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공통의 목적을 갖고 서로 믿고 협력하여 실천해 나가려면 무엇보다도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인 이익 달성을 위해서라면 지도자가 그다지 절실하지 않겠지만 단체생활에 있어서는 규모의 여하를 막론하고 그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가 있어야만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만일 지도자가 없으면 협동한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을 이루지 못 할 뿐만 아니라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나팔이나 피아노 같은 악기로 독주를 하다면 모를까 북, 나팔, 퉁소 거문고 등의 여러 악기를 합하여 협주곡을 연주할 때는 악대 전체를 지휘하는 지휘자가 꼭 필요합니다. 이는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지휘자라는 존칭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여러 가지 악기가 협주곡을 연주하려면 이를 지휘하는 지휘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디 이런 예 뿐이겠습니까? 관광을 나설 때도 단체를 이루어 가는 것이라면 관광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안내자 또는 단장 같은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어디 이런 경우뿐이겠습니까? 군대, 경찰, 실업선수단, 교육단, 정당, 연구회 등 수 많은 조직과 단체에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습니다. 작은 조직이나 큰 조직이나 모두 마찬가지로 지도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인종이나 종교나 이념 등으로 조직된 민족이던지 그 민족에는 반드시 그 민족의 지도자가 있습니다.
소위 민족주의를 타파하고 세계주의를 표방하는 그 민족도 그 사상을 가지고 일하는 민족의 대표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와 같은 지도자를 세웠습니까? 혹 이 글을 보는 사람들 가운데는 누가 그런 걸 모르겠느냐고 하면서 쓸데없는 유치한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 대한의 사회현상을 보면 이것을 진정으로 깨닫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심이 갑니다. 근대의 청년들은 평등을 주장하면서 자기의 지도자를 두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나는 아직껏 서로 힘을 합하자, 합하자 말은 하면서도 지도자를 세우는 일을 큰 일로 알고 지도자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도자를 세우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세울 만한 지도자가 과연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대한 사회에는 아직도 지도자의 자격을 가진 사람이 없으므로 아무리 지도자로 세우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앞으로 지도자의 자격이 생길 때 지도자로 세우고 당분간은 지도자를 세우는 일을 미루자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현재 자격을 갖춘 지도자가 없다고 한다면 앞으로 백년, 천년 후에라도 그러한 지도자는 없을 것입니다. 미래의 지도자 감이라고 한다면 오늘에도 그 지도자의 자격이 있습니다. 현재는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 지도자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 일 것입니다. 지도자의 자격을 무엇으로 판단합니까? 어떤 조직이던지 그 조직 가운데 협동에 앞선 사람은 곧 지도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도자의 자격은 다른 조직이 아닌 바로 그 조직에서 협동에 있어 비교적 앞서 있는 사람을 말하게 됩니다.
아까 음악대를 예로 들었는데 음악대도 여러 종류와 여러 수준이 있어서 각 음악대에는 각기 이를 지휘하는 지도자가 있는 것처럼, 학자들이 모인 조직에는 협동적인 실천 활동에 있어서 가장 앞선 학자가 이들의 지도자가 되고, 노동자들의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역시 협동과 실천에 가장 앞 선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조직이 없으면 모르거니와 조직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고 지도자를 택함에 있어서는 다른 성격의 조직과 비교하지 않고 그 조직 내부에서 세우는 것이 인류사회의 전통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민족 사회도 형편과 수준에 따라서 지도자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지도자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도자의 자격을 운운하여 이를 뒤로 미루는 것은 협동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지도자를 세우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대한 사람은 어떤 일에 대한 열의와 능력이 모두 수평선처럼 평등하고 우열이 없다고 보십니까? 그럴 리는 없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 민족에도 지도자의 자격을 갖춘 위인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며 공경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마음 속으로부터 우리의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여러분도 다 아시겠지만 위인의 마음으로 위인의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위인입니다. 남이 알건 모르건 욕을 먹고 압박을 받아 가면서도 자신의 금전, 지식, 시간, 열정을 다 동원하여 민족을 위해 일하는 그 사람들은 바로 위인의 마음으로 위인의 일을 하는 우리의 지도자입니다. 내 눈에 이러한 지도자가 보이는데 여러분에게 보이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열의와 재능으로 앞서 나가는 사람이 있는데 어찌하여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고 합니까?
