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48> 올해의 마지막 달력을 뜯어내며
무한도전 134회 081213 : 2009 달력특집 3탄
2008년도 무한도전의 결산으로서 '달력특집'
단독 프로그램으로 독립한 이후 무한도전은 해마다 전체적인 콘셉트와 기획에 변화를 주며 성장을 거듭해왔다. 2006년도에는 '정형돈과 하하의 친해지길 바라' 시리즈 등을 통해 '리얼 버라이어티'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냈다. 2007년도에는 '행사 하나마나' 등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2008년도에 들어서 무한도전은 '사전제작'과 '이종교배'라는 기획의도에 중점을 두어 '베이징 올림픽'이나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와 같은 주옥 같은 에피소드를 쏟아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2009 달력 특집'을 위치시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성과를 결산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즉 '달력특집'은 개별 에피소드인 동시에 2008년 동안 무한도전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기 위해 마련된 장소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달력특집'을 둘러싼 다양한 부정적 목소리들, 다시 말해 '2.5주간 방송된 것은 우려먹기다', '대형 프로젝트에 중점을 두다 보니 예전 같은 재미가 사라졌다'와 같은 견해들은 장기 프로젝트에 중점을 두었던 2008년도 내내 무한도전이 들을 수 밖에 없었던 비판을 마지막 순간까지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 초 방영된 '인도 특집'에서도 이와 유사한 비판을 들었던 사실을 잠시 떠올려 보도록 하자.
반면에 단 하루 동안 촬영을 해서 3주 동안이나 방영되었지만 올해 최고의 에피소드로 꼽히는 '돈가방 특집'은 '인도 특집'이나 '달력 특집'의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오락적 재미와 프로그램의 질이 투자한 시간 및 인력과 반드시 정비례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결국 문제는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킬 만한 소재의 개발, 창의적 기획력 그리고 세련된 연출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우리나라의 방송 환경이 독창적인 오락 프로그램의 개발에 우호적인가 하는 점이다.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프로그램을 획일적으로 편성해놓고 죽기살기식의 과도한 시청률 경쟁으로 내몰고, 트렌드란 이름으로 경쟁 프로그램에 대한 무분별한 베끼기마저 용납하고, 시청률만 잘 나오면 독창적인 콘셉트나 프로그램의 질은 상관없이 최우수 프로그램으로 떠받들어지는 환경 속에서 과연 창의성이 발휘될 여지가 있는가는 생각해볼 문제다.
무한도전이 올해 '사전제작'이란 콘셉트를 들고 나와 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유사 경쟁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를 시도한 일종의 '편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편법'인 까닭은 6개월은 방송하고 6개월은 쉬면서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미국식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3년 넘게 한 주도 빼먹지 않고 방송을 해야 하는 우리의 방송 환경 안에서 찾은 나름의 자구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한 소재를 2,3주간 방영했다고 해서 '우려먹기다' 혹은 '대형 프로젝트가 문제다'라고 비난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 문제의 핵심을 놓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방영시간이 아닌 기획의 의도와 그에 따른 재미의 강도이다. 프로그램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와 시청자들의 기대가 어긋났기 때문에 지루함이 발생한 것이지 같은 소재가 오랜 시간에 걸쳐 방송되었기 때문에 재미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러한 비판은 다루는 소재에 따라 상이한 시간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오락 프로그램이 다룰 수 있는 소재를 제한시킬 위험마저 안고 있는 것이다.
