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69> 만국의 루저들이여, 단결하라!
무한도전 155회 090530 : 내조의 여왕 카메오 출연 / 손에 손 잡고 놀자
어느 투쟁의 기록
드라마 <이산>에 보조출연자로 출연한 이후 1년만에 무한도전 팀이 또 다시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김태호 PD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러브 하우스'에서 조연출을 맡았던 시절 연출자였던 김민식 PD에게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 달라"고 문자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된 것. 게다가 김민식 PD는 노홍철이 출연했던 시트콤 <레인보우 로망스>의 담당 연출자이기도 했다.
사실 이 드라마에는 이미 표도르, 김승우, 최양락 같은 수많은 스타 카메오들이 출연한 바도 있어 무한도전팀의 카메오 출연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다. 무한도전 측에서도 자막으로 언급한 것처럼 <이산> 이후 출연자들의 연기가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비교해보는 것을 시청 포인트로 삼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무한도전의 카메오 출연기는 연출자들 사이의 인맥에 의해 성사된 일종의 거래로서 시청자들은 예능 연기자들의 이색적인 정극 연기를 감상하거나 드라마 촬영현장에서 만난 배우들의 인간적 모습에서 재미를 발견하면 되는 거였다. 어차피 이벤트성 행사에서 거창한 연출의도를 찾거나 큰 의미를 부여해서는 곤란한 일이니 말이다.
이렇게 보면 드라마 촬영장 방문, '손에 손 잡고 놀기', 그리고 '장기하와 얼굴들' 패러디로 이루어진 방송 구성은 여러 날에 걸쳐 촬영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그냥 이어붙여놓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특히 '장기하와 얼굴들' 패러디는 조금 뜬금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무한도전이 원체 다양한 패러디를 시도하긴 했지만 장기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조금 주춤해진 상태에서 아무런 맥락없이 이루어진 패러디는 조금 생뚱맞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조금만 시점을 달리 보면 전체 에피소드들은 '루저' 코드에 의해 서로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내조의 여왕> 카메오 출연기를 노홍철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대본은 커녕 촬영조차 장담할 수 없었던 노홍철이 정극에 출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된다. 드라마 <내조의 여왕>이 '온달수'(오지호 분)가 '퀸즈푸드'의 정규사원이 되기 위해 펼치는 눈물 나는 적응기를 다루고 있듯이 무한도전은 노홍철을 내세워 드라마의 핵심적 주제를 반복한다.
무한도전 내에서 비정규직 신분인 길이 참여한 '손에 손 잡고 놀기' 편 역시 '루저'의 운명을 타고난 아웃사이더가 패배주의나 자기 부정에 빠지지 않고 특유의 뻔뻔스러움을 무기로 끈질기게 도전한 끝에 다른 출연자들의 무리에 속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노홍철이 드라마 촬영장에서 소위 '숟갈질'을 하는 행동이 길이 무한도전에서 하는 행동과 대체 무슨 차이점이 있단 말인가. 다시 말해, '온달수', 노홍철, 길은 하나의 동일한 운명을 타고난 비슷한 유형의 인물들이다. 제대로 된 사회적 안정망조차 없는 삶의 정글에 내던져진 채 뻔뻔스러움과 불같은 집념을 무기로 기득권자들과 경쟁을 펼치는 이야기는 마치 포개놓은 거울처럼 서로가 서로를 되비치고 있다.
<내조의 여왕>의 메인 감독인 고동선 PD의 전작이 루저문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메리 대구 공방전>이었고, 그 때의 정서와 문제의식이 <내조의 여왕>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무한도전에서 장기하가 거론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내조의 여왕>이나 <메리 대구 공방전> 속 인물들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지만 자신의 사랑이나 꿈만이 전부라 생각하고 돈과 현실을 부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물질적 조건에 매몰되지도 않은 채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면서도 사랑과 꿈을 간직하며 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인물들이다. 마치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 붙었다 떨어'져도 '바퀴벌레 한 마리쯤 쓱 지나가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고 읖조리는 장기하의 노래처럼.
이처럼 루저문화의 코드로 무한도전을 시청할 경우 나열된 에피소드들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양한 변주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하나같이 자기 몫을 갖지 못하거나 배제된 자들이 뻔뻔스레 자기 몫을 획득하기 위해 기득권자들과 벌이는 싸움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투쟁의 기록이라 불릴 만하다.
