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의 진면목은 고결한 신사이자 무장독립 투사"
[서평] 김삼웅의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 / 김형욱 2013.05.30
심리학에서 프레임을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라 일컫는다. 사람마다 제각기 관점, 사고방식, 고정관념 등으로 다르게 해석함을 말한다. 동일한 개체를 보아도 다르게 해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8일 MBC <100분 토론>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두고 변희재씨가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운운하며 '5·18광주사태'라고 말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한 것도, 그의 프레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른 패널들은 그의 발언에 대해,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알아 들었고 결코 틀린 말은 아니나 명백한 증거와 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일간베스트저장소' 사이트와 몇몇 종편 채널의 근거없는 프레임으로 바라본 '5·18광주민주화운동' 논란으로, 자칫 왜곡과 왜소화가 있을까 심히 걱정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에 이어 2011년에 안창호 선생의 '강산개조론'을 강조·인용하며 산림의 중요성을 설파한 적이 있다. 그러며 4대강 사업이야말로 안창호 선생의 '강산개조론'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당시 이 발언은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고, 여야는 정반대로 '강산개조론'을 해석하여 당시 4대강 사업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흥사단 측은 이 대통령이 곡학아세했다고 비판하였다. 안창호 선생의 전 생애와 사상을 오롯이 추렴해보지 않고, 단문의 연설이 마치 선생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두고 한 비판이겠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건 분명 자유이지만, 그것이 가져올 파장이 크다는 걸 안다면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주장이 사실이 아니든 또는 그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사람의 본 뜻을 왜곡하든, 처음 접하거나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을 때는 완전한 왜곡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정권에서 실행했던 바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국사(國史)'를 접할 수 없게끔 한 것이다. 그렇게되면 왜곡되거나 왜소화된 사실들이 마치 사실인 양 판을 쳐도 원래대로 돌려놓을 방법이 없게 된다.
도산 안창호의 본모습
도산 안창호 선생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반면 그의 이름 석자가 아닌 그의 삶과 사상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 또한 거의 없을 것이다. 그가 나의 모교 경신고등학교(1896년 안창호 선생 입학 당시 밀러학당) 출신이기 때문에 조금은 더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음에도, 선생이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라는 것 이상을 알지 못했다.
중고등학교를 보내며 안창호 선생에 대해 배운 건, 그가 실력 양성론을 주장하여 교육을 중요시했고 민주주의를 신봉했다는 정도였다. 사실 수려하고 깔끔한 외모 탓에 신사적인 이미지가 제일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사실 무장독립투사였고, 민족유일당 운동의 최전선에서 뛰었으며, 강직하고 올곧은 사람이었다. 물론 무장독립투쟁을 위해서는 실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설파하였다. 또한 민주주의 신봉자였다는 것도 맞는 사실이다. 평소에는 신사적인 이미지가 강했다는 것도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안창호 선생은 왜 그렇게 온화하고 인자하며 성인군자 같은 이미지이기만 한 것일까. 그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중립을 지키려 하고 중재하는 역할만을 맡았기 때문일까? 무장독립투쟁을 위한 준비만 하다가 독립을 맞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도산의 진면목과 업적은 추상화된 경우가 적지 않다. 누구 못지않은 무장전쟁론자인데도 실력양성론, 점진론의 온건론자로 인식되고, 독립운동의 '투사'의 측면보다 점잖은 인격자 '신사'로 자리 매김되었다. 또한 추종자 일부가 친일 변절자가 되고, 그들이 집필한 도산의 전기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추종자 중에는 미군정을 비롯하여 독재정권에 참여함으로써 도산의 이미지에 흠집을 남기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 본문 속에서)
안창호 다시 읽기
그런 내가 김삼웅 선생의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현암사)을 손에 들었다. 얼마전 접했던 <한국의 레지스탕스>(생각정원)로 안창호 선생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뀐 상태여서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신민회', '의열단'을 비롯한 여러 비밀결사를 재조명하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뿌리, 나아가 지금 한국의 뿌리라 칭하고 있다. 그러며 당당하게 안창호 선생을 독립투사로 그리고 있다. 이덕일 소장도 연재물 '근대를 말하다'를 통해 안창호 선생이 한 측면에서는 무장투쟁론자였다고 말하고 있다. 안창호가 의열단의 식민통치기구 파괴 공작의 뒤를 봐주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 또한 안창호 선생의 '투사'적인 측면이 강조하고 있다. 저자의 손에 의해 다시 그려지는 안창호는 결코 점잖기만 한 신사가 아니다. 누구 못지않은 무장전쟁론자라는 것이다.