프로그램 콘셉트의 변화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이 대형 프로젝트에 중점을 두다 보니 예전 같은 재미가 사라졌다'는 견해는 생각해볼 만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예전 같은 재미'가 무엇을 말하는 지는 2007년도에 방영된 '달력 만들기 특집'(83회) 초반 15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프닝과 동시에 출연자들은 바로 직전에 방영되었던 '댄스스포츠 특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 때 갑자기 노홍철이 우연히 무한도전 촬영장 곁을 지나가던 김주하 아나운서를 발견하고 소리를 치자, 화제는 어느새 '아나운서 킬러' 유재석에게 넘어가 '의자왕처럼 3,000 아나운서를 거느려야겠냐'며 다른 출연자들로부터 억울한 지탄을 받게 된다. 이후 박명수의 나이와 얼굴을 소재로 만담을 펼치다가, 당시 정석권 실장과의 불화로 화제가 또 옮겨간다. 그 후로 팀 이름을 정하며 한참이나 옥신각신 다툼을 벌이다가 출연자들이 본격적으로 사진 촬영을 하러 떠난 것은 60여분 방송 시간 중 15분 가량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에 반해 '2009 달력 특집'은 초반 오프닝을 겸한 사진작가 정하기 게임을 제외하면 출연자들 모두 너무나 기획의도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트 촬영 위주이다 보니 돌발적이고 우연한 상황들에 즉흥연기와 애드리브로 대처하던 상황극이 이어질 여지마저 없었다. 무한도전이 예전에 주었던 '재미'란 직설화법에 기초한 빠른 호흡의 대화, 캐릭터들 간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즐거움, 녹화상황과 그 바깥 환경 간의 자유로운 소통이 주는 자유분방함 등이었는데, 그와 같은 요소들이 '달력 특집'에서는 크게 부각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 결정적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재미'란 상당 부분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성장시킬 당시에 무한도전이 주었던 재미라 할 수 있다. 게스트 없이 그들만이 모여 즐겁게 놀았던 콘셉트의 에피소드들 대부분은 시트콤적인 재미로 충만했고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넘쳤다. 하지만 그런 재미만 추구했다면 지금껏 무한도전이 유지될 수 있었을까? 결국 문제는 '예전 같은 재미'를 대체할 만한 색다른 재미의 요소를 무한도전이 만들어내지 못했거나 혹은 시청자들이 발견해냈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2008년도에 무한도전이 에피소드를 전개하는 방식이나 기획 방향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과거 무한도전은 정형돈과 하하가 어색한 사이라는 사실을 '롤링 페이퍼'를 통해 발견하고, 이를 몰래 카메라를 통해 재확인한 뒤, 그들이 친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에피소드를 전개했다. 정준하가 일본에서 커다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말을 기억했다가 실제로 일본으로 건너가 그 사실을 확인했던 것 역시 섬세한 연출방식을 보여준 한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008년도의 최대 수확으로 손꼽히는 '돈가방 특집'에서 알 수 있듯이 올해의 무한도전은 캐릭터의 성장 대신 그 동안 다듬어온 캐릭터를 활용해 보다 호흡이 긴 서사를 만들고 보다 넓은 세계로 영역을 넓히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로 인해 오락적 재미의 방향성이 달라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실제로 '달력 특집'만 하더라도 과거 1회분으로 방송되었던 것에 비해 다루고 있는 소재도 더 다양해졌고, 인용되고 있는 하위 텍스트도 더욱 풍부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1) 2007년에 방영된 '달력 특집'은 제한된 시간 내에 1년치 달력사진을 한꺼번에 촬영하다 보니 '소년 명수'나 '괴물', '돌+I'처럼 기존의 캐릭터를 주로 활용했고 촬영 과정 역시 짧게 스케치되는 정도에 그쳤다. 제작진이 인정했듯 사진의 질 역시 여러모로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달력 특집'에 대해 있을 수도 있는 불만의 원인은 동일한 소재를 오랜 시간에 걸쳐 방영한 '장기 프로젝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재를 다루고 있는 연출방식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불완전한 쇼의 매력과 가능성
'달력 특집'은 올해 무한도전에 있었던 사건 및 사고를 정리한 '무한뉴스', 오프닝을 겸한 사진작가 정하기 게임 그리고 사진촬영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1년에 걸쳐 부분적으로 촬영된 영상을 편집했기 때문에 구성상의 반복은 통일성을 위해서 피할 수 없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사진작가 정하기 게임' 같은 인위적 장치를 굳이 도입할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든다. 그 앞에 놓인 '무한뉴스'가 단란을 구분하는 역할을 이미 하고 있기 때문에 곧바로 본촬영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촬영전 대기실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만으로도 촬영 당시의 상황을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다고도 본다. 결국 '작가 정하기 게임'은 전체적인 편집을 느슨하게 만들어 지루함을 낳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더러,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무한도전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친 인위적 설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달력 특집' 전체를 꿰뚫는 미학적 핵심은 패러디라 할 수 있다. 어디선가 한 번쯤 본 듯한 장면인 도망치는 신랑들, 스카이 다이빙, 스쿠버 다이빙은 말할 것도 없고, '개구장이 스머프', '월하의 공동묘지', '오즈의 마법사', '모나리자' 등 대부분의 달력 사진들이 원전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원전의 충실한 재현에 매달리다 보니 독창적 재해석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큰 오락적 재미를 줄 수 없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령, '오즈의 마법사'의 경우 모방되고 있는 원본과 인물들의 배치 순서, 배경을 이루고 있는 수정궁의 모습, 바닥에 깔린 타일까지 꼼꼼하게 신경쓴 티가 역력하다. 그러나 사진 자체의 퀄리티와 상관없이, 사진 자체가 혹은 그 사진을 찍는 과정이 어떤 오락적 재미를 주고 있는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
그 전에 무한도전이 찍은 달력 사진들은 보면 분명 여러 모로 부족해 보이고, 심하게 말해 조잡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그러한 부족함을 메우고도 남을 재기발랄함과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영화 '원초적 본능'과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를 합성해 놓은 듯한 '여드름 브레이크'나 영화 '괴물'을 패러디한 사진은 마치 키치 미학의 표본을 보는 듯하다.
