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475회
- 퍼펙트 센스 2탄(2016.04.09)
무한도전이 직면한 딜레마
현재 무한도전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어쩌면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난 10년간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무한도전 위기설'의 일종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와 달리 함께 난관을 극복해왔던 멤버들은 노쇠해졌고, 그나마 절반 가량이 이런저런 이유로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없는 상태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을 공중파에 정착시키고 샘솟는 아이디어와 패기로 수많은 실험들을 감행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한 프로그램 안에 수많은 방송 채널을 거리리고 있는 '마이 리틀 텔레미전'과 같은 혁신적인 프로그램이 등장한 지금, 무한도전은 어딘가 진부하고 노후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언젠가부터 무한도전이 외부 게스트들을 중심으로 한 특집을 자주 진행하는 것도 이러한 위기와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처 방식에는 또다른 약점이 있는데, 그것은 무한도전이 더 이상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충돌하는 데서 재미를 주던 '캐릭터쇼'로서의 재미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팀을 이탈한 멤버들의 복귀가 요원한 현재로서 무한도전은 계속해서 게스트를 활용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평범한 버라이어티 쇼의 하나로 물러날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게스트의 활용과 캐릭터 쇼로서의 정체성 유지는 병립할 수 없을까? '퍼펙트 센스 특집'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으로 주목해볼 만하다.
양세형, 새로운 해답을 제시하다
지코와 양세형이 게스트로 초대된 이번 특집에서 양세형은 처음부터 스스로를 '관심병과 허언증'이 있는 캐릭터로 규정하고 프로그램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는 유재석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의 도움없이 스스로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등장한 최초의 게스트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초기에 설정된 이러한 캐릭터 위에 재치있는 입담과 감각적 개그 센스를 덧입히자 그의 개성은 도드라지게 눈에 띄었다.
양세형은 캐릭터쇼로서 무한도전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등장 초기에 설정한 그의 캐릭터는 그가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즉, 양세형은 무한도전을 캐릭터쇼로 이해했고, 그에 맞는 역할 연기를 함으로써 앞서 제기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모범 답안을 제시한 것이다. 기존의 다른 게스트들이 무한도전에 출연해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고, 그것을 활용했던가를 지코를 통해 살펴 보면 양세형의 장점이 선명히 부각된다.
지코, 게스트 활용의 평균치
지코는 그 이전 에피소드인 '힙합의 신'에서 'MC민지' 정준하에게 힙합을 전수하는 스승 역할로 출연한 바 있다. 지코는 이번 에피소드에서 걸그룹 여자친구와 최현우 마술사의 금발의 미녀 도우미를 보며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아이돌로서 정체성 사이에서 흔들리는 눈빛을 보였고, 그 모습을 포착한 유재석에 의해 반복적으로 놀림감이 됨으로써 하나의 캐릭터를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획득된 캐릭터는 동일한 상황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도 아니고 또 캐릭터 역할로 소화될 여지가 적기 때문에 일회적으로 소비되고 만다.
지코는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선보였던 오달수와 김래원의 성대 모사도 반복했다. 이 역시 그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하지 못하고, 그가 기존에 보여왔던 모습을 단순히 소비하는데 그치고 만다. 다만 지코의 성대 모사는 프로그램 구성상 정종철의 성대 모사와 '진짜 목소리 찾기'를 이어주는 브릿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뿐이다.
광희, 게스트와 멤버 사이
방송 초기에 카메라는 지코의 모습과 그를 시기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광희의 모습을 자막과 클로즈업으로 반복적으로 비춤으로써 광희를 잘 나가는 후배를 질투하는 캐릭터로 설정한다. 광희 역시 지코에 대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진술하는데 꺼리낌이 없는데, 문제는 '힙합의 신'에서 지코가 등장한 이후 줄곧 계속되어온 이러한 관계 설정이 그리 재미있지도 않고 프로그램 구성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는데 있다. 이미 무한도전 내에서 박명수는 '1인자' 유재석을 질투하는 '세계 최고의 2인자' 캐릭터를 선보인바 있고, 그것이 웃음으로 소비될 수 있었던 까닭은 시청자들 모두 유재석이 박명수가 뛰어넘기 어려울 정도로 우위에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희가 후배 지코를 질투하는 모습은 광희가 같은 그룹 멤버인 임시완이나 박형식을 질투하는 것과 성격을 달리한다. 과거 광희는 같은 멤버들에 대한 질투를 통해 덜 알려진 그룹 멤버들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하지만 과거 후배 지코가 자신보다 연예계 내에서 등급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무시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코가 자신보다 잘 나가는 연예인이 되었기 때문에 질투의 대상이 된다는 설정은 한편으로 광희가 후배 지코의 성공을 축하하는 나름의 방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수용이 가능하려면 우선 그들 사이가 허물없는 교류가 가능할 만큼 친밀한 관계라는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코에 대한 광희의 질투는 웃음으로 소비되기는커녕 광희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
광희가 무한도전의 새로운 멤버로 발탁된지 벌써 수개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의 캐릭터가 종이인형, 질투하는 캐릭터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게다가 그가 무한도전 내의 다른 멤버들과 거의 아무런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못한 것 역시 '그 전 녀석' 길보다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주된 근거가 되고 있다. 적어도 길은 동갑내기 친구 정형돈과는 '뚱스'로, 하하와는 예능 스승과 제자로 관계를 맺고 그를 통해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광희가 무한도전 내에서 멤버들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하다 보니 그의 역할은 게스트 정도에 머물고 만다. 광희가 걸그룹 여자친구가 뽑은 좋아하는 연예인 1위였지만 그것은 여자친구가 데뷔한 초기에 많은 연예인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사실을 유재석의 중재를 통해서만 시청자가 알게 된다는 점은 이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적어도 무한도전 내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쇼 호스트 유재석의 도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 그러한 사실을 이용해 웃음을 만들어 낼 수준까지 도달해야 한다.
캐릭터는 관계다
양세형이 보여준 새로운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선보인 캐릭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스스로 설정한 그러한 캐릭터는 다른 멤버들과 유기적 관계를 맺는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가령 끊임없이 성대모사를 늘어놓는 정준하를 두고 유재석과 박명수가 타박을 하며 만들어지는 웃음은 '바보형' 정준하의 캐릭터를 근간으로 한다. 또한 유재석의 어설픈 한석규 모사를 놓고 하하가 과잉 칭찬하는 장면이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까닭은 '무한재석교'로 유재석과 하하가 맺고 있는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무한도전의 게스트 활용이 단발성으로 소비되지 않으려면 게스트들의 캐릭터 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이 멤버들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결과적으로 멤버들의 새로운 캐릭터를 발견해내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한도전의 게스트 활용이 캐릭터쇼로서의 성격을 해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성공적인 게스트를 반복적으로 등장시켜 무한도전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것이 오히려 쇼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by ddol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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