두목 에른스트 블로펠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고양이를 쓰다듬는 손과 음산한 목소리만 등장해서 신비로운 악당 역의 클리세(상투적 표현)를 제공했다. 만화영화 <형사 가제트>의 닥터 클로, 영화 <오스틴 파워>(1997)의 닥터 이블 역시 조직의 징표인 반지를 낀 손으로 고양이를 항상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적장 와키자카 야스히로가 고양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고양이의 동공의 변화를 통해서 시간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한 소품이었다고 하나 이 역시 영화적 클리세의 활용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장면이 영화 <007>의 패러디라는 결정적 단서는 알파벳을 코드명으로 사용했던 그 영화를 따라서 '제작 본부장 C'라는 자막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라는 제목 역시 우디 앨런이 만든 첫 번째 장편영화이자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슬랩스틱 코미디  <돈을 갖고 튀어라>(Take the Money and Run)(1969년)를 패러디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상진 감독이 연출하고 박중훈과 정선경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Millions in My Account)(1995년)가 있지만 한글 제목만 같을 뿐 영어 제목이나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다. 오히려 무한도전의 패러디물은 코미디언들이 주연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형식의 장르들이 뒤섞여 있다는 점에서 우디 앨런의 영화에 보다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디 앨런의 영화는 헐리우드 코미디 영화의 독특한 전통이라 할 수 있는 '코미디언 코미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코미디 배우들은 뮤지컬이나 나이트 클럽 등에서 실제 관객들을 앞에 두고 연기를 펼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개그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이 영화라는 매체로 자리를 옮겨 연기를 할 때 영화의 서사구조와 무관하게 혹은 그것과 갈등을 일으키면서 자신들의 연기 스타일을 고수해서 그들이 출연한 코미디 영화를 '코미디언 코미디'라고 부르기도 했다.


반면에 무한도전의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는 무한도전 내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캐릭터와 개그 스타일이 서로 충돌하며 이야기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디 앨런의 영화와 차별화된다. 이는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에서 대본이 그리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정한 상황과 콘셉트만 주어지면 대부분의 사건을 출연자들이 애드리브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발생한 차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점은 그들의 즉흥연기가 풍부한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만의 개그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시청자들이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는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감상한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예능인으로서 그들의 천재성을 입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이 리치, 김태호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


'경주 보물찾기 특집'이 영화 <내셔널 트레져 2 : 비밀의 책>(2007)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면,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편은 첫 장면부터 출연자들을 영화처럼 소개하며 대놓고 이것은 영화다 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 모티브를 가이 리치의 재기발랄한 블랙 코미디 영화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1998)에서 가져와서,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뒤엉킨 출연자들의 관계를 솜씨 좋게 풀어헤쳐 감질맛 나는 영상 텍스트로 직조해내고 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즉흥적으로 다양한 사건들을 만들어내는 재능을 보여주었다면, 그 사건들을 효과적으로 편집해서 더욱 속도감 있고 긴장감 넘치는 영상들로 구성해낸 공은 전적으로 김태호CP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리바리한 네 친구들이 한 친구에게 돈을 몰아줘서 도박에서 한 몫 잡으려다 오히려 큰 빚을 지게 되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옆집에 살고 있던 대마초 패거리들로부터 돈과 대마초를 털어 도망다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가이 리치의 영화는 서로 무관한 듯 진행되던 이야기들이 교묘하게 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펄프 픽션>(1994)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가이 리치는 자신의 영화가 <펄프 픽션>의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는데, 그런 점에서 가이 리치는 쿠엔틴 타란티노와 김태호PD를 연결하는 매개자 역할을 하고 있다.


