ㅆㅣㄴㅔ 2 1 . 특집 . .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
모두가 에이젠슈테인의 후예들
우디 앨런, 브라이언 드 팔마, 장 뤽 고다르와 누벨바그 이후
우디 앨런의 영화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사랑과 죽음>(1975)의 무대는 뜻밖에 19세기 러시아다. 우디 앨런이 러시아청년 보리스로 나오고, 보리스가 짝사랑하는 사촌 소냐 역을 다이앤 키튼이 맡은 이 영화는 <돈을 갖고 튀어라>류의 황당무계한 앨런표 코미디. 총 하나 제대로 못쏘는 얼뜨기 보리스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뜻하지 않은 실수로 공을 세우고 영웅이 되어 돌아오지만, 교활한 소냐의 강권으로 나폴레옹 암살음모에 가담했다가 처형당해 유령이 된다는 것이 대체적인 줄거리. 인용과 짜깁기의 천재답게 앨런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한 여러 러시아 문학가의 작품들과 잉그마르 베리만 등의 영화들을 곳곳에서 패러디하고 있는데, 에이젠슈테인의 작품도 인용된 원전 가운데 하나다.
정중한 헌사인가, 경박한 유희인가
깨진 안경 사이로 피흘리는 병사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은 유명한 <전함 포템킨>의 오데사 계단 학살장면에서 한쇼트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보리스가 백작의 아내를 건드리다 백작의 결투 신청을 받고 나서는 장면에선 주제의 몽타주기법이 사용됐다. 보리스와 백작이 결투장으로 향하는 장면에서 포효하는 사자상이 두번 삽입되고, 곧바로 축 늘어진 사자상이 등장해, 기세등등한 백작과 잔뜩 겁먹은 보리스의 심기를 표현한다. 물론 주변에는 사자 조각이 없으니 뜬금없는 삽입이다. 이 장면도 <전함 포템킨>에서 민중의 항거를 표현하기 위해 누워있는 사자상, 일어선 사자상, 포효하는 사자상이 커팅된 장면을 역순으로 코믹하게 패러디했다. 조프 앤드루가 펴낸 <필름 핸드북>에선 이런 대목들이 에이젠슈테인에게 바치는 앨런의 헌사라고 적혀 있지만, 헌사로 보기엔 앨런의 태도가 너무 경박해, 유희적 인용에 가까워 보인다.
<언터처블>(1987)에서 브라이언 드 팔마의 태도는 조금 더 진지하다. 케빈 코스트너의 총성에 놀라 여인이 놓친 유모차가 계단으로 굴러떨어지는 장면은 역시 오데사 학살장면 표절. 코스트너의 놀란 얼굴, 덜컹거리는 유모차 속의 천진한 아이 모습, 새파랗게 질린 여인의 표정, 굴러떨어지는 유모차로 달려드는 앤디 가르시아의 긴박한 몸짓, 마피아들의 총격을 숨가쁘게 교차시키며 에이젠슈테인의 정통 몽타주기법도 충실히 사용하고 있다. 이 시퀀스는 전체 플롯에 부드럽게 이어져 있어, 정교한 표절의 전형적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하다. 독창적 작품세계는 없지만, 풍부한 영화사적 지식으로 장식된 작품목록을 이어온 드 팔마에게 에이젠슈테인은 빼놓을 수 없는 영화적 스승이었을 것이다.