안창호 선생은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립협회'를 조직한다. 공립협회 소속 단원 중 이재명은 이완용 암살을 기도하였다가 실패하고 처형당했고, 장인환과 전명운 등은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를 암살하였다. 또한 이 단체의 국내 지부는 후일 확대되어 항일 비밀 결사인 신민회로 발전하였다.
신민회는 비밀 결사인 만큼 엄격한 기준으로 회원을 받아들였고, 교육과 계몽을 비롯해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궁극적인 목적은 '독립전쟁에 대비하는 만주 이민계획과 무관양성'에 있었다.
안창호 선생은 준비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즉각적으로 독립전쟁을 추진하는 입장이 아니었기에 상대적으로 온건적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이다. 목적은 같은 바, 방법론이 달랐을 뿐이다. 그를 평가할 때 그의 방법론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분명 그의 삶과 사상을 왜곡, 왜소화시키는 것이다. 안창호를 다시 보아야할 이유이다.
여전히 이승만 프레임에 갇혀 무장독립 운동가들을 과격파 또는 좌파로 치부하면서, '투사'와 '신사'의 조화를 이루었던 안창호의 삶을 왜곡하는 건 옳지 못한 일이다. 이는 친일파 행적의 큰 줄기로 그를 끌어당기려 한 것이나 다름없다. 안창호 선생의 사상을 빌려 친일파 행적 물타기를 시도한 것이다. 그만큼 안창호 선생이 위대하다는 말도 될 테지만, 그의 오롯한 삶을 보고 싶다.
왜곡에 대한 역왜곡을 해서는 안돼
왜곡이 있다고 해서 그에 대한 역왜곡을 해서는 안 된다. 주관적인 해석에 맞서 주관적인 해석이 아닌 객관적인 시각과 해석을 선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저자 김삼웅 선생은 객관적인 시각을 잃지 않는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본래 그의 이미지인 '신사'에, 재조명하고 있는 이미지인 '투사'. 하지만 본래 이미지인 신사도 왜곡된 면이 없지 않아 있다는 것이다. 신사하면 도덕군자같이 얌전하고 느긋하고 수동적인 이미지를 생각하기 쉽지만 안창호 선생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도덕주의의 울타리에서 진취적이고 능동적이며 실천을 강조하였다고 말한다. 안창호의 '신사'는 그의 성실하고 고결한 마음가짐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 안창호의 투사적인 측면은 그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안창호 선생은 신민회 산하에 청년학우회를 두었고 이를 '흥사단(興士團)'으로 발전시킨다. 흥사단은 올해 2013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단체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상을 오롯이 투영하고 있다.
저자는 도산 선생을 왜소화해온 석공들이 흥사단의 사를 '선비 사' 자로만 이해했다고 말한다. 그러며 도산의 심중에 무사의 사와 선비의 사가 함께 살아 있었음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산은 "흥사단은 수양 단체가 아니라 한국의 혁명을 중심으로 하여 투사의 자격을 양성코자 하는 혁명 훈련 단체이다"라고 말하였다.
도산 선생의 인품, 능력, 역할, 업적을 종합 평가하여 나름대로 정의하자면, '투사와 신사'가 아닐까 싶다. '투사'와 '신사'는 '둥근 삼각형'처럼 형용모순이지만, 도산에게는 이것이 가능했다.(본문 속에서)
저자의 목소리가 들어 있는 이 책의 의미는 특별하다. 단순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고 배워본 적도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배웠고 충분히 알만 한 내용이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눈과 귀가 가려져 볼 수 없게 된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우의 왜곡에 맞선 좌의 역왜곡, 또는 좌의 왜곡에 맞선 우의 역왜곡. 이런 식의 프레임이 아닌 안창호 선생의 올곧은 신념인 '대공주의'와 같이 객관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으로 안창호 선생의 삶과 사상을 서술하고 있다.