타란티노 감독과 김태호PD를 연결시키는 또 다른 매개자는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다. 영화 <놈, 놈, 놈>은 타란티노의 <킬 빌>(2003)에서 OST로 사용됐던 산타 에스메랄다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를 똑같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 음악은 무한도전의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의 메인 테마곡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영화 <놈, 놈, 놈>에서 힌트를 얻은 무한도전 6인의 작명 방식은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1992)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과도 유사하다. 그 영화에 등장하는 갱들은 서로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다만 '미스터 화이트', '미스터 오렌지', '미스터 핑크' 등으로 불리고 있다. 게다가 무한도전 출연진들을 한 화면에 소개하는 방식은 그 영화의 포스터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흡사하다.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은 자신들이 착용한 말끔한 수트 차림의 의상 때문에 스스로를 첩보원으로 알고 있지만, 영화 <저수지의 개들>에 등장하는 갱들도 전부 수트를 입고 있다. 또 타란티노의 영화는 갱들이 허름한 식당에 모여 마돈나의 'Like a Virgin'이란 노래의 의미를 놓고 시시콜콜한 잡담을 벌이는 장면에서 시작하고 있는데, 노홍철이 부르는 원더걸스의 '소 핫'과 정형돈이 부르는 하동균의 '그녀를 사랑해줘요'는 이 장면에 대한 패러디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은 자신들이 <007>과 같은 첩보 영화를 찍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돈가방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비열한 방법까지 동원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갱스터 영화나 액션 느와르를 찍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갱을 흉내내는 스파이거나, 스파이를 흉내내는 갱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출연자들 뿐만 아니라 기자들조차도 김태호CP의 꾐에 빠져 속고 있는 셈이다. 출연자들은 멋진 스파이 영화를 찍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고, 기자들은 작명하는 데 모티브를 제공한 것 이외에 큰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 우리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가장 중요한 패러디 대상으로 떠들어대고 있으니 말이다.

 


무한 이기주의의 대향연


돈가방이 있는 장소를 전달받고 출발하는 장면에서부터 무한 이기주의는 꽃 피어나기 시작했다. 초심을 되찾기 위해 묵은 때를 벗겼던 목욕탕 위치를 알 리 만무한 '굴러들어온 놈' 전진은 다른 멤버들에게 장소를 알려달라고 조르지만 '착한 놈' 유재석마저 그를 내팽개친 채 차에 올라탄다. '모자란 놈' 정준하는 한 술 더 떠 강남 쪽에 있다고 거짓 정보를 흘리지만 기여코 그를 쫓아오는 '굴러들어온 놈'과 원효대교 위에서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


한편 '어색한 놈' 정형돈은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려 돈가방이 있는 목욕탕을 향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방향이었고, '이상한 놈' 노홍철은 정형돈의 매니저에게 정보를 캐내고는 그의 전화는 받지도 말라며 음모를 꾸미게 된다.


여섯 명의 '놈들'이 각자 경쟁을 벌이는 것 같은 이 장면에서 교차편집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나쁜 놈' 박명수와 '좋은 놈' 유재석이 함께 묶이고, 신나게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모자란 놈' 정준하와 그를 뒤쫓는 '굴러들어온 놈' 전진이 짝을 이루고, 잔머리를 굴려 정보를 알아낸 '이상한 놈' 노홍철과 길을 헤매는 '어색한 놈' 정형돈이 서로 대비되고 있다.


마침내 가방을 획득한 '나쁜 놈'이 먼저 다음 목표지점인 서울역에 도착하면 장땡이라고 생각하고 달려가고 있다면, '이상한 놈'은 보다 머리를 굴려 자신의 가방이 진짜 돈이 든 가방인지 알아보기 위해 X-레이 촬영을 하는 영민함을 보여준다. 인물들을 대조시키는 이러한 편집 방식을 통해 각자의 캐릭터가 지닌 성격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한편 동시에 발생하는 복잡한 사건들이 효과적으로 정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역에 제일 먼저 도착한 '나쁜 놈'은 자신의 뒤를 바짝 따라온 '모자란 놈'이 주차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주차요원에게 부탁하는 음모를 꾸미지만, '모자란 놈'은 오히려 '나쁜 놈'을 비웃으며 역에 보다 가까운 곳에 차를 세워놓게 된다. 그러나 이미 무한 이기주의를 체득한 '굴러들어온 놈'은 목욕탕 앞에서 '모자란 놈'과 맺었던 협상을 파기하고 먼저 역 안으로 뛰어들어 간다.