루저문화를 통해 루저문화를 넘기
"20대 루저들의 정서를 정제된 우리 말로 표현해낼 줄 아는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장기하는 '싸구려 커피'나 '달이 차오른다 가자'와 같은 노래로 희망 없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담담한 어조로 담아내 ‘인디계의 서태지’, '장교주'라 불리며 인터넷에서 크게 주목을 받아왔다. 장기하의 노래는 흔히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청년 빈곤층의 일상을 자조적으로 바라보지도 않고, '노 브레인'의 '청년 폭도 맹진가'처럼 혁명적인 제스처를 취하지도 않은 채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루저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마이너적 감수성을 공중파에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무한도전이 이런 장기하를 패러디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시기상으로 늦은 감이 없지도 않다.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리더 장기하와 미미 시스터즈
루저문화가 단순히 젊은 세대의 주변문화에 국한되지 않는 까닭은 그것이 대량실업의 공포와 희망 없음을 낙인처럼 지니고 사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 정서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더 많은 풍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거짓된 신념을 아무런 비판적 반성도 없이 내면화한 사회에서 경쟁에서 탈락한 패배자들은 비천한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승리자들은 잠시 동안의 승리에 도취될 겨를도 없이 언제든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공포에 떨며 살아간다. 즉 노동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무한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은 승리자나 패배자나 할 것 없이 불안, 공포, 우울, 열등감 등의 부정적 정서를 내면화하게 된다. 그래서 장기하는 자신의 노랫말에 나타난 정서를 "승패가 결정 안 된 사람들의 불안과 허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루저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그것은 자신이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자 주변에서 쏟아지는 멸시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수' 대신 '취업 준비생'이란 고상한 단어를 선택해 치장을 하기도 하고 자신을 매몰차게 내친 사회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루저문화가 정착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인데, 루저들 스스로가 자신을 루저로 인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루저들 사이에 연대의식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은 루저문화를 코미디의 소재로 삼으면서도 장기하와 또 다른 방향에서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 자신을 루저라고 고백하는 일은 솔직함을 넘어서 상당한 뻔뻔함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러한 뻔뻔함은 자기 몫이 아닌 것에 '숟갈'을 꼽고 덤벼드는 능력이기도 하다. 노홍철이나 길이 보여주는 뻔뻔함은 그런 점에서 루저 혹은 아웃사이더가 갖추어야 할 미덕이다.
드라마 <내조의 여왕> 연출자는 머리를 염색하고 수염까지 기른 노홍철과 같은 캐릭터는 정극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린다며 그의 출연을 극구 말렸는데, 극의 리얼리티란 우리 사회의 통념을 반영한 가치라는 점에서 곧 현실의 냉엄한 법칙이기도 한다. 즉 '퀸즈푸드'와 같은 대기업 면접에 노홍철 같은 인물이 응시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생각한다는 점에서 노홍철이 마주한 상황은 실제 현실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노홍철은 특유의 뻔뻔스러움과 불같은 집념으로 악착같이 매달린 끝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데, 이는 <내조의 여왕>이 코믹한 요소를 지닌 드라마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규칙을 사소하게나마 파괴시켰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노홍철의 행동은 업무능력과 상관없이 개인의 개성을 규제하고 있는 기업문화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손에 손을 묶고 논다는 설정도 흥미로운데 그를 통해 '무한이기주의'를 벗어난 '하나 됨', 즉 연대의식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개개인의 습관, 식성, 성격 등이 다 다르기 때문에 때로는 짜증나기도 하지만, 연대와 협동을 통해서만 