오늘날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세워지지 않은 것은 그럴만한 지도자가 없었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도자를 세우고 이를 후원하려고 하기는커녕 행여 지도자가 세워질까봐 두려워하며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을 오히려 거꾸려뜨리려는 것은 아닙니까. 예컨대 우리 역사에서 이순신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 경우입니다. 이순신을 꼭 지도자로 삼고 그를 따라야만 할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시기하고 모함하여 거꾸려뜨리고야 말았습니다. 또 근대에 유길준도 우리 민족의 지도적 인물이었으나 사람들은 그를 지도자로 삼지 않고 무시하고 압박을 가하다가 마침내 그가 죽고 나서야 그를 아쉬워하며 성대하게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을 보고 나는 매우 슬펐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사라져야 비로소 우리 민족을 위한 사회운동이 자리를 잡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돈이 있는 사람 가운데 그 돈을 사회를 위해서 한푼도 안 쓰거나 또는 해로운 일에 쓰는 사람에 대해서는 별 비난이 없으나 오히려 민족과 사회를 위해 돈을 쓰는 사람에 대해서는 비난과 핍박을 쏟아 붓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신지식을 가진 사람 가운데 그 지식을 민족을 위해 쓰지 않고 또 쓴다고 해도 민족에게 해가 되는 일에 쓰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고 그 지식을 우리 민족을 위해 공헌하는 사람에게는 그 정도에 비례하여 비난과 핍박이 따릅니다. 다시 말하면 인격도 없고 성의도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인격과 열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비난을 쏟아 붓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누구든지 지방 군중의 신임을 얻으면 다른 지방에서는 그를 지방파의 괴수라고 공격하고 비난합니다. 또 누구든지 한 단체나 기관에서 신임을 얻게되면 다른 곳에서 그를 파당의 괴수라고 칭하면서 공격합니다. 누구든지 존경받을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청년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하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허물을 찾아내어 그를 거꾸러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민중을 위해 돈을 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앞선 사람이요, 자기의 지식이나 시간, 열정을 쏟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앞선 사람입니다. 한 지방이나 단체에서 심임을 거두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앞선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앞 선 사람을 기어이 거꾸러뜨리려고 나서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을 지도자가 못되게 방해하는 데 시간을 낭비는 헛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숭배한다든가 누구를 따른다고 하면 큰 수치나 욕으로 압니다. 그러므로 마치 옛날 베드로가 자기 스승인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 것처럼 자기 마음 속에 숭배하는 지도자가 있어도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그를 누가 비난해도 그를 위해 한마디 변명도 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 사회에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그 대신 모욕과 무시가 성행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든 지도자라고 하면 말도 하기 싫어하고 듣기도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지도자를 세워야겠다고 의견을 가진 사람도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를 주저합니다. 그래봐야 효과도 없고 마치 자기를 지도자로 섬겨달라는 뜻으로 오해받고 군중에게 배척 당할까봐 두려워합니다. 아, 아 슬프다. 내 말이 과장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오늘 우리 사회현상은 지도자를 원치 않는 것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지도자들이 그 임무와 역할을 똑바로만 한다면 지도자를 세우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고 말합니다. 지도자란 놈들이 협잡이나 하고 싸움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지도자를 세우려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만 이것은 말이 안됩니다. 지도자란 앞선 사람을 일컫는데 협잡이나 하고 싸움만 하는 사람이라면 애당초 지도자 자격이 없는 사람이므로 그를 지도자라고 칭하는 것부터가 잘못입니다. 잘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는 자기의 금전이나 지식, 능력을 가지고 정직하게 민중을 위하여 진실된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러는 외형적으로 남들로부터 모함이나 공격을 받는다고 해도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민중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록 모든 사람이 다 협잡이나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중에 상대적으로 보다 나은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그가 지도자입니다. 남을 시기하지 않고 냉정한 이성으로 민족을 위해 일할 진정한 지도자를 찾으려 한다면 그러한 지도자 감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지도자를 찾기 위하여 이성적으로 사회문제를 살핀다는 것은 허영심을 버리고 자기 민족의 앞날을 실제로 가늠하는 주인정신이 있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어느 집안이든 그 집안에 훌륭한 인물이 생기는 것을 영광스럽고 기쁘게 생각할 것이요 이를 시기하는 집안 식구는 없는 줄로 압니다. 설사 형이나 아우가 아니더라도 똑똑한 하인이 들어온다면 이를 기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하인은 집안을 이롭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집안 식구 중에 좋은 사람이 생기는 것은 누구나 기뻐하며 그를 보호하고 사랑합니다. 이와 같이 자기 민족 사회도 다른 민족 보다 더 낫길 바라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또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이를 기뻐하고 숭배하며 후원해야 합니다.
