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67> 예능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무한도전 153회 090509 : 춘향이 선발대회
깊고 넓어진 무한도전, 그러나 ....
방영된 지 4년이 넘은 무한도전은 '인생극장 Yes or No'나 '하루만에 세계일주' 같은 혁신적 포맷을 선보일 만큼 아직까지 신선한 매력을 잃지 않았다. 그건 이미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집념과 열정 때문인데, 그래서 소녀시대가 출연한 '여성의 날 특집'이나 김연아가 출연한 '축제의 무도' 편이 비록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 할 지라도, 여성 게스트를 관상용 꽃이 아닌 능동적 주체로 대하겠다는 의지만큼은 존중되어야 한다.
실험적 연출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무한도전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다. 이는 단순히 프로그램 제작에 인용된 '아더왕 모티브'나 철학자 사르트르의 금언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다. '쪽대본 특집'이 소위 '막장 드라마' 몇 편을 패러디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의 열악한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문제 삼고 있는데서도 확인된다.
또한 무한도전은 '코리안 돌+아이 특집'에서 집단주의의 성격이 강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직 방영되지 않은 '스타가 되고 싶으면 연락해' 편은 경제난으로 인해 유재석이나 강호동처럼 검증된 스타가 아니면 방송국에 발을 붙이기 힘든 상황에서 후배 예능인들을 육성해서 궁극적으로 예능을 활성화하겠다는 기획 취지를 담고 있다.
이처럼 무한도전은 방송계뿐만 아니라 환경문제나 여성문제 등 우리의 문화현실 전반으로 주제를 확장하는 한편, 삐딱하면서도 따뜻한 특유의 시선과 사려깊은 안목으로 묵직한 주제의식을 드러내왔다. 기업들이나 방송국들이 경제난을 핑계로 힘없는 사회 초년생들이나 신인들을 헐값에 이용하려 할 뿐 그들에게 발전할 기회조차 제대로 주지 않으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래를 위해 후배들을 길러내야 한다는 주장은 무한도전의 거시적 안목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보다 디테일한 내부를 들여다 보면 모든 것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늘어난 방영시간으로 인해 불필요한 반복 장면이 잦아졌고, 화면 편집에 군더더기도 늘어났다. '돌아온 지못미 특집'처럼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이 시간 때우기에 급급하단 느낌을 주는 에피소드가 제작되기도 했다. 연출자 김태호 피디가 비판한 것처럼 출연자들은 벌써 상당한 기간 동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방영된 '육남매 특집'이나 '춘향이 선발대회 특집' 등을 살펴보면 현재 무한도전이 내부에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특히 이 에피소드들에서는 출연자들이 갖고 있는 예능인으로서의 재능과 능력이 시험대상이 되는데, 대부분의 오락적 재미가 게스트의 매력이나 제작진의 기획력이 아닌 그들의 역량에 의해 순수히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태호 피디는 '육남매 특집' 류의 에피소드를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획했다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포맷을 취하고 있는 이런 에피소드들은 '캐릭터 중심에서 스토리 중심으로'의 방향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무한도전의 발전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세심한 관찰을 필요로 한다.
혼합 장르로서 '리얼 버라이어티쇼'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은 춘향이로 선발되기 위해 '매난국죽'으로 4행시를 짓으며 다양한 애드리브를 구사해야 했고, '닮아도'를 그리면서 게스트로 나온 리쌍의 길과 토크를 주고 받기도 했고, 그네뛰기를 하며 몸개그를 선보여야만 했다. 또 이몽룡으로 분장해 짧은 콩트 연기를 하기도 했고, 소품을 이용해 즉석에서 속고 속이는 상황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춘향이 선발대회'를 구성하고 있는 몇 가지 오락적 요소들만 살펴봐도 무한도전이 추구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춤, 노래, 연기력, 애드리브, 토크 능력, 몸개그 등 출연자들의 다양한 예능 재능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리얼리티쇼, 토크쇼, 슬랩스틱 코미디, 콩트, 버라이어티쇼 등이 뒤섞인 혼합 장르라 할 수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가진 이러한 특징은 이 장르에 대한 논의가 주로 '리얼리티'와 '캐릭터'에 집중되며 주목받지 못했는데, 그로 인해 출연자들을 섭외해서 대본 없이 카메라로 찍어대면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오해를 낳기도 했다.