몽타주로부터 자유로운 감독은 없다
한사람의 감독이 자신의 영화적 스승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자기 영화에 스승의 영화 가운데 일부를 표절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이런 경우를 상업적 표절과 구분해 ‘경의’라는 뜻의 불어 오마주(homage)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다르는 미국 B급 무비의 대가 새뮤얼 풀러를 아예 <미치광이 피에로>에 출연시키기도 했다. 에이젠슈테인에게 개인적 오마주를 표하는 후배 감독들은 위의 두사례를 빼면 의외로 찾기 힘들다. 브라이언 드 팔마조차 평생의 원전으로 삼은 것은 앨프리드 히치콕의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사적 위치를 훼손하는 증거는 물론 아니다. 기법의 재탕 빈도를 경의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는 영화사상 가장 존경받는 감독일 것이다. 에이젠슈테인 이후 영화감독들 가운데 몽타주기법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오히려 힘들기 때문이다. 몽타주는 에이젠슈테인의 고유한 테크닉에 머물지 않고 영화의 기본화술 가운데 하나가 된 지 오래다. 따라서 1920년대 이후의 감독들이 그리피스의 후예이듯, 1930년대 이후의 거의 모든 감독들은 에이젠슈테인의 후예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사를 훑어보면 에이젠슈테인 당대에는 적극적 후예를 발견하기 힘들다. 소련에선 그가 배격돼야 할 탐미주의자이며 형식주의자로 몰리면서 이렇다 할 계승자가 성장하지 못했다. 미국과 유럽에선 사운드 도입이 몽타주의 세련화를 방해했다. 1927년 <재즈싱어> 이래 거의 모든 미국영화들은 사운드를 받아들였는데, 당시의 낙후된 동시녹음 기술로는 사운드의 연속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한장면을 여러컷으로 나누어 촬영하기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몽타주기법은 짧게 지나가는 시퀀스들에만 한정적으로 사용됐다. 예컨대 시간이 흘러갔음을 나타내기 위해 북적거리는 해변, 낙엽지는 숲, 눈내리는 들판 등을 연이어 보여주는 식이다. 이런 짧은 장면들은 본래의 몽타주와 구분돼 몽타주 시퀀스로 불린다.
사실주의, 몽타주를 만나다
1930년대 영국의 세미 다큐멘터리나 오슨 웰스의 <아카딘씨>(1955)를 제외하면 몽타주기법이 관습적 테크닉으로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50년대 후반,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에 의해서였다. 이들이 몽타주에 가장 비판적인 이론가였던 앙드레 바쟁의 후배들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그렇다고 그들이 몽타주기법을 배타적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며, 어떤 공식적인 편집기법을 옹호한 적도 없다. 오히려 미장센 및 롱테이크의 풍부한 사실성과 몽타주의 격렬한 표현을 융통성 있게 구사한 편이었다. 프랑수아 트뤼포와 장 뤽 고다르는 그들 가운데서도 백과사전식 편집기법을 영화마다 자랑한 인물들이다.
트뤼포는 데뷔작 <400번의 구타>(1959)에서 롱테이크와 미장센 미학의 전형을 보여줬지만, 세번째 작품 <쥴과 짐>(1961)에선 탁월한 몽타주를 구사했다. <쥴과 짐>에서 앞의 3분의 1은 더들리 앤드루의 표현을 빌리면 ‘촬영과 편집효과의 교과서’이다. 이 영민한 영화광은 정지 프레임, 스위시 패닝(피사체 윤곽이 흐려질 정도의 빠르게 카메라를 좌우로 흔들며 찍기), 기성화면(stock footage), 점프 컷 등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자유와 구속, 질투와 우정 사이를 오가는 세남녀의 심리를 절묘하게 그렸다. 에이젠슈테인 이래 이만큼 발랄하고 창의적으로 몽타주기법을 사용한 영화감독은 없었다.