무조건 허황된 것만을 기준 삼아 지도자라고 인정하지 말고 도 유언비어에 의존하지 말며 먼저 그 사람의 신념과 인격, 실질적인 역사적 행위, 방법론, 능력 등을 조사한 후에 그것들이 내게 적합하고 또 나보다 앞선 것이라면 지도자로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인정한 후에는 그 사람의 말과 실천에 있어 한때의 실수가 있더라도 그것을 교정할 수 있도록 노력할지언정 함부로 배척할 일이 아닙니다. 한 때의 한 두 가지 허물로 그 사람 전체를 져버리는 일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지도자를 택할 때 나와 가깝던 멀던 또 내 생각과 맞건 안 맞건 그러한 관념을 떠나서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고 공평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지도자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 갑자논설 가운데 합동의 요건 중에서 -
※ 안도산전서 中권 12쪽 원문참조
□ 해설
우리가 조직이나 단체생활에 있어서 공통의 목적을 갖고 서로 믿고 협력하여 실천해 나가려면 무엇보다도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를 바로 세운다는 것은 국민들의 몫입니다. 도산께서는 이미 한 세기 이전에 지도자를 세우는 일을 큰일로 알고 이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보기 어렵다고 간파하십니다. 그리고 지도자감 이라고 하면 뭐 대단하게 생각하여 자격을 운운하고 능력을 따지기를 좋아 하지만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조금이라도 앞서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바로 지도자 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이 알건 모르건 욕을 먹고 압박을 받아 가면서도 자신의 금전, 지식, 시간, 열정을 다 동원하여 민족을 위해 일하는 그 사람들은 바로 위인의 마음으로 위인의 일을 하는 우리의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때만 되면 선거를 치르고 정치지도자를 뽑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뽑은 정치가들이 협잡이나 하고 당리당략에 의해 싸움만 한다고 배척하며 욕을 합니다. 그러나 애당초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을 이해관계로 뽑아 놓고 이제 와서 그들을 욕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모순입니다. 도산께서도 이점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지도자를 뽑을 때는 냉정한 이성으로 잘 판단해서 주인정신으로 선거를 해야 합니다. 자기 집안에 인물이 나오면 모두 좋아하듯이 나라를 위해 올바르게 일할 지도자를 잘 뽑아서 세우는 것은 우리들의 자랑거리입니다. 도산의 다음 말씀을 다시 한번 새겨둡시다.
“ 무조건 허황된 것만을 기준 삼아 지도자라고 인정하지 말고 도 유언비어에 의존하지 말며 먼저 그 사람의 신념과 인격, 실질적인 역사적 행위, 방법론, 능력 등을 조사한 후에 그것들이 내게 적합하고 또 나보다 앞선 것이라면 지도자로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풀어쓰기 및 해설 ; 이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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