다시 말해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여러 가지 장르의 오락적 가치를 극대화시킨 쇼이고, 출연자는 자신이 갖고 있는 거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쏟아부어야 하는 쇼이다.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등 연예계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출연자들이 무한도전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형돈, 노홍철, 하하 등이 상황극이나 사투리 연기에 낯설어 했던 반면, 무한도전의 장년층 3인방이 '농촌 특집'에서 아무런 대본도 없이 10분이 넘게 즉석 콩트 '괜찮아유'를 펼쳤던 것은 이 장르가 예능인으로 다양한 경험 축적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예능계에서 주로 활동해왔던 인물들로 짜여진 무한도전의 인적구성은 각 장르의 법칙을 몸으로 체득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어떤 상황이 주어지든 따로 합을 맞출 필요도 없이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에는 가수, 영화배우, 탤런트 등 비전문 예능인들이 상당수 포진되어 있는 반면, 무한도전은 전문 예능인들로 구성된, 김태호 피디가 말했던 것처럼, 예능인들이 주인공이 되는 쇼이다. 바로 이러한 인적 구성은 무한도전이 자유로운 형식실험을 할 수 있었던 원천이기도 한데, 그들은 게스트를 빛나게 하는 주변인에서 벗어나 쇼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쇼를 직접 만들게 된다. 시청자들이 게스트가 초대될 때보다 출연자들끼리 놀 때 무한도전이 더 재미있다고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무한도전 출연자들은 '에어로빅 특집'이나 '봅슬레이 특집' 등 대형 프로젝트를 거치며 소위 예능감이라 불리는 오락적 재능을 상당 부분 상실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스포츠 관련 도전에서 그들이 예능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는 극히 적을 뿐더러 '감동'과 '리얼리티'를 지향하기 때문에 웃음 코드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모든 출연자들과 관계망을 형성하며 적재적소에서 리액션을 담당하던 하하의 공백은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 그의 자리를 대신한 '굴러들어온 놈' 전진은 분명히 팀에 신선한 활력소로 작용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능인으로서의 한계를 노출했다. '며느리가 뿔났다'에서 그는 '집 나간 서방 찾아줘'라는 대사밖에 할 수 없을 만큼 콩트나 애드리브에 약했고, 리액션 역시 다른 출연자들의 반응를 보고 따라하는 정도에 그칠 뿐 적극적이지도 않았고 창조적이지도 못했다. 이는 그가 무한도전의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아이돌 스타'로 성장해온 배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는 언제나 쇼의 주인공으로 대접을 받아온 편이었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흥을 돋우는 역할을 맡을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춘향이 선발대회' 편에서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준 길의 모습 속엔 전진이 앞으로 갖추어야 할 예능인의 기본 태도가 담겨 있다. 다소 험상궂게 생긴 외모와 뻔뻔스럽고 유들유들한 말투는 길을 '비호감' 캐릭터로 분류하게 만드는 요소이지만, 그에게는 망가져야 한다는 두려움이 없을 뿐더러 신인의 자세로 예능을 배우려는 열정으로 충만해 있다. 거친 야수처럼 달려드는 그의 모습은 마치 순수한 호기심과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했던 무한도전 출연자들의 초창기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김태호 피디가 출연자들에게 초심을 찾아주기 위해 '육남매 특집'이나 '춘향전 특집'을 준비했다면, 길의 섭외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예능계를 향한 문 앞에서
'김연아 선수 특집'에 출연해 '김현철보다 월등한 방송 후폭풍'을 남겼던 길이 무한도전에 다시 출연한 것은 조금 의외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날 그가 보여준 모습은 그 동안 무한도전이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지만 결코 메울 수 없었던 공백이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히 깨닫게 해주었다.