그들이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은 "언론 노동자 총파업 방송장악 저지하자"라는 플랭카드가 걸린 MBC 현관을 비춘 장면과 연결시킬 때 그 사회적 함의가 분명해진다. '박명수의 기습공격' 편에서 나왔던 그 모습이 한층 더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MB악법'이라 불리는 언론관계법이 6월중 입법 예고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루저들, 즉 비정규직 근로자, 청년 실업자들, 외국인 근로자, 신빈곤계층, 사회적 복지의 혜택이 절실한 사람들, 차별받는 여성들, 과도한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청소년들 등에게 '뻔뻔함'과 '연대'가 미덕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이 도를 넘어설 정도로 뻔뻔스럽게 자기의 이득을 챙겨가고 있고, 그를 위해 지나칠 정도로 단합이 잘 되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시위 관련해 담당 재판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법관의 독립성'을 위반한 신영철 대법관은 명백한 탄핵 사유의 대상이 됨에도 불구하고 사퇴의사를 밝히지 않았는데 그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 지는 지난 13년간 지속되어온 삼성의 경영권 편법승계 의혹 사건이 그가 던진 한 표 차로 무죄판결을 받게 된 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 판결로 법원은 재벌에게 일정한 형식적 요건만 갖추면 합법적으로 경영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부자들이 더 부유해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정부, 공정한 판결보다는 돈과 권력의 쪽으로 기우는 정의의 칼을 휘두르는 법원, 5살짜리가 촛불을 들고 있어도 불법 행위라며 제지하는 경찰, 동네 슈퍼까지 진출해 서민들의 돈을 끌어모으려는 대기업,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보다는 가진 자들에 야합해 자신의 이득만 챙기려는 족벌언론. 이들이 형성하고 있는 막강한 기득권의 카르텔이 항상 너무나 뻔뻔스럽게 자신들에게 주어진 몫 이상의 것을 추구하면서 민주주의가 날로 쇠퇴하는 형국이 자금의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랑시에르는 사회에서 자신에게 할당되지 않은 몫을 사회적 약자가 요구하게 될 때 민주주의가 실천될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을 무한도전식으로 표현하면 '숟갈질'이고 그것의 사회적 결과는 민주주의의 진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MB정부가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근접한 임금지불이 필수적이며, 사회적 루저들이 제 목소리를 내서 사회적 안정망 확충을 요구해야한다. 그리고 그러한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손에 손을 묶고 노는 것', 즉 사회적 연대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루저문화를 만들어내는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루저문화를 통해 극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만국의 루저들이여, 단결하라!
지속 가능한 쇼를 꿈꾸며
'손에 손 잡고 놀기'에서 전진이 아닌 길이 다른 출연자들과 손을 묶고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전진의 손목 부상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긴 하지만, 최근 무한도전에 연이어 출연해 기존 멤버들 이상으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길이기에 그 상징성은 더욱 분명하다.
게다가 길이 전과정에 참여하며 다른 출연자들과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나 함께 식사를 했다는 사실도 '손에 손 잡고 놀기'를 길을 무한도전에 준고정 멤버로 받아들이기 위한 통과의례로 해석하게 만든다. 전진이 무한도전의 제 7의 멤버로 받아들여졌던 의식이 전진의 집을 급습해 자명종을 울렸던 사건과 베이징 올림픽 기간 중 정준하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함께 나누어 먹었던 것임을 상기해볼 때 이 에피소드를 통해 길이 무한도전에 정식으로 합류하게 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비록 팬들 사이에서 워낙 반발이 심해 공식적으로 그 사실을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길의 출연 이후 팬들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은 길 개인 차원을 넘어 기존 출연자들의 역할과 재능에 대한 광범위한 논쟁으로 확대된 추세이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재미없다, 누구 바꿔라가 아니라 같이 고민해보자"라는 김태호 PD의 바람과 달리 소위 '병풍' 역할에 불과한 일부 출연자들에 대한 가차없는 질타가 끊이질 않고 있다. 그런데 길을 둘러싼 무수한 논쟁의 핵심은 무한도전 제작진이 생각하는 쇼의 비전과 팬들이 생각하는 무한도전 사이의 의견대립이다.