'달력 특집'에서 느꼈던 아쉬운 점이 바로 이것인데, 무한도전의 전공분야라 할 수 있는 패러디물 제작에서 예전에 볼 수 있었던 그 기발한 착상과 발칙한 상상력이 사라지고 지나치게 점잖아졌다는 것이다. 완성도에 지나치게 집착한 순간 무한도전 특유의 경쾌함이 짓눌리고 만 셈이다. 올해 들어 무한도전이 달라졌다고 느껴졌던 것 역시 환경문제와 같은 시사적 문제나 올림픽처럼 대규모 행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어찌 보면 잘 만들어진 오락물을 제작하겠다는 제작진의 야심이 너무나 지나쳤던 것인지 모른다.
바로 이 지점이 팬들이 무한도전에 거는 기대와 제작진의 의도가 어긋나고 있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양자의 눈높이가 행복하게 접점을 찾은 듯한 순간도 존재했다.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가 그것이다. 하지만 '달력 특집'을 포함해서 올해 방영된 전체 에피소드들을 회고해보면, 제작진과 시청자들의 시선이 서로 지그재그로 어긋났던 경우가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무한도전이 더 재미있었다는 반응을 보이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심심치 않게 올라왔던 것도 이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렇다면 보다 완벽한 형태의 오락물로 진화하려는 무한도전의 욕망은 포기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시청자들과의 행복한 교감은 한 순간의 꿈에 불과한 것일까?
무한도전이 보다 완성된 모습의 쇼로 진화하려다 멈춰선 이 지점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발전을 꿈꿀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즉 3년이나 된 오락 프로그램이 여전히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무한도전은 현재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대중들이 때로는 실망하고 또 때로는 분노하면서도 무한도전에 대한 애정을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과 출연자들이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불완전하고 미숙한 모습 자체를 아끼고, 그들이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나날이 나아지는 모습을 확인하며 함께 슬퍼하고 기뻐할 수 있기 때문에 아낌없는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무한도전 제작진 역시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정신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장점들을 놓치지 말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가령 '에어로빅 특집' 마지막 편에서 과거에 보여주었던 특유의 섬세한 연출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더라면 한 단계 더 진보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락적 가치와 완벽성의 추구는 결코 양립 불가능한 관계에 놓여 있지 않다. 따라서 대형 프로젝트 위주로 진행했기 때문에 무한도전의 재미가 과거에 비해 떨어졌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결국 먼 길을 돌아왔지만 모든 문제는 단 하나의 핵심적 질문에 도달하는 셈이다 : 이 시대에 부합하는 오락적 재미란 무엇인가? 이는 무한도전이 어떤 실험을 하더라도 결코 놓쳐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화두라 할 수 있다.
by ddolappa
참고자료
1. '달력 특집'에 인용된 소재에 대해서는 다음 글들을 참고할 것.
[달력특집]패러디-1. 드라마 및 방송
http://tvzonebbs6.media.daum.net/griffin/do/talk/gallery/challenge/read?bbsId=S000054&articleId=31429&pageIndex=2&searchKey=&searchValue=
[달력특집]패러디-2. 만화 및 뮤지컬
http://tvzonebbs6.media.daum.net/griffin/do/talk/gallery/challenge/read?bbsId=S000054&articleId=31430&pageIndex=2&searchKey=&searchValue=
[달력특집]패러디-3. 프로레슬링 및 이종격투기
http://tvzonebbs6.media.daum.net/griffin/do/talk/gallery/challenge/read?bbsId=S000054&articleId=31431&pageIndex=2&searchKey=&searchValue=
[달력특집]패러디-4. 영화
http://tvzonebbs6.media.daum.net/griffin/do/talk/gallery/challenge/read?bbsId=S000054&articleId=31432&pageIndex=2&searchKey=&searchValue=
[달력특집]패러디-5. 모나리자 및 명화
http://tvzonebbs6.media.daum.net/griffin/do/talk/gallery/challenge/read?bbsId=S000054&articleId=31433&pageIndex=2&searchKey=&search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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