'닮아대사'로 등장한 길은 초반에 불안한 애드리브 능력을 보이기도 했지만 특유의 뻔뻔스러움으로 거친 입담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 무한도전"이라고 말하며 은근슬쩍 무한도전에 합류하려는 야심을 드러냈고, 이를 못마땅히 여겨 견제하려는 정준하를 "이 형 비호감이야!"라는 말로 제압했다. 길에게 가수나 하지 왜 예능 프로그램을 하냐고 따지듯 물었던 박명수 역시 자신의 1집 앨범 판매량이 박명수의 전 앨범 판매량보다 월등히 많다는 길의 반격에 아무런 대구조차 할 수 없었다.
길에 대한 노홍철의 과도한 리액션을 수상히 여긴 유재석이 사전에 담합한 것이 아니냐고 추궁하자 노홍철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이하늘이 무한도전 게시판에 남긴 댓글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놀러와'에 함께 출연하고 있는 이 세 사람의 호흡은 물흐르듯 매끄러웠다. 또한 길은 동갑내기 친구 정형돈이 다리가 짧다며 약을 올리자 "친하지도 않으면서" 지적을 한다며 그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길은 등장한 첫 장면에서부터 거의 모든 출연자들과 일정한 관계망을 형성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뛰어난 친화력도 눈여겨 볼 만한 것이지만 입담에서 밀리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예능인으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정준하와 정형돈이 길과 조합을 이루었을 때 그들로부터 전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을 이끌어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길은 정준하와 '겉절이와 깍두기', '몸개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 결과 정준하는 전에 없이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며 절정의 몸개그를 선보이게 된다. 그가 갖고 있던 보스 기질이 모범을 보여야 할 후배가 등장하자 긍정적으로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시험 장면에서 왕 역할을 맡았던 길은 무릎을 꿇으라는 명령에 불손한 태도를 보인 정형돈에게 로우킥을 시도하려는 제스처를 취하고, 길의 예상 밖의 반응에 놀란 정형돈의 당황하는 모습은 뜻밖의 큰 웃음을 주었다. 또한 길은 친구사이니 음식을 먹더라도 하옥시키지 않겠다고 정형돈을 유혹한 뒤 곧바로 그를 배신하는 영악한 면모를 드러내 정준하와는 또 다른 콤비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길이 다른 출연자들과 맺고 있는 관계망을 보았을 때 그가 왜 현재의 무한도전에 필요한 인물인가 하는 점이 명확해진다. 즉 길은 바로 하하가 무한도전 내에서 담당하고 있던 역할을 거의 완벽하게 수행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춘향전 특집' 편에서 하하의 이름이 여러 차례 언급된 것도 어쩌면 결코 우연이 아닌지 모른다. '풍악'을 '풍월'로, '수청'을 '숙청'으로 발음할 정도의 무식함, '이간길'이란 그의 닉네임에 걸맞는 간사함,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배신과 배반을 밥 먹듯이 할 수 있는 이기적 모습! 거기에 적절한 몸개그 능력과 투박하고 거친 입담까지!
이 대목에서 고려해야 할 쇼 외적인 사실은 길과 하하가 오래 전부터 사적인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길이 '놀러와'로 예능계에 입문하게 되었을 때 하하로부터 많은 조언을 구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길은 무신경할 것 같은 인상과는 달리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대충하고 들어가는 그런 연예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그래서 평소에도 담당 연출자들과 상의하며 캐릭터 연구를 열심히 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길이 '춘향전 특집'에서 보여준 캐릭터는 사전에 충분히 준비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무한도전에 필요한 캐릭터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역할을 적절히 수행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길이 엔터테이너로서 보여준 재능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전문적인 예능인이 되는 일은 박명수의 말처럼 이론이나 교과서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동물적 감각으로 익혀야 하는 것고, 여기에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이 보태질 때만 프로 예능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이 비로소 주어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코미디계의 대부라 불리는 이경규는 재치있는 말로 대중들을 잠깐 동안 즐겁게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10년 넘게 꾸준히 웃음을 주는 일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버라이어티 업계에 반짝스타가 드문 대신 관록의 법칙이 통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개그콘서트'에 10년 넘게 출연하고 있는 김준호가 토크쇼만 나오면 극심한 울렁증을 호소하는 것도 공개 코미디나 콩트 코미디와는 또다른 이 바닥만의 녹록치 않은 생리를 말해준다.