우선 무한도전 출연진과 제작진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길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호의적이다. 유재석은 자신이 진행하는 쇼에 출연하는 후배들을 눈여겨 봐왔다가 이끌어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길의 경우도 노홍철이 <놀러와>로 처음 공중파에 입성한 뒤 무한도전에 참여하게 된 것과 같은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춘향전 특집' 편에서 정준하와 멋진 콤비 플레이를 보여준 길은 이번 특집에서 박명수와 '노찌롱급 환상의 사기 복식조'를 선보였고, 그래서인지 길에 대한 박명수의 평가도 상당히 후한 편이다. 그는 길이 하는 역할을 정형돈이나 정준하가 해줬어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는 기존 출연자들이 하지 못했던 역할을 길이 충분히 해주고 있다는 제작진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태호 PD 역시 "개인적으로는 길이 멤버들의 무뎌진 면을 긁어주는 것 같아서 좋다. 멤버들이 4-5년 같이 하면서 서로 유해진 부분이 있는데, 길이 거기에 자극을 준다."며 그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덧붙여 "<무한도전> 멤버정원이 6명이어서 누가 들어오면 누가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요즘에는 웃음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면 인원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더 오래 가는 방법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인원수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김태호 PD의 언급은 무한도전의 정예멤버는 하하를 포함한 원년멤버 여섯 명뿐이라는 팬들의 생각과 어긋나는 부분이다. 즉 길이 호감 캐릭터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 다른 출연자들의 역할 논쟁으로 심화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고정 출연자들의 수를 한정시키는 데서 출발한 문제 설정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길이 들어오게 된다면 누군가는 빠져야 한다는 논리가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렇다면 그 대상이 누구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출연자들 개개인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전진이 제7의 멤버로 안착한 것은 여섯이라는 숫자를 고집하는 논리를 다소 허망하게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따라서 어떤 멤버를 빼거나 넣거나 하는 논쟁은 사실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며 제작진이 어떤 의도를 갖고 길을 투입했는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푸는 첫 단서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김태호 PD가 가지고 있는 쇼의 비전이 납득할 만한 것이라면, 비록 심정적으로는 길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래서 고정 출연에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동의를 구할 수 있는 논리적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무한도전의 발전 방향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이 지금의 소모적 논란을 생산적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심슨가족>과 무한도전 버전의 <심슨가족>
"김태호 PD : <심슨가족>에서도 그 가족뿐만 아니라 그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야 재밌다. 그렇게 ‘<무한도전> 월드’를 확장시키고픈 마음이 있다. 이야기를 더 다채롭게 하려면 고정 출연자가 아니라도 유용한 인프라가 있으면 좋을 것 같고."
"김태호 PD : <무한도전>은 작가주의 예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PD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 영화 <배트맨>도 팀 버튼이 찍을 때와 크리스토퍼 놀란이 할 때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나. 그런 것처럼 <무한도전>도 지금 출연진과 제작진이라면 PD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김태호 PD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생명은 내러티브가 결정지을 것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런 점에서 그가 <심슨가족>을 언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89년 11월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심슨가족>은 현재까지 20시즌이 방송됐고, 21번째 시즌은 올 가을에 방영될 예정이고, 심지어 22번째 시즌도 2010년에 방송될 예정이다. 엽기적인 심슨가족이 이처럼 장기간 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정교하게 짜여진 캐릭터의 힘과 그들이 펼쳐보이는 다양한 이야기에 있다. 애니메이션 <심슨 더 무비>만 보더라도, 가족들 간의 사랑 이야기부터 환경보호같은 시사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의 진폭은 넓고 다양하다. 그러한 이야기 구성이 가능한 이유로 심슨가족 이외에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개성 강한 이웃주민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심슨가족과 관계를 구축하며 이야기의 매듭을 맺기도 하고 풀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심슨가족>은 무한도전이 지향하는 쇼의 비전을 예상해볼 수 있는 하나의 모델 역할을 한다.
즉 대한민국 예능의 역사상 가장 정교하게 구축된 6인의 캐릭터로 구성된 무한도전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룰 수 있는 서사의 가능성이 지금보다 더 넓어져야 하며, 따라서 쇼의 비전상 길과 같은 인력풀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충원된 인력들이 다른 오락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며 예능계 전체의 판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무한도전은 예능 시장의 선순환적 구조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팀 버튼의 '배트맨'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무한도전 월드의 창조자'로 알려진 김태호 PD는 팬들의 생각과는 달리 자신과 무한도전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거리를 취하고 있는데, 다른 연출자에 의해 제작된 다른 색깔의 무한도전이 가능하다는 그의 생각은 그가 무한도전을 평론가 강명석이 말했던 "슈퍼 히어로 만화의 초기버젼"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즉 팀 버튼판 <배트맨>이 고딕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면, 크리스토퍼 놀란판 <배트맨>이 보다 사실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던 것처럼, 지금과는 다른 이질적인 분위기의 무한도전도 가능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영화 <트루먼 쇼>에서 쇼의 창조자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 분)가 자신의 피조물 트루먼(짐 캐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 현재의 무한도전이 트루먼이 살던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간 이후의 이야기라 생각하는 김태호 PD는 보다 유연한 열린 사고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무한도전 제작진과 팬들 사이의 대립은 제작진이 쇼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 팬들은 과거의 좋았던 기억을 고수하는 데서 발생하는 소통장애현상이다. 