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494회
- 캘리포니아 LA 특집 2탄(160820)
시의성이 돋보인 도산 안창호 특집
과거 무한도전을 다양한 특집을 통해 역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해 왔다. 고궁 탐방을 통해 조선 500년의 역사를 살핀 '궁 밀리어네어 특집, 미스테리 스릴러 형식으로 독도 문제를 다룬 '스피드 특집', 아이돌 멤버들을 대상으로 역사 수업을 진행했던 'TV 특강', 그리고 하시마섬과 우토로 마을을 조명해 일제 징용 문제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킨 '배달의 무도' 등.
이번에는 미국 LA로 건너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 남긴 족적을 추적하는 한편, 그의 가족들과의 만남을 통해 독립 운동가 가족들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71주기 광복절을 건국절로 폄하시키려는 준동이 계속되고, 유명 연예인들의 역사를 망각한 망언과 실수로 잦은 논란이 발생한 요즘 무한도전의 도산 안창호 특집은 그 어느 때보다 적절한 시의성이 돋보인다.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
미국 캘리포니아 동부 리버사이드 시 시청 앞에는 간디, 마틴 루터 킹, 그리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이 서 있다. 그들의 시선에서 도산 선생은 다른 두 명의 위인들과 어깨를 견줄 만한 인물로 판단했기에 내려진 결정이었을 것이다. 무한도전이 LA에서 떨어진 도시를 찾아가 그 장면을 담아낸 의도도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일 것이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LA를 방문한 후에 도산 공원을 다시 찾아 그곳의 시설들을 찬찬히 둘러본 장면이야말로 이번 특집의 기획의도가 집약된 장면이 아닌가 싶다. 타인의 시선 속에 비춰진 우리의 모습을 깨닫고 그를 통해 우리 자신을 재발견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구경 특집'을 비롯해 수많은 촬영을 도산 공원에서 했지만 정작 그 가치를 알아차리게 된 것은 미국 방문 이후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관심하거나 못 배우거나
독립 운동가를 거론할 때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열사와 함께 자주 언급되기는 하지만 도산 선생은 사실 대중들의 기억 속에 거의 잊혀진 인물이나 다름 없었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신 분인 지 잘 모르겠다는 유재석의 고백은 대다수 시청자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일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원인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학교에서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는 한 멤버의 고백이 유난히 귀에 박힌다. 역사 과목은 입시에서 선택 과목이었다가 필수 과목으로 전환된 게 불과 몇 해 전이고, 그나마 근현대사는 정치적 논쟁을 일으킨다는 명목으로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도산 선생의 막내 아들인 안필영 선생은 1926년 생으로 올해 91세이다. 일제의 만행을 온 몸으로 겪어내신 위안부 할머니들은 이제 겨우 마흔 분 정도만이 생존해 있다. 중요한 건 야만의 시대를 육체로 증언해줄 수 있는 분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이고, 그 분들에게 해방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아직까지도 쟁취해야 할 현실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안필영 선생과 위안부 할머니들이 마주했고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무한도전 멤버들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도산의 외손자인 필립 안 커디 선생이 제공했다. 그가 소중히 보관하던 100년 전 이혜련 여사가 재봉틀로 기워낸 태극기와 흥사단기를 멤버들이 만지며 소름 돋아 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물품을 직접 만져보는 진귀한 경험의 순간은 시간을 뛰어넘어 100여 년 전의 현실과 조우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장면은 역사가 지나간 과거의 사건들을 단순히 암기하는 과목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만든 순간을 되돌아 보고 그것을 현재화시키는 작업임을 시사한다. 즉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독립 운동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이다.
독립운동은 계속 되어야 한다!
유재석은 부끄럽고 죄송하지만 우리가 잘 몰랐다고 연신 사과를 했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방송에서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부끄러웠던 장면은 따로 있다. 도산의 막내 아들인 안필영 선생이 무한도전 팀이 방문해 준것을 반기며 자신들을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할 때였다. 오히려 국민들의 감사를 받아야 할 분들은 당신들인데 오히려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니!
도산 선생의 많은 일화들이 곱씹을 만한 생각거리를 던져 주지만 그 중에서 필립 안 커디 선생이 생각하는 도산의 진면목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도산은 양반이 아니었고 가난한 농부이며 아버지도 없었지만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그가 미국으로 건너간 것도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육을 통한 구국 운동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남긴 유목인 '애기애타'(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라) 역시 자기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비로소 남을 사랑하고 나아가 나라를 사랑하고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 담긴 것이다. 한마디로 도산은 개인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한 공동체적 인물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안필영 선생의 저 발언도 도산의 이런 가르침 속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었으리라.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보자. 한국의 식민지화는 한국에 도움이 된다는 미국 외교관 스티븐스의 망언에 분노한 전명운 의사와 장인환 의사는 1908년 3월 그를 총살하고, 이 사건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로부터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정치 운영의 기조를 제공하는 뉴라이트 운동은 바로 스티븐스의 저 견해를 기본 전제로 삼은 것이다. 그들은 수탈을 위해 설치된 항만 시설과 철도에 감탄하지만 정작 그것이 누구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우리는 과연 도산을 비롯한 수많은 애국 선열들이 꿈꾸던 해방된 조국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정치적으로는 일본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났을 지 몰라도 우리는 여전히 식민 통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무한도전의 이번 특집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주었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가 망각하거나 외면하고 있었던 질문을 제기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독립 운동은 여전히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by ddol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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