역사를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올바른 역사를 알리는 것도 쉽지가 않다. 거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세력들의 이해가 뒤엉켜 있다. 누군가가 나서서 바로잡지 않는 이상, 그 실타래를 풀기란 너무나 힘들다. 하지만 이마저도 엄청난 희생이 뒤따른다.
김삼웅 선생은 인터뷰를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다름이 아니라 그 때문에 바깥의 일이 뚝 끊겨서 열심히 글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덩달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덕분에 올바른 역사의 일면을 차근차근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저자 김삼웅 선생은 <오마이뉴스>를 통해 계속해서 올바르고 올곧은 신념으로 한 시대를 살다간 이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안창호 평전'을 매듭짓고, 얼마 전부터 '홍범도 평전'을 집필 중이다. '봉오동 전투'의 영웅이라는 것 말고는 거의 알지 못하는 홍범도의 진면목을 기대해본다. 올바르고 올곧은 이들을 제대로 알리는 일은 그의 몫이지만, 그걸 받아들여 널리 알리고 또한 후대에 전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뜨겁게 점진한 위대한 얼 도산 안창호의 혁명적 생애ㅣ김삼웅 지음ㅣ현암사
독립 쟁취와 건국을 향해 철저히 매진한 ‘투사’의 진면목!
다큐멘터리 《백년 전쟁》으로 재점화된 역사 논쟁
도산의 재조명을 통해 살피는 독립운동사의 진실들 도산 서거 75주기 ㆍ 흥사단 창립 100주년 기념 출간!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백년 전쟁》 중 [Part 1]은 ‘이승만 편’이다. 이 영상은 이승만이 ‘국부’가 아니라 “친일파를 부활시키고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였으며 의회민주주의를 압살하다 4월혁명으로 쫓겨난” ‘독부’라고 주장한다. 이 영상을 공개한 여파로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승만 측 유족들에게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반면 영상을 접하고서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특히 ‘한 번도 들어본 적, 배워본 적 없는 역사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 그동안 알고 있던 역사가 올바른 것이 아니었나. 한편 무섭기도 하다. 진실한 역사를 계속 알고 싶다’는 의견 등과 이에 동의하는 반응들이 이어진 것이다. 이 판국에서 뚜렷한 점은, 당대로부터 백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땅의 독립운동사를 바르게 정립하는 일이 다양한 세력의 이해에 따라 분열 ㆍ 왜곡돼 있다는 사실과, 여전히 역사 정립이라는 국가적으로 중대한 과제가 참담하게 미뤄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이유로, 독립운동사의 핵심 인물이면서도 그간 진면목이 가려져왔다고 할 수 있는 도산 안창호를 재조명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 정립의 과제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 독립운동의 정통, 도산의 투사적 생애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문제적 인물들의 생애와 업적을 재조명하고 복권하기 위하여 꾸준히 평전을 펴내고 있는,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선생의 스물한 번째 평전 출간작이다. 지은이는 평전을 통해 역사에서 되새겨 읽어야 할, 시대정신을 고취하고 자기 소명에 헌신한 위인들을 호명하기도 하지만, 거짓 묘사로 치장되어 ‘위인’으로 잘못 섬겨져온 위선자들을 호명하고 진실을 교정하기도 한다. 그 한 사례가 작년(2012년)에 펴낸 『‘독부’ 이승만 평전』이었다. “권력의 화신, 두 얼굴의 기회주의자”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역사 정립의 과제를 향한 천착이자 ‘이승만 망령에 대한 일갈’이었다. 이번에 펴낸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 역시 역사를 올바로 살피고 기리고자 하는 작업의 한 줄기에서 탄생했다. 또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에 대한 회신이다. 도산의 역사적 중요성에 비춰볼 때 과연 그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공과를 엄정히 평가한 책이 있었던가? 먼저 지은이는 이렇게 지적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자신도 그랬다. 명색이 현대사를 공부하고 독립운동가를 연구한다면서 도산은 상식 수준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행세했다. ‘상식적인 지식의 무지’라고나 할까. 