그러나 먼저 비밀번호를 획득한 '모자란 놈'은 자신의 가방을 열어보고 진짜라고 착각하고, '굴러들어온 놈'은 그것이 가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섯 개의 가방들 중 어떤 것이 진짜 돈이 든 가방인지, 그리고 그 가방을 누가 들고 있는 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나 출연자들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모자란 놈'은 자신의 가방 안에 돈이 들어 있다고 믿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대전행 기차에 올라타게 되고, 자신의 가방이 가짜임을 확인한 '나쁜 놈'은 짐이 될 뿐인 가방을 '굴러들어온 놈'에게 맡기고 도망을 치게 된다. 그러나 '나쁜 놈'은 한순간의 실수로 '굴러들어온 놈'에게 진짜 돈의 위치를 알려주는 경보기마저 빼앗기게 된다. 하지만 '나쁜 놈'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승부에 강한 집착을 보이며 경보기를 다시 손에 넣고 다른 멤버들의 가방을 빼앗기로 '굴러들어온 놈'과 협상을 맺게 된다.


'굴러들어온 놈'의 뛰어난 점은 과거 하하가 그러했듯 타협과 배신을 수시로 해서 무한 이기주의의 세계관을 강화하는 동시에 다양한 에피소드를 산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목욕탕 앞에서 오뎅을 먹느라 정신이 팔려 있던 '모자란 놈'의 차를 탈취하려고 했다가 실패하자 그를 설득해 연합전선을 형성했다가, 그의 차로 서울역 앞에 무사히 도착하자 다시 그를 단박에 배신했던 것이 좋은 예이다.


돈가방을 놓고 치열한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건너편 건물에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인사를 건내는 '착한 놈'은 쉽게 위치를 노출하게 되고 '나쁜 놈'과 '굴러들어온 놈'으로 구성된 2인조 악당들의 좋은 먹이감이 되고 만다. '착한 놈'과 '나쁜 놈'은 가방 안에 든 돈을 서로 나누기로 협상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나쁜 놈'이 가로채서 달아나 이들 사이에 치열한 추격전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확인 결과 '착한 놈'의 가방은 가짜인 것으로 판명된다.


'이상한 놈'마저 민망한 미션을 수행한 끝에 가방을 열 수 있는 비밀번호를 획득해서 열어보지만 '나쁜 놈'과 마찬가지로 경보기만 손에 넣게 된다. 결국 확인이 안 된 가방은 '모자란 놈'의 가방과 '어색한 놈'의 가방만 남게 된다. 이 때 '어색한 놈'이 역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경보기를 통해 그것이 진짜 돈이라는 사실을 직감한 '나쁜 놈'과 '이상한 놈' 그리고 이상한 운명에 이끌려 이들에 합류하게 된 '착한 놈'은 하이에네떼처럼 '어색한 놈'의 가방을 탈취해 달아나게 된다.


한편 가방을 빼앗겨 허탈해 하던 '어색한 놈'은 가짜 가방을 없애기 위해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접근하던 '굴러들어온 놈'의 감언이설에 속아 가짜 가방을 진짜 가방이라 생각하고 빼앗아 달아나게 된다. 가짜 가방을 들고 좋아하는 '어색한 놈'의 웃음과 속여서 짐 하나를 없앤 '굴러들어온 놈'의 비열한 웃음이 극적으로 교차되며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한다.


'나쁜 놈'과 '이상한 놈'은 서로 한패였던 '좋은 놈'이 가지고 있던 진짜 돈가방을 탈취해서 함께 달아나게 되고, 멤버들의 심리상태 파악에 정통한 '좋은 놈'은 '모자란 놈'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진짜 돈가방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때서야 자신의 가방이 가짜라는 사실을 깨달은 '모자란 놈'은 패닉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이야기는 이제 진짜 돈이 든 가방은 어떤 것이고, 그것은 누가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 악당콤비가 빼앗아간 돈가방을 어떻게 다시 되찾는가 하는 문제로 바뀌게 되면서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1부는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다음주에 방영될 2부는 악당동맹 '나쁜 놈'과 '이상한 놈'이 어떻게 돈가방을 끝까지 사수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그것을 되찾으려는 추적자 동맹 '좋은 놈'과 '어색한 놈', 혼자 헤매고 있는 '굴러들어온 놈', 그제야 서울로 되돌아오고 있는 '모자란 놈' 간의 숨막히는 암투와 추격전을 예감하게 하고 있다.

