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496회
- 무한상사 2탄(160903)
한 편의 영화 무한상사
한국 여자 배구계 최고의 공격수 김연경 선수가 출연해 거침없는 입담을 뽐내며 무한도전의 릴레이툰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조회수와 평점이 가장 낮은 박명수와 하하가 함께 극한알바 벌칙을 수행하게 됐다. 자신의 생일날 영문도 모른 채 '무한상사'의 프라이빗 시사회에 참석한 지드래곤은 처음에는 자신의 연기에 민망해 했으나 상영 종료 후 앞으로 정극 시나리오를 받아야겠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그리고 '2016 무한상사'가 방영되었다.
스릴러 영화를 표방한 무한상사는 김태호 피디가 예산 초과로 국장실에 불려 갈 정도로 예능에서는 적지 않은 금액이 투자된 작품이지만, 영화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초 저예산' 규모의 영화다. 수많은 PPL을 동원하고도 부족한 제작비는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가 자신들의 출연료를 전액 쾌척하고, 배우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개런티를 낮추면서 겨우 메워질 수 있었다. 대신 동원된 단역이나 엑스트라 등에게는 규정에 맞게 모두 출연료가 지급됐다. 그러므로 이번 무한상사를 초대형 블록버스터로 부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능에 국한해서만 통용될 수 있는 명칭이다.
제작자 장원석은 김태호 피디를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의 표본으로 평가했다. 어떠한 지원도 아끼지 않지만 제작에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은 김태호 피디의 태도는 이번 프로젝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배우들과 진지한 정극 연기에 도전해서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기. 드라마 작가로부터 원고를 받아 예능 제작진이 촬영을 했던 '드라마 특집'이나,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던 것과 구분되는 이번 특집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태호 피디는 영화 같은 장면을 찍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무한도전이란 이름을 걸고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고자 했던 것이다.
너는 달리고, 나는 찍고
유재석이 정체 모를 괴한들의 추격을 피해 지하 주차장을 질주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액션 스릴러라는 장르적 성격을 초반부터 강하게 각인시킨다. 긴박감 넘치는 이 한 장면을 위해 유재석은 밤새 6시간 가량을 달려야 했고, 그 후 이틀을 더 촬영해야만 했다. 유재석은 밤새 스케줄을 소화하고 아침에 촬영장에 와서 온종일 무한상사를 찍고, 또 촬영이 끝나면 바로 다른 촬영장을 가야 하는 살인적 일정을 소화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장항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유재석 아니었으면 진짜 못했다. 내가 미안해서 눈을 못 쳐다보겠더라. 그래도 어떡하나. 나는 무한상사를 잘 찍어야 하는데." 그 결과 무더위와 달리기에 지쳐 누렇게 뜬 유재석의 얼굴에는 어떻게든 추격자들을 피해야 한다는 결의와 아울러 고된 회사 생활의 피로와 고단함이 묻어난다. 많은 사람들의 차발적 참여와 희생으로 이번 프로젝트가 성사되었지만 그 중 유재석의 존재감은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내레이션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액션 연기에서 코믹 연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기를 선보이며 주연배우로서 극 전체의 중심을 흔들림없이 잡아주었다.
장항준 감독은 다양한 쇼트로 구성된 입체적 화면 구성을 통해 영화적 질감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한편, 빠른 극적 전개가 필요할 경우 텔레비전 드라마 기법을 동원해 생동감 넘치는 화면 연출을 선보였다. 가령, 이제훈이 경찰서 밖으로 걸어나가는 장면은 전형적인 영화적 연출이라면, 정준하가 김희원 과장의 부인을 만나 정보를 얻는 장면은 드라마적 연출에 가깝다. 예능적 연출과 영화적 연출 방식의 차이는 정준하게 유재석에서 지각한 이유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유재석도 알고 있는 정준하의 할머니 개그를 활용한 이 장면은 정준하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그의 대사와 표정을 통해 웃음을 유발한다. 만약 예능이었다면 그 장면은 자막과 과장된 효과음을 활용하고, 정준하 주변의 다른 출연자들이 웃는 모습을 덧붙여지는 형태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장항준 감독은 같은 배우가 같은 연기를 하더라도 연출 방식의 차이에 따라 다른 느낌과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스릴러 대가의 품격
괴한들을 피해 달아나던 유재석은 추격을 따돌리는 데 성공하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유재석의 내레이션을 통해 한 달 전 상황으로 거슬러가 무한상사의 일상을 잠시 보여준 뒤 손종학 부장의 장례식에 참석한 유재석이 등장한다. 그는 회사 동료인 김희원, 전석호 등과 즐겁게 회식을 했던 과거를 회상했다가 갑자기 연락이 끊긴 김희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다. 김희원의 자택을 방문한 유재석은 그곳에서 자살한 김희원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장면 전개를 잠시 살펴보아도 매우 입체적으로 시나리오가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스릴러물의 대가로 알려진 김은희 작가는 무한상사 직원들의 연쇄적인 죽음과 거기에 얽힌 비밀을 흥미진지한 구성으로 풀어냈다. 다소 복잡할 수 있는 얽개는 오히려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극에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를 낳았다. 그러면서 장면장면에 사건의 단서가 되는 고양이 오르골을 맥거핀으로 삽입해서 극을 진행시키는 추진력을 얻었다.
이제훈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가 출연한 드라마 '시그널'의 OST(김윤아의 '길')와 중요소품인 무전기를 등장시켜 드라마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은희 작가는 이제훈을 박해영 경위의 복제품으로 소모하는 대신 유재석의 살인을 지시하는 반전의 연기를 펼치도록 해 섬뜩한 놀라움을 주었다. 그녀는 클리셰와 그것의 비틀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면서도 그것을 비틈으로써 충격을 주는 전략을 구사했다.
가령, 유재석이 병원에 실려가는 장면은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가 함께 했던 드라마 '싸인'을 연상시키고, 유재석과 팀원들은 손종학과 김희원 등이 촐연한 드라마 '미생'에서처럼 영업 3팀으로 설정되어 있고, 죽은 자들의 사진이 걸린 벽을 보며 음습한 미소를 짓는 쿠니무라 준의 모습은 영화 '곡성'을 떠오르게 한다. 바보 캐릭터인 정준하가 사건의 단서를 추적하는 역할을 맡은 것 역시 이러한 사례의 하나다. 모자란 그의 캐릭터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에 착안하여 그에게 추격자의 역할이 부여된 것이기 때문이다.
김은희 작가는 개성 강한 수많은 배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그들만의 매력과 개성을 살리면서도, 이야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을 바탕으로 추진력 있게 극을 전개시켰다. 여기에 무한도전 캐릭터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덧붙여져 최근 침체기로 접어들었던 무한도전을 일순간에 또 다른 경지로 끌어올리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주었다. 올해 무한도전이 한 수많은 협업 가운데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와의 협업은 가장 훌륭한 실험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by ddol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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