실제로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깊이 있는 실체는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진가를 모르고, 너무 흔해서 귀중함을 모르듯이, 도산은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도 흔치 않은 인물이다. 한말 계몽운동에서부터 신민회(新民會) 조직과 임시정부 수립, 민족운동 진영의 대통합을 위한 민족유일당 운동, 흥사단 조직, 두 차례의 옥고 등 민족의 독립과 부흥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음에도 그의 이름은 보통명사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_ 머리말에서
그리고 지은이는 마침내 이 책 집필에 몰두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도산은 “독립운동의 정통이고 독립운동사의 정맥”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군자’ 수준으로 본질을 매도당하고, ‘박제된 독립운동가’마냥 부실하게 조명되었으니, 그 한탄 속에서 추상화된 도산을 구체적인 도산으로 되살리는 작업을 펼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가장 선두의 목표는 ‘투사’ 안창호라는 재평가이다. ‘무실역행’ 사상과 ‘점진’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안창호의 실력양성론 탓에 안창호는 점잖은 신사 이미지로만 굳어진 면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안창호가 펼친 독립운동 업적을 올바로 살펴보고 평가했을 때,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결론이다. 도산은 누구보다 두려움 없는 무장독립 운동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 왜곡은 어떻게 벌어졌을까. 지은이의 날카로운 지적에 따르면, “무장독립 운동가들을 과격파 또는 좌파로 치부하면서, 도산을 ‘온건한 독립운동가’ 또는 ‘도덕주의자’로 분장”시킨 세력이 지금껏 시야를 방해해온 것이다. 그래서 이 평전이 지닌, 기존의 문헌들을 뛰어 넘는 가장 뚜렷한 특징이라면, ‘투사’ 안창호의 부활과 재평가이다.
■ 고결하고 위대한 신사의 얼
그렇다면 안창호를 ‘신사’로 그려보는 일 또한 왜곡인가. 오히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안창호 선생에 대한 평가를 ‘투사와 신사’라는 말로 수렴시켜 본다.
도산 선생은 암울한 시대에 방향을 찾지 못하는 청년들의 스승이었다. 도산 선생은 고난의 세월 풍찬노숙의 민족운동 현장에서 철학과 사상을 숙성시킨 경륜가였다. 도산 선생은 거짓과 위선을 배척하고 진실과 성실을 생활화한 고결한 인격자였다. 또한 그는 기관의 우두머리가 되기보다 융합을 위해 노력한 지도자였다.
도산 선생의 인품, 능력, 역할, 업적을 종합 평가하여 나름대로 정의한다면, ‘투사와 신사’가 아닐까 싶다. ‘투사’와 ‘신사’는 ‘둥근 삼각형’처럼 형용모순이지만, 도산에게는 이것이 가능했다. 그만큼 그의 삶에서 위대성을 찾게 된다. _ 프롤로그에서
뿐만 아니다. 안창호는 폭넓은 식견과 결단력, 그리고 화합의 인물인 점에 더해 항일 현장과 교육 현장에서 ‘신사’의 실질적인 가치를 가르친 위인이었다. 안창호의 ‘신사’상은 안창호를 왜소화시키는 데 일조한 ‘도덕군자’상과는 전혀 결이 다르다. 안창호의 신사적 업적에는 성실하고 고결한 태도로 소명에 충실하여 실체를 확보하고 점진을 이루라는 뜻이 담겨 있는 탓이다.
1905년 미국 최초 한인 단체인 공립협회를 조직하여 동포들을 챙기기 시작했을 때의 일화를 보면, 미국 내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미미한 탓에 동포들이 일자리를 얻고 생계를 꾸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목도한 안창호의 방식은 이런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한인 노동자들을 야학에 모아 공부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동포들이 일하는 과수원을 찾아다니면서 “귤 하나도 정성껏 따는 것이 곧 나라를 위하는 것이다”라며 솔선을 보였다. 진실하고 성실한 생활부터가 실력이고 애국이라는 교육이었다. 그리고 안창호는 이러한 성심의 자세를 평생 초지일관했다. 단지 ‘도덕’을 중시해서가 아니라, 이런 근본 성찰과 실천들 탓에 고결한 면모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투사이자 신사’ 안창호로부터 출발된 크나큰 업적 중의 하나가, 1913년 5월 13일 창립된 독립운동 단체 흥사단이다. 이 단체는 “무실역행을 생명으로 삼는 충의남녀를 단합하여 정의를 돈수하며 덕·체·지 삼육을 동맹수련하여 건전한 인격을 지으며 신성한 단결을 이루어 우리 민족전도 대업의 기초를 준비”하는 거점이었으며, 여기에는 독립과 해방 이후까지를 대비한 안창호의 장대한 비전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워진 흥사단은 올해 100주년을 맞으며, 오늘날에도 저 유구한 임무를 다하고 있다.