이 대목에서 무한도전이 왜 후배 양성 프로젝트를 세웠는 지도 짐작이 된다. 경제난으로 검증된 예능인들만 출연시키고 신인들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현재의 상황은 박명수가 지속적으로 불만을 표출해왔듯 유재석과 강호동에 의한 승자독식체제를 만들었고, 이런 시스템은 인력풀을 더욱 협소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예능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예능 신인 길에게 기회를 준 무한도전 측의 배려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뛰어난 활약상을 보여준 그의 모습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방송국들이 취하고 있는 현재의 경영정책이 반드시 올바른 정답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위기 극복을 위해 제시되고 있는 근시안적 처방은 결국 미래에 더 큰 위기를 불러올 뿐이며, 따라서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모두가 생상할 수 있는 대안만이 위험부담을 최소화할 뿐이다.
예능계에 이제 갓 입문한 길이 앞으로 무한도전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무한도전이 주목한 신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시청자들은 그의 활동을 눈여겨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무한도전의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토리, 게임 그리고 캐릭터
김태호 피디가 출연자들의 초심을 되찾아주기 위해 마련한 특집들의 구조적 특징은 어떤 상황을 던져주고 그 안에서 출연자들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해 웃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을 소풍 특집'이나 '농촌 특집' 등에서도 사용된 바 있는 이러한 포맷은 춤과 노래는 기본이고 애드리브, 몸개그, 콩트 연기 등 그들이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간소화된 서사의 빈틈을 채워넣어야 하기 때문에 각자의 장단점은 물론 팀워크까지 살펴볼 수 있는 시험무대이기도 하다.
'춘향적 특집'에서 '그네뛰기' 게임이 몸개그 향연의 장이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멀리 뛸 수 있는가 하는 게 아니라 그네라는 소품을 이용해 누가 자연스러운 웃음을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 과정에서 출연자들은 우아한 몸개그를 펼치기 위한 경쟁에 돌입하게 되고, 각자의 연기에 대한 혹독한 평가를 내리게 된다. 유재석이 마치 스포츠 경기의 감독처럼 작전타임을 불러 플레이를 지시하고, 다른 출연자들은 해설진의 역할을 하며 몸개그에 대한 이런저런 예측과 평가를 내놓는다. 그리고 성공적인 몸개그를 보인 사람들은 명예의 전당에 올라 다른 출연진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고, 그 날 수훈감으로 뽑힌 정준하는 단독 갈라쇼를 펼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의 게임은 '패밀리가 떴다'에서 하는 게임과 차별화된다. '패떴'에서 게임은 가수, 영화배우, 탤런트, 아이돌 스타 등이 망가지며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데서 어떤 쾌감이 발생한다면, 무한도전에서 게임은 오락 프로그램에서 즐겨 사용해왔던 게임이란 요소를 바깥에서 바라보는 시선에서 새로운 오락적 쾌감이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무한도전은 게임을 하는 목적이 웃음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폭로하는데서 고차원적인 즐거움을 창조해낸다. 게임을 하는 목적이야 뻔한 것이니 이왕이면 참신한 몸개그를 선보이는 게 좋은 것이고, 그래서 게임은 경쟁의 장으로 변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방영된 '육남매 특집'이나 '춘향전 특집'의 경우 과거와는 달리 내러티브의 요소가 보다 정교해지고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농촌 특집'이나 '가을소풍 특집'에서 '농촌'과 '가을소풍'이라는 모티브는 단순한 배경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았고, 그래서 장면과 장면, 사건과 사건 사이의 연결은 느슨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농촌에 가서 무한뉴스 진행을 먼저하든 고구마 캐기를 먼저 하든 아무런 차이도 없으며, 그래서 장면의 연결 또한 중심 모티브와 무관한 장면들로 채워지기 일수였다.