새로 투입된 길의 캐릭터를 비호감이라 비난하는 것 역시 그가 무한도전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파괴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격렬한 양상을 띨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무한도전에 대한 고정관념들, 즉 정예멤버는 여섯 명뿐이라는 생각과 김태호 PD와 무한도전의 관계는 절대적이라는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 파괴되었거나 앞으로 사라지게 될 가치들이다. 다시 말해 무한도전이 더 이상 '대한민국 평균 이하 6인'의 캐릭터쇼가 아닌 것처럼 팬들이 생각했던 무한도전은 이미 그 곳을 떠나 새로운 세계를 향하고 있는 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란과 논쟁이 전혀 무의미하지만은 않은데, 그건 그들이 게시판의 조회건수를 높이는데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치열한 논의를 통해 무한도전의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즉 그들은 과거의 무한도전과 현재의 무한도전을 서로 비교하기도 하고, 출연자들의 역할과 관계에 대해 나름의 분석을 하는 가운데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고정관념들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수정하는 가운데 점차 김태호 PD가 제시한 비전을 수용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팬들의 의견이 쇼의 비전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쇼의 비전을 수정 보완할 필요성이 대두될 때뿐이며, 아직까지 무한도전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출연자 개개인에 대한 인물평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재의 논의 수준에선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의 토론 방향은 무한도전이 지속 가능한 쇼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형태를 갖추어나갈 것인가로 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태호 PD가 제시한 쇼의 비전이 잘못되었다고 판단된다면, 그것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보다 납득할 수 있는 또 다른 쇼의 비전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길에 대한 논의 방향 역시 전환되어야 하는데, 그가 호감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지극히 주관적인 문제이며 그의 캐릭터 이해 단계에 머무는 논쟁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캐릭터가 무한도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한 어떠한 관계를 맺게 될 때 무한도전에 유익함을 가져다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만일 내가 길의 캐릭터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면, 그것은 김태호 PD가 제시한 쇼의 비전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질문은 단 하나다. 당신이 생각하는 무한도전의 미래는 무엇인가?
by ddolappa
[참고자료]
1. 김태호 PD가 제시한 쇼에 비전에 대해서는 다음 글들을 참조할 것.
[FOCUS] <무한도전>│ 이것은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어떤 쇼도 아니다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06001000&article_id=48870
[FOCUS] <무한도전>│“우리와 너희들은 같이 간다, 그런 것을 확인시켜주고 싶다”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06001000&article_id=48871
김태호 PD│“우리가 매주 리얼하다고는 할 수 없다” -1
http://10.asiae.co.kr/Articles/view.php?tsc=002004000&a_id=2009052608242938203
김태호 PD│“<무한도전>이 작가주의 예능이 됐으면 한다” -2
http://10.asiae.co.kr/Articles/view.php?tsc=002004000&a_id=2009052611152412565
2. 무한도전팀이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 출연하게 된 계기.
[이제는 말할 수 있다⑥]'무한도전'도 끌어들인 '내조의 여왕' 인맥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90520185158422&p=Edaily
3. '장기하와 얼굴들'와 루저문화에 대해서는 다음 글들을 참조할 것.
[서병기의 대중문화비평]대중문화속 당당한 ‘루저문화’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04/09/200904090306.asp
[루저문화] 한국 루저는 서구 루저와 다르다
사회 안전망 거의 없어 루저는 있어도 루저문화 형성은 어려워
http://weekly.hankooki.com/lpage/coverstory/200902/wk20090211095155105430.htm
´장기하와 얼굴들´ 루저 문화의 허구성
http://www.dailian.co.kr/news/n_view.html?id=149579&sc=naver&kind=menu_code&keys=4
“싸구려 커피 마셔도 별일 없이 산다”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03
4.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현재 몇 시를 가르키고 있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기사들
[申 대법관 '촛불' 의혹] '대법관 중도 사퇴' 초유 사태 오나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307024306943&p=hankooki
['에버랜드 CB' 무죄확정] "주주배정 방식 발행…회사 손해 아니다"
http://media.daum.net/economic/industry/view.html?cateid=1038&newsid=20090529181308417&p=seouleconomy&RIGHT_COMM=R12
삼성 경영권 승계 무죄‥'법 굴레' 벗었지만
http://media.daum.net/economic/view.html?cateid=100000&cpid=98&newsid=20090530225105275&p=imbc
'뉴타운' 정몽준 항소심도 벌금 80만원
http://media.daum.net/politic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528154911932&p=yonhap&RIGHT_POL=R7
`BBK 의혹' 김경준 징역8년 확정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528143715419&p=yonhap&RIGHT_COMM=R7
검찰 ‘살아있는 권력’ 수사, 천신일서 마무리하나
한상률, 김정복, 이종찬 등 ‘성공 못한 것으로 봐’
http://news2.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80016
"서울광장 사용, HID는 되고 노무현은 안되나?"