■ 친일파 이광수 ㆍ 주요한의 안창호 전기를 교정하고 갱신하는 역작
기존에 도산 안창호의 생애를 살피고자 할 때 가장 많이 참조되던 자료가 바로, 이광수가 지은이로 추정되는 『도산 안창호』와 주요한이 편저한 『안도산전서』였다. 하지만 이광수와 주요한이 친일 행적을 걸으면서 도산과는 생애가 갈려버린 인물들이라, 이 책들 역시 국민들의 외면을 받아왔으며 그 내용상의 한계도 엄연했다.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은 안타깝게도 단편으로 그친 도산 전기를 교정하고 저 한계를 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애국가의 작사가가 안창호라는 사실도 여러 사료와 논증으로 재확인시키고 있다. 또 무엇보다도 도산 사상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는 ‘대공주의(大公主義)’의 진면목을 되살리고자 힘쓰고 있다.
최근(2013년 4월 8일) 별세한 독립운동가 구익균 선생은,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도산의 저 대공주의를 발전시킨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우리가 ‘상식의 무지’로 잘 모르고 있는 사실들은 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독립운동사를 정립하고 기리는 일이 더욱 중요한 때이다.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김삼웅 지음. 현암사. 288쪽. 1만8천원) [연합뉴스] 2013.05.15
실력양성론, 점진론의 온건론자로만 인식됐던 도산 안창호를 재조명했다. 저자는 도산이 누구보다 두려움 없는 무장독립 운동가였다며 '투사' 측면을 강조했다.
저자가 말한 바로는 "무장독립 운동가들을 과격파 또는 좌파로 치부하면서 도산을 '온건한 독립운동가' 또는 '도덕주의자'로 분장시킨 세력이 지금껏 시야를 방해해온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라면 '투사' 안창호의 부활과 재평가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문제적 인물들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해온 전 독립기념관장인 저자의 스물한 번째 평전이다.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김삼웅 지음) [국제신문] 2013.05.18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도산 안창호 선생을 재평가. 저자는 안창호 선생이 실력양성론 탓에 점잖은 신사 이미지로 굳어졌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두려움 없는 무장독립 운동가로 '투사'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암사·1만8000원〉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 [한겨레] 2013.05.19
독립운동가 도산의 ‘투사’적 면모를 부각했다. 지은이는 무장투쟁을 옹호했던 도산이 ‘도덕군자’ 수준으로 이미지가 분장된 까닭이 무장 독립운동가들을 과격 좌파로 치부해온 세력 때문이라 지적한다. 한국 근현대 인물들을 조명해온 김삼웅씨가 쓴 스물한번째 평전. 현암사·1만8000원.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김삼웅 | 현암사) [경향신문] 2013.05.24
모두가 그 이름을 알지만 진면목을 아는 이는 거의 없는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1878~1938)의 전기다. 저자는 도산이 “독립운동의 정통이고 독립운동사의 정맥”이라고 말한 뒤, 두려움 없는무장독립 운동가이자 ‘투사’였던 그의 삶을 복원시킨다. 1만8000원
투사와 신사-안창호 평전(김삼웅 지음, 현암사, 288쪽, 18,000원) [교수신문] 2013.06.04
‘무실역행’ 사상으로 대표되는 안창호의 실력양성론 탓에 안창호는 점잖은 신사 이미지로만 굳어진 면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안창호가 펼친 독립운동 업적을 제대로 짚어본다면,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결론이다. 도산은 누구보다 두려움 없는 무장독립 운동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 왜곡은 어떻게 벌어졌을까. 저자의 지적에 따르면, “무장독립 운동가들을 과격파 또는 좌파로 치부하면서, 도산을 ‘온건한 독립운동가’ 또는 ‘도덕주의자’로 분장”시킨 세력이 지금껏 시야를 방해해 왔다. 그래서 이 책은 기존의 평가들과 달리 ‘투사’ 안창호의 부활에 무게를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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