 


빛나는 연출의 힘


앞에서 요약한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대단히 복잡한 사건들은 타란티노나 가이 리치에 버금가는 빼어난 연출력으로 갈무리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과감한 화면 분할을 사용해서 동시에 벌어지는 두 사건들을 비교해서 의미 전달력을 높이고, 스피드한 편집과 적절한 음악의 사용을 통해 박진감과 긴장감을 높인 것 역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진짜 돈이 든 가방이 근처에 있을 때 소리를 내는 경보기를 활용해서 출연자들과 시청자들이 예측해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도 몰입감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하겠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들과 동일한 정보를 제공받음으로 해서 추리에 동참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흑백의 자막과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말 풍선을 통한 대사 전달도 색다른 시도로 평가될 수 있다. 타이핑된 듯한 흑백의 자막은 뜨거운 열기로 넘치는 긴박한 영상과 달리 건조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해서 극적 밀도를 높이면서도 복잡하게 뒤엉킨 사건들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말 풍선은 만화의 프레임을 연상시키는 과감한 화면분할과 더불어 마치 어두운 뒷골목 갱들이 돈을 놓고 벌이는 사투를 그린 만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면서 무한도전 특유의 B급 감수성을 전달하고 있다.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가 참조하고 있는 쿠엔틴 타란티노와 가이 라치의 영화들도 이러한 마이너적 정서를 연출하기 위해 6,70년대의 B급 싸구려 영화를 모방하거나, 만화적 상상력을 영화 속에 삽입하기도 하고, 또 의도적으로 필름 관리를 소홀히 한 것처럼 끊겨진 장면을 삽입하거나 스크래치가 잔뜩 난 필름 화면을 그 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로베르토 로드리게스 감독의 영화 <플래닛 테러>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데쓰 프루프>를 <그라인드 하우스>란 제목의 영화로 하나로 묶어 마치 동시상영 영화인 것처럼 상영한 것 또한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by ddolappa

 

 


1. ‘무한도전-경주편’, 그 형식실험의 가치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80504091011704&cp=poctan&RIGHT_ENTER=R1

 


2. 무한도전 김태호PD “전진 투입 ‘돈가방’ 특집=놈놈놈+가이 리치 영화 모티브”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80621083308569&cp=newsen

 


3. 영화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연출된 첫 장면

 

 

 


4.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가 패러디 되고 있는 우디 앨런의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와 김상진 감독의 동명 영화.

 

 


5.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는 손과 알파벳식 코드명을 통해 영화 <007>을 패러디하고 있는 장면. 시리즈물 영화인 <007> 제2탄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악당 블로펠트는 이후 악당을 표현하는 영화적 클리세가 되어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영화 <007>에서 고양이를 안고 있는 악당 블로펠트의 모습

 


영화 <오스틴 파워>에서 닥터 이블이 고양이를 안고 있는 모습

 


악당이 고양이를 안고 있는 장면이 등장하는 만화 <형사 가제트>(왼쪽)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오른쪽)의 한 장면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등장한 '와키자카의 고양이'

 


6.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는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가이 리치 감독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에 등장하는 약간 모자란 네 친구들. 무한도전 멤버들을 연상시킨다.

 


7. 분할 화면을 통해 출연자들을 소개하는 방식과 깔끔하게 수트를 입은 모습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을 연상시키고 있다.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과 그와 로드리게스 감독이 공동 연출한 영화 <그라운드 하우스>는 6,70년대의 마이너 문화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8. 말 풍선을 통해 대사를 전달한 방식과 과감한 화면 분할 프레임은 B급 감수성을 전달하는 동시에 '불량 만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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