고다르의 문제적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1960)는 온갖 편집기법이 제멋대로 사용된 작품. 에이젠슈테인도 생각 못한 과격한 몽타주기법인 점프 컷을 대중화시킨 영화로도 유명하다. 고다르의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인 <남과 여>는 다양한 편집기법이 혼합된 전형적인 작품. 1초를 넘기지 않는 짧은 쇼트들이 이어지다가, 어떤 장면은 7분이 넘는 길고 긴 하나의 쇼트로 채워진다. 매끈한 조화가 아니라 모순과 갈등의 변증법적 미학이며 혁명적 현실의 표현도구로 사용된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가 처음부터 좌파적 성향을 지녔던 누벨바그 감독들에게 매혹적이었음은 분명하지만, 이들은 단순한 테크닉 답습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더욱 과격하게 밀고 가거나, 상반되는 기법들까지 한영화 안에서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지점에까지 나아감으로써, 에이젠슈테인을 넘어섰다. 특히 고다르는 68년 이후 러시아 혁명영화의 또다른 스승 지가 베르토프로부터 영감을 얻어 혁명적 영화인으로 거듭 태어난다. 확실히 누벨바그는 그리피스의 아이들이라기보다는 에이젠슈테인의 아이들에 가까운 셈이다.
또다른 미학을 기다리며
여기서 빠트리고 갈 수 없는 인물이 일본 뉴웨이브의 기수 오시마 나기사이다. 오시마 역시 특정한 편집기법을 옹호하진 않았지만 몽타주의 풍부한 표현력을 능숙하게 활용한 대표적 감독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이상심리의 연쇄 강간살인범의 범죄행각을 그린 <백주의 마귀>(1966)는 범인의 땀 흐르는 얼굴, 피해 여성의 차갑고도 불안한 얼굴, 대낮인데도 기묘한 불길함으로 가득 찬 공간을 숨가쁘게 이어붙인 빠른 커팅이 빛나는 작품이다. 범인의 얼굴을 같은 거리에서 여러 각도로 커팅한 장면들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경쾌한 점프 컷과는 다른 음산한 느낌을 전해준다. 저명한 영화학자 노엘 뷔르시는 이 영화를 에이젠슈테인의 걸작들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을 정도로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여하튼 영화가 당당한 예술로 추인된 60년대는 에이젠슈테인의 미학적 잠재력이 새로운 세대에 의해 발전적으로 계승된 연대이기도 했던 셈이다.
누벨바그의 영향력은 워낙 막대한 것이어서 60년대 이후로는 이들이 대중화시킨 편집기법이 폭발적 유행처럼 사용됐다. <영화의 이해>에서 루이스 자네티는 “1960년대 내내 가장 쓰레기 같은 영화들조차… 줌인, 줌아웃, 크로스 컷, 플래시 컷, 점프 컷 등 심지어 컷을 할 만한 특별한 이유도 없는 곳에까지 이같은 기법을 남발했다”고 쓰고 있다. 자네티는 이어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선 어떤 편집기교도 세계영화계를 풍미하지 못했다. 관객들은 이제 광범위한 각종 편집기법들에 대해 놀라운 관대함을 갖기에 이르렀다”고 덧붙이고 있다.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런 경향은 영상시대인 80년대 이후 더욱 강화돼왔다. 좁은 의미의 테크닉으로만 보면, 영화감독은 말할 것도 없고, 오늘의 CF 감독, 뮤직비디오 감독 그리고 TV PD들까지 모두 몽타주를 수시로 구사하는 에이젠슈테인의 후예들이다.
에이젠슈테인이 창안하고 누벨바그에 의해 발전적으로 계승된 몽타주는 그것을 통해 관객과의 변증법적 소통을 시도한 에이젠슈테인의 의도를 멀리 벗어나, 이젠 흔해 빠진 상투구의 하나가 돼버린 것이다. 진정한 그의 후예들을 만나기 위해선 또다른 누벨바그를 기다릴 도리밖에 없을 것 같다.
허문영 기자
(사진/<사랑과 죽음>은 우디 앨런이 에이젠슈테인을 인용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사진/브라이언 드 팔마는 '언터처블'에서 유명한 오데사 학살장면을 그대로 인용했다.)
(사진/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는 과격한 몽타주기법인 점프 컷을 대중화한 영화.)
출처 : 씨네21 1998년 08월 25일 제1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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