그에 반해 '육남매 특집'에서는 다큐멘터리 자료를 활용해 장면과 장면이 연결되고 있으며, 게임 또한 59년 왕십리에 살았던 홀어머니와 육남매가 시장을 들렸다가 집에 돌아와 목욕을 하고 잠을 자기까지 하루 동안 있었던 시간의 순서대로 배열되고 있다. '춘향전 특집'의 경우 판소리와 한국화로 내러티브의 진행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그로 인해 이야기는 보다 조밀한 형태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최근 무한도전이 '캐릭터 중심에서 스토리 중심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결과이다.
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코미디를 하기 위해선 필요한 것은 출연자들의 연기력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출연자들이 캐릭터 연기를 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지만,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를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그외에도 역할에 걸맞는 연기를 해야만 한다. 근래 방영된 무한도전에서 콩트를 많이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캐릭터와 상황에 따른 역할이 만났을 때 어떠한 형태의 연기가 될 지 알아볼 수 있는 모델은 '정신감정 특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이코 드라마에서 박명수의 아들 역할을 맡은 노홍철은 평소 박명수가 즐겨 내뱉던 격한 말투를 그대로 연기해 큰 웃음을 주었다. 즉 아들이란 '역할'을 '돌+아이'란 그의 캐릭터대로 소화해 연기한 것이 주요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민서 엄마' 역할을 맡았던 유재석과 박명수가 진지한 연기를 펼칠 때는 웃음과 전혀 상관없는 정극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이는 무한도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기도 하다.
이 두가지 연기 패턴은 '육남매 특집'에서보다 '춘향전 특집'에서 보다 명확한 형태로 제시되고 있는데, 유재석을 '반장춘향'으로, 박명수를 '늙은춘향'으로 표현한 것이나 '박몽룡' 박명수와 '돌몽룡' 노홍철이 서로를 향해 '오랑캐'와 '상 것'이라고 비난하며 다툼을 벌인 콩트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 장면에서도 유재석은 진지한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이는 그가 비공개 코미디를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반전 드라마' 등에서 꾸준히 연기 경험을 쌓은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남매 특집'이나 '춘향전 특집'은 무한도전이 앞으로 펼쳐보일 새로운 코미디를 준비하기 위한 트레이닝 장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의 형태는 내러티브적 요소가 강화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김태호 피디가 밝혔듯이 보다 깊이 있고 오래 갈 수 있는 웃음을 주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무한도전의 이러한 시도가 지닌 실험적 가치는 그것이 현재의 문화적 트렌드를 역행하고 있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경제난으로 인해 문화의 전영역에 확산된 정신적 우울증은 단순한 멜로디가 반복되는 중독성이 강한 후크송을 유행시키기도 했고, 드라마로서 갖추어야 할 내러티브를 파괴한 채 말초적 감정만 자극시키거나 뮤직 비디오의 한 장면 같은 환상적 장면만 나열한 '막장 드라마'를 범람하게 만들기도 했다. 예능계에서도 비공개 코미디가 사라진지 오래이며, 개그맨들은 유행어를 히트시키는데 더 골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답답한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한 퇴행적 징후이며, 특히 내러티브의 파괴 현상은 우리 사회의 방향 상실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투명한 경제위기 속에서 현 정부가 내미는 장미빛 비전만을 믿고 삶을 목표를 정할 수 있는 사람은 바보 이외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그보다는 대중문화가 제공하는 아편을 먹고 잠시나마 현실을 망각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유익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김태호 피디가 제시하는 비전이 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지 분명해지지 않는가. 평범한 사람은 시대를 따라가려 노력할 뿐이지만, 비범한 사람은 시대를 거슬러 앞질러 가는 일에 골몰할 뿐이다.
by ddolappa
[참고자료]
1. 길, 이 못난 남자 캐릭터가 사랑받는 이유?
http://media.daum.net/entertain/topic/view.html?cateid=100029&newsid=20090513152109313&p=starnews
2. '무도' 김태호 PD, 출연진 질타 "언제까지 그 캐릭터로 할거야!"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90403124904294&p=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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