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479회
- 무한상사 2016 1탄(160507)
백조의 노래
백조는 죽을 때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는 전설이 있다. 키그누스(Cygnus)가 친구의 죽음을 너무도 슬퍼하자 신들은 그를 백조로 만든다. 이 백조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순간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숨을 거둔다. 이번 무한상사 편을 시청한 후 백조의 전설이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다. 멤버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제작진이 아껴둔 카드를 커내들 수록 그들의 빈 자리가 더욱 도드라지는 역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정형돈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길과 노홍철이 불미스러운 사고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액션 블록버스터 무한상사는 풍성한 캐릭터들로 더욱 흥미로운 쇼가 되지 않았을까. 얼마전 김태호 PD가 인스타그램 통해 제작자로서 부담과 불안감을 표출한 것이나, 유재석이 꽁트 중 전화 통화를 통해 인원 부족을 토로한 것은 이런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더욱 배가시키는 증거들이다. 젝스키스와 함께 했던 토토가 시즌2의 성공으로 대중들의 관심이 더욱 뜨거워진 지금 어쩌면 무한도전은 자신의 온 힘을 쥐어짜내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찬란히 피워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라진 중구난방식 토크
과거 무한도전의 토크와 꽁트는 각양각색의 캐릭터들이 쏟아내는 통제불가능한 에너지를 웃음의 원천으로 삼고 있었다. 한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를 공격하고, 또 다른 캐릭터들이 이 전쟁에 참여해서 판이 커지게 되면, 쇼는 어느새 유재석도 정리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하게 되고, 그런 난장이 무한도전만의 특색있는 웃음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번 방송에서 선 보인 콩트에는 캐릭터들 간의 시너지 효과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사건이 유재석을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유재석과 박명수가, 유재석과 정준하가 콩트를 하는 순간 나머지 멤버들은 추임새만 간간히 넣을 뿐 그 안에 개입해서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박명수의 오파상 개그나 말장난은 그가 갖고 있는 희극인으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지만, 그것이 예전처럼 그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거나 새로운 상황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은 단순히 하하가 방심했거나 광희가 무능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예전에도 무한도전의 콩트는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가 주축을 이루고, 나머지 멤버들이 가세해 디테일한 부분을 채우면서 풍성해지는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지금은 주축 멤버 셋을 빼면 콩트에 능하지 못한 하하와 광희만 남게 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여전히 오디션 중인 광희
무한도전의 변화무쌍한 포맷은 이 쇼에 참여하는 출연자에게 다양한 재능을 요구한다. 춤과 노래는 기본이고 간단한 콩트는 소화할 수 있는 연기력은 물론 작문 능력까지 갖고 있어야 한다. '인사평가서'를 작성하는 장면은 '뉴질랜드 특집'의 롤링 페이퍼나 '가능 소풍 특집'의 동시 쓰기 등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언어에 대한 감각은 예능인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다. 박명수는 흔히 말실수를 통해 웃음을 주는 코미디언으로 인식되지만, 유재석과의 콩트에서 그가 쏟아내는 다양한 분야의 풍부한 어휘들은 그의 상황극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모노드라마'를 관객들의 귀를 막고 하는 드라마로 정의하는 부분은 그만의 독보적인 언어 감각을 내보인 장면이다.
양세형 역시 감각적인 말 장난을 선보였는데, '다보스 포럼'을 '(모두) 다~ 보스(인) 포럼'으로 해석하거나 '딱밤'의 영어식 표현을 '댓뱀'으로 바꿔부른 장면은 그의 순발력이 돋보인 장면이었다. 그중 으뜸은 '사기꾼'을 '사람을 사귀기 위한 꾼'으로 정의한 것인데, 이 표현은 '영업은 사기다'라는 명제를 설득력있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나름의 통찰도 담긴 표현이라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이런 점에서 김태호 PD가 광희에게 형들과의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독후감 숙제를 낸다는 인터뷰 기사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광희는 '나쁜 기억 지우개' 등에서 상대의 말을 이해하거나 상황을 파악하는데 애를 먹는 모습을 종종 보이곤 하는데, 이번 에피소드에서도 광희는 인사 평가서를 작성하라는 요청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해 유재석의 지적을 받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대한민국 탑클래스의 예능인들이 모여 11년 간이나 진행해온 쇼 프로그램에 고정 멤버가 된 지 불과 1년밖에 안 된 청년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곤란한 일인지 모른다. 정형돈이나 길도 프로그램에 적응하는데 4-5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인력난으로 프로그램이 위기에 봉착한 이 순간이야말로 광희가 대중들로부터 정식 멤버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김은희 작가마저 감지할 정도로 머뭇거리고 망설이는 태도는 프로그램에는 물론 광희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광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넉넉해 보이지는 않는다.
언제까지 재능을 갈아넣어 프로그램을 만들 것인가
사실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가 콜라보 작업에 참여하기 이전에 무한도전은 영화 제작진과의 협업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김태호 PD는 류승완 감독을 영입해 그가 무한도전 멤버들을 활용해 영화를 찍고, 자신은 그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서로 간의 조율 실패로 기획 단계에서 중단된 프로젝트이긴 하나 다양한 협업을 통해 예능의 영역을 확장시키려는 무한도전의 의도만큼은 값진 것으로 남았던 시도였다. 그리고 블록 버스터 무한상사는 그 때 중단된 실험이 다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처음의 기획 당시 김태호 PD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출연한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기를 희망했었다.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이 스크린까지 진출하게 된다면 관객수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의미있는 일일 수 있었다. 그러나 매주 빡빡한 촬영 일정을 소화해야만 하는 제작환경에서 그러한 시도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일 것이다. 그 대신 김태호 PD는 '놈놈놈 특집'이나 '좀비 특집' 등에서 영화적 화면 구성이나 편집을 통해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여기서 하나의 가정을 해보도록 하자. 만약 무한도전에 충분한 시간적 여건만 허락한다면, 그래서 우리가 그 동안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장면이나 시도를 볼 수 있게 된다면, 과연 그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무한도전이 처음 등장해서 우리 나라의 대중 문화 지형도를 바꾸어나갔던 것처럼 또 다른 파급력을 우리 삶에 발휘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무한도전과 라디오스타를 빼놓고 MBC에서 볼 만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 또 예능 PD들이 대거 사직서를 제출하고 떠나는 상황에 직면한 MBC 입장에서 1년에 불과 3개월의 시간도 무한도전에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예전같지 않다고 판단되면, 장수 프로그램이던 놀러와를 없앴듯이 순식간에 무한도전을 폐지시킬 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나 파급력보다는 광고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것만이 지상 최대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11년 넘게 무한도전 제작진은 매주 영혼을 갈아넣으며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그들의 재능이 고갈되서 껍질만 남게 되면 미련없이 버려질 그 순간을 기다리며 미련하고 우직하게 그들의 고행은 계속될 것이다. 방송국도 시청자도 무한도전에게 1년에 불과 3개월의 준비기간을 허락하는게 그렇게 못마땅하고 불쾌한 일인가?
by ddol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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