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486회
- '오늘 뭐 하지?' 2탄, 릴레이툰 3탄(160625)
게임 지옥에 빠지다
LA행의 좌절로 인해 즉흥적으로 떠난 이른 바캉스로 2주 분량의 방송을 만들어 낸 것은 분명 무한도전의 저력을 입증할 만한 일이다. 지난 방송은 잠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경험하게 되는 사소한 사건들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재미를 안겨주었다. 반면 펜션으로 자리를 옮긴 이번 방송은 동일한 여행이지만 협소해진 공간과 하루 동안 축적된 육체적 피로 탓인지 지난 번과 같은 재미는 부족했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개미지옥과 같은 돌림판 게임이다.
단체여행에서 실수로 구입한 라면을 마트에 놓고 온다든지 생수를 빼놓고 사지 않은 일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다. 일상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마트로 다시 직행하는 게 상식적 행동이지만 예능에서는 그런 상식적 절차를 밟기 위해 게임을 한다. 그 결과 가장 맏형인 박명수가 마트 심부름을 가야 하는 상황이 일어난다. 물론 그로 인해 박명수가 동행하게 된 정준하와 함께 '하와 수'를 되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번 방송 내내 모든 상황이 게임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펜션 주인으로부터도 결정권자로 인정 받은 유재석은 처음부터 게임에 과도한 집착을 보여왔다. 다행히도 지난 방송에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들이 끼여들어 그 사실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펜션이라는 한정된 공간은 그것이 갖고 있는 단점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그 결과 게임은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하나의 계기가 아니라 방송 분량을 억지로 만들어 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강박관념의 결집체로 보이게 했다.
다행히 여행 내내 최악의 수에 걸렸던 박명수가 '불운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것이나, 가장 마지막으로 펜션을 떠나야 했던 정준하가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의 코디도 태우지 않고 무작정 차를 출발시킨 것과 같은 예상 밖의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예능에서 게임은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계기일 뿐 그 자체로 순수하게 즐거움을 주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게임 자체의 순수한 즐거움을 주기 위해 방송이 제작되는 것은 E-sports와 같은 게임 방송에 한정되며, 무한도전은 정준하의 지적처럼 게임 방송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유재석의 과도한 게임 사랑은 조금 절제될 필요가 있다.
협업은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이다
드디어 릴레이 툰의 첫 회인 하하와 기안84의 '30년 후의 무도'가 공개되었다. 만화책은 익숙하지만 웹툰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시청자들이 흥미를 갖게 할 만큼 제작 과정 자체는 나무랄 데 없었다. 종이가 아닌 태블릿PC로 작업하고, 수정과 채색 작업도 그 즉시 이루어지고, 심지어 움직임과 소리까지 삽입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횡스크롤로 그림을 본다는 점에서 웹툰은 만화에서 출발했지만 그것과 또다른 독립된 장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더빙 과정에서 발연기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 김태호 PD의 목소리 연기를 시청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문제는 하하와 기안84의 결과물인 '30년 후의 무도'가 기대했던 만큼 혹은 예상했던 대로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릴레이 툰' 첫 회가 주었던 즐거운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시청자들이나 하하의 시나리오에 불안함을 느꼈던 시청자들 모두 이미 공개된 내용이 전부였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큼 허탈한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미 '아재감성'을 지적당했던 하하는 그것을 세련되게 순화하는 대신 그것을 더욱 노골적으로 밀어붙여 자신의 환타지를 완성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 그의 웹툰에서는 8,90년대의 홍콩 누아르 영화에서 보았을 법한 클리세로 가득했다. 몰락한 친구들을 돌보고 그들 대신 자신을 희생하는 의리나 '우리는 하나다'와 같은 대사들, 불길 속에서도 여유를 잊지 않고 휘파람을 부르는 태도 그리고 오우삼 감독의 비둘기. 이런 결과는 하하가 기안84와 공정한 협업을 하는 대신 그를 자신의 환상을 구현시킬 조력자로 종속시킨 결과다. 기안84는 하하의 '아재감성'을 계속 지적했지만 하하의 묵살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 그로 인해 하하는 자신을 세련되게 포장할 기회를 잃게 된 것이다. 하하의 '아재감성'을 조롱하는 역할을 캐릭터들 중 하나에 부여했어도 이렇게 촌스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하가 재해석한 무한도전 멤버들의 캐릭터 역시 전혀 새롭지 않다. 박명수의 EDM 사랑, 정준하의 식탐, 광희의 성형, 심지어 몰락한 유재석조차 현실에서 그의 지위를 더욱 부각시킬 뿐이다. 게다가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다른 멤버들을 추락시키는 전략을 선택한 하하는 지나친 인격모독이라는 논란마저 유발시켰다. 사실 조롱과 비꼼을 주특기로 하는 코미디라는 장르에 어느 정도의 인격모독은 항상 수반되며, 따라서 윤리적 기준만으로 코미디를 판단하려 할 경우 장르 자체가 부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하하의 진짜 문제는 전 방송에서 이미 지적되었던 것처럼 멤버들의 개성을 자신이 갖고 있는 도식 안에 가두어놓고 고정시켜버렸다는 데 있다. 시청자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건 전혀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멤버들의 고정된 캐릭터를 이용하려 했다면 새로운 상황 속에 그들을 위치시켰어야 하는데 하하의 웹툰에는 인상적 장면들의 병렬적 나열만 있을 뿐 스토리의 흐름이 부재한다. 여기서 지난 방송에 선보인 이말년의 '명수 알에서 나온 명수 새'와 비교해 보면 하하의 단점이 더욱 선명해진다. 이말년의 웹툰에서도 박명수의 외모를 비하하는 부분(적은 머리숱과 새의 머리)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은 인터넷 문화의 소위 '병맛 코드'를 보여주는 요소로 해석되면서도 짧은 컷 안에 참신한 스토리를 담아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결과적으로 하하는 기안84와의 작업에서 과도한 자기주장 때문에 자신이 얻어야 할 것을 놓쳤다. 차라리 그가 배우는 자세로 임했더라면 결과물의 질도 한층 나았을 것이다. 또한 하하가 다른 멤버들을 추락시켜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전략 대신 과거 노홍철이 'PD 특공대'에서 보여준 것처럼 자신을 신격화하는 방식을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멤버들은 하하를 거울 삼아 웹툰 작가들과 진정한 협업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by ddol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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