서울시 盧 추모행사 불허에 네티즌 항의 빗발쳐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157619
5살 꼬마가 든 ‘盧추모 촛불’이 불법?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61519401&code=940100
“명박 때문에” 외친 시민 벌금 7만원
당사자 3명, 18일 정식재판 청구…"걱정되지만, 잘못 한 게 없어"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3845
[盧 전대통령 국민장]"영결식장에 '노란물건' 금지?!"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01&newsid=20090529102818102&cp=
영결식 틈타…용산 재개발 건물 명도 강제 집행
29일 새벽 강행…"항의하던 문정현 신부 등 폭행"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29093222§ion=03
강제철거 盧 전대통령 분향소 가보니..
http://photo.media.daum.net/photogallery/politics/no_0523/view.html?photoid=4484&newsid=20090530144405058&p=akn
경찰, "빈소 강제철거는 일선의 실수'
http://photo.media.daum.net/photogallery/politics/no_0523/view.html?photoid=4484&newsid=20090531145006542&p=yonhap
경찰, 분향소 철거 감찰 조사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602223304332&p=imbc
‘PD수첩’ 촛불 강경진압에 시청자 경악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는 없다?”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90603124804304&p=newsen
“한국인, 정부 反부패정책 불신 심각”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603192506187&p=segye&RIGHT_COMM=R10
[여적]비정규직 임금차별
http://issue.media.daum.net/editorial/yeojuk/view.html?issueid=2625&newsid=20090528183923802&cp=khan
법원 "비정규직 차별임금 차액 지급해라"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0004&newsid=20090528084610948&p=yonhap&RIGHT_SOC=R8
최저임금도 못받는 노동자 올 들어 220만명 넘어섰다
전체 노동자의 13.8% 달해
비정규직 임금격차도 ‘최대’
http://media.daum.net/society/welfare/view.html?cateid=1066&newsid=20090603232805248&p=khan&RIGHT_COMM=R12
5만원 대 1천원…감세혜택 ‘부익부 빈익빈’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603194008260&p=hani
서민 죽을맛 부자만 살판‥최악의 한해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view.html?cateid=1041&newsid=20090521061009557&p=yonhap&RIGHT_COMM=R6
"124명 시국선언? 서울대 교수가 몇분인줄 아냐?"
청와대, 교수들 움직임 일축... 임채진 사표는 '만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48839
李대통령 '마이웨이 선언', 정국 대파란
"국면전환용 인사 안한다", 미디어법도 강행 처리 방침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51088
5. 정부의 언론 장악 기도와 관련해선 다음 글들을 참조할 것.
미디어법, 또 누구를 죽이려 하는가?
http://blog.daum.net/21konan/15854539
방통위, 정부 비판 언론 ‘광고’로 통제하나
‘아름다운 인터넷 세상 만들기’ 공익 광고 MBC만 제외 논란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2289
국회 ‘뉴스통신진흥법’ 통과 이후…
연합뉴스 중립성 보장 문제 대두
민영통신사선 “헌법 소원” 반발
http://media.daum.net/society/media/view.html?cateid=1016&newsid=20090505174605415&p=khan
미디어위원회, 뻔히 보이는 '쇼' 그만하라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90507164503579&p=ohmynews
<민언련 성명 전문>뉴스통신진흥법 개정안, 졸속처리 안 된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423172407271&p=newsis
“필요성 공감…공정성 검증 기구 설치해야”
http://media.daum.net/society/media/view.html?cateid=1016&newsid=20090422153009806&p=journalist
뉴스통신법 비공개 간담회, 사실상 '밀실협상'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090416194005944&p=newsis
정부, 연합뉴스 뉴통진-MBC 방문진 '이중 잣대' 적용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403143807053&p=newsis
연합뉴스도 낙하산 경계령?…차기 진흥회 이사장에 MB캠프 특보 임명설
http://media.daum.net/society/media/view.html?cateid=1016&newsid=20081021173412754&p=khan
“연합뉴스, 정치적 독립성 확보는 지상과제다”
http://media.daum.net/society/media/view.html?cateid=1016&newsid=20081019111308288&p=media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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