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487회

ddolappa 2016. 7. 3. 18:13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487회
- '유재석 VS 박명수로 살기', 릴레이툰 4탄(160702)

 

 

 


 변화가 필요한 시점

 

       유재석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박명수로 살 것인가. '바보 전쟁-순수의 시대' 촬영 당시 하하가 던진 작은 질문에서 시작된 이번 특집은 두 인물이 그 동안 무한도전을 통해 쌓아온 확고한 캐릭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에피소드이다. 하지만 누구나 선뜻 유재석의 삶을 선택할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는데 이 질문의 묘미가 있다. 즉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쥔 '1인자'의 삶은 선망의 대상이지만, 유재석처럼 금욕적이고 피곤할 정도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수도승과 같은 삶을 살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또 못생긴 외모로 종종 놀림감이 되기도 하고 평생 '2인자'란 수식어가 따라 붙지만 보다 자유롭고 막말을 하더라도 웃음으로 용납될 수 있는 박명수의 삶이 유재석의 삶보다 결코 덜 매력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보통의 삶이 이상과 현실 간의 간극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듯 대중의 욕망 역시 유재석과 박명수 사이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두 멤버들에게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제작진이 기존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방향을 선택한 것은 아쉽다. 방송국 출근길에서 만나는 시민들과 스태프를 대하는 유재석과 박명수의 태도 차이는 매주 '해피투게더'를 촬영하러 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또 운전 초보들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장면 역시 예상됐던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다. 벌써 몇 주 전에 SNS를 통해 공지되었던 에피소드치고는 주제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지난 10년간 '유느님'이라 불리며 식당에서 티슈 3장만 사용해도 '과소비'로 회자될 정도로 미담이 넘치는 유재석의 이미지는 이제 조금 식상해진 감이 없지 않다. 연예인 브랜드 평판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하던 유재석이 최근 이경규에게 1위 자리를 내준 것도 일시적 변동이긴 하나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동안 변화한 예능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던 이경규가 끊임없이 변화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끝에 거둔 값진 성과이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초창기에도 유재석과 다른 멤버들 간의 격차가 있긴 했지만 권력 관계의 변화 가능성이 있었던 반면, 그 관계가 '최고 권력자' 유재석을 중심으로 고착된 지금 관계의 역동성은 거의 사라지고 고정된 캐릭터의 반복적 소비만이 남게 되었다. 이것은 유재석 개인에게나 무한도전에게나 결코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유재석이 무한도전의 심장이라면 그것이 뛰도록 해야지 가두어 두어선 않된다.

 

 

 프로그램의 제작자들과 그들이 만든 쇼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방송에서 주목받은 이는 주인공인 유재석과 박명수가 아니라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진이었다. 지난 주에 이어 웹툰 더빙에 참여해서 희대의 발연기를 선보인 김태호 피디는 말할 것도 없고, 박명수의 스파르타식 운전 교습 때문에 잔뜩 기가 죽은 모습을 보인 장우성 피디나 수줍지만 엉뚱한 매력을 발산한 김부경 피디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프로그램을 제작하지만 실제의 삶은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는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쇼에 참여해 예능인 못지 않은 개그감각을 선보였다.

 

      박명수의 아바타로 지원한 박창훈 피디는 말주변 없고 소심한 성격 탓에 박명수의 황당한 요구에 적지 않게 당황했지만, 이를 노련하게 잘 받아준 권석 부국장과 자연스러운 합을 이뤄 웃음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유재석의 조종으로 '진짜 사나이' 제작진을 찾아간 박명수에게 끈질기게 방송 출연 지장을 받아낸 제작진의 집요함과 센스도 돋보였다.

 

 

 

      늘 화면 바깥에 머물러 있던 제작진이 쇼 프로그램 안에 들어와 주목받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무한도전 초창기 '최 코디'나 '권 실장' 등이 제 7의 멤버로 거론될 만큼 대중들의 인기를 누렸고, 김태호 피디는 연예인 못지 않은 스타 감독으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럼에도 이번에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비록 일반 회사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복장과 분위기 속에서 근무하지만 제작진들은 조직의 일원으로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는 샐러리맨들이라는 사실이다. 직장 상사의 눈치를 살피며 부족한 제작비로 실랑이를 벌여야 하고, 계속되는 편집과 자막 작업으로 햇볕 한 번 쬐기 어렵지만 내일의 국장을 꿈꾸며 오늘을 견디는 그들의 평범한 일상은 화려한 연예인의 삶과 대조를 이루어 눈길을 끌었다.

 

      이 대목에서 정말 궁금해지는 건 김태호 피디 같은 창조적 인물이 그런 조직 문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또 어디서 창조적 아이디어를 얻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30년 후의 무한도전만큼 궁금한 건 그가 그리고 있는 자신의 미래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그도 일선에서 물러나 방송국 국장이 되서 제작보다는 관리에 집중하는 삶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능력 있는 피디들처럼 방송국 바깥으로 나가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될까? 자신의 예상 대로 살아지는 삶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의 답변을 듣고 싶다.

 


 릴레이 웹툰을 어찌할 것인가

 

      지난주 하하와 기안84의 웹툰을 이어받은 양세형과 이말년은 하하의 설정을 부수기 위해 그것이 30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였다는 설정을 제시한다. 그리고 무한도전의 자리를 놓고 기존 멤버들과 에이스들로 구성된 로봇 멤버들이 대결을 펼치게 된다고 제시한 채 마무리짓는다.

 

      양세형과 이말년이 그린 '무한도전 최후의 날'은 총 47컷 중 30여 컷이 하하의 설정을 부정하는데 소요되었고, 나머지 15여 컷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전개하는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스토리를 이어받아 릴레이로 웹툰을 제작해야 한다는 설정이 일종의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더라도 앞선 팀에서 전개된 스토리 라인을 어느 정도 이어받아야 하기 때문에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는데 제한이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말년이 보여주었던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사라지고 기존 이미지의 반복과 강화만 나타나게 되었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릴레이 웹툰'의 상황은 광희를 무한도전 멤버로 뽑았던 '식스맨'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참신한 인물들로 잔뜩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가 마지막 순간 후보끼리 투표를 하게 만듦으로써 모든 선택의 책임을 후보들에게 미루었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웹툰 작가들 역시 무한도전과 나름대로 하고 싶은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협업에 응했겠지만 지금 상황은 수준 낮은 작품 생산의 책임을 그들이 고스란히 떠맡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차라리 릴레이 방식이 아니라 작가들의 창조성을 최대한 보장해서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품화해서 평가받도록 하는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앞선 설정에 제한 받고 또 촉박한 일정에 쫓기면서 협업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작품질도 유지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장에 양세형과 이말년의 웹툰에서 그림상의 혹은 스토리상의 참신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들이 재현하고 있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캐릭터에는 새로운 점이 있는가?

 

      '릴레이 웹툰'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또 어떤 평가를 받게 될 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사려 깊지 못한 제작진의 판단만큼은 분명히 지적되어야 할 것 같다. 작가가 창조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참신한 무엇인가가 나오리라는 헛된 기대를 시청자들이 품게 만든 건 전적으로 제작진의 실수이기 때문이다. '릴레이 웹툰'의 진정한 핸디캡은 출연자들의 부족한 그림 실력이 아니라 제작진의 잘못된